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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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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신·구 유럽의 협력이 발전을 낳다(11/11)

    • 등록일
      2019-11-18
    • 조회수
      465

중·동유럽 경제발전 성공 요인은 EU / 상대적 박탈감 커져 포퓰리즘도 득세

아누스 미라빌리스, 라틴어로 기적의 해를 의미한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장벽의 붕괴라는 상징적 사건이 유럽에서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냉전의 종결을 알렸다. 유럽을 반토막 냈던 철의 장막이 거둬진 뒤 소련의 철통같은 지배를 받던 중·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은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나 체코 프라하에서 군화와 탱크로 무자비하게 민중을 짓밟았던 소련군과 공산정권은 이번에는 무기력하게 구체제의 붕괴를 방관했고 덕분에 무혈 체제교체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철옹성 같았던 압제의 신속한 동시다발적 붕괴야말로 기적이 아니겠는가.

30년이 지난 지금, 중·동유럽의 10개국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다. EU의 일원이 됐다는 것은 이들이 모두 기본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공산체제에서 벗어났다고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의 혜택과 시장경제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개인 독재와 침체된 경제에서 허덕이고 있다. 반면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은 2018년 1인당 국민소득이 구매력평가기준(PPP)으로 3만달러가 넘었다. 독일의 5만달러나 프랑스의 4만달러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유럽과의 격차를 크게 해소한 셈이다.

중·동유럽 사회가 이처럼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EU이다. EU는 ‘유럽으로의 복귀’라는 당근을 내세워 이들 중·동유럽 국가의 힘겨운 이행과정에 명백한 목표를 제시했다. 유럽은 또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10개국을 대거 수용한 뒤 대규모 경제지원을 제공했다. 그것은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에 제공했던 마셜플랜보다도 많은 것이었다. 게다가 유럽의 대자본은 중·동유럽에 직접투자의 규모를 늘려 생산기지로 활용했다. 예컨대 슬로바키아는 폭스바겐, 푸조-시트로엥, 랜드로버, 기아 등의 유럽의 자동차 생산기지로 발전했다.

물론 30여년의 이행과정이 물 흐르듯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공산주의가 붕괴된 직후 중·동유럽은 심각한 경제 침체로 충격과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과거 국가가 소유·운영하던 산업의 민영화는 벼락부자 특권계층을 낳았고, 특히 청산의 대상이었던 공산체제 간부들이 오히려 커다란 수혜층으로 떠올랐다. 이어 유럽 가입 이후에는 우수한 청년이나 전문인력이 서유럽으로 이민 가는 바람에 인구 축소와 사회붕괴 현상을 경험하는 지역도 다수 생겼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풍요와 자유가 절대적으로 향상됐음에도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커졌다는 사실이다. 삶의 비교 대상이 런던이나 파리, 베를린으로 바뀌다 보니 아무리 과거보다 잘살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더라도 불만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불만의 틈새를 간악하게 파고 들어가는 세력이 포퓰리즘이다. EU에서 신·구 회원국의 시너지는 공산권의 평화로운 붕괴라는 첫 기적에 이어 격차의 축소라는 윈·윈의 두 번째 기적을 30년 동안 만들어냈다. 그러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처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유권자의 불만과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다수의 정치세력이 중·동유럽에서도 암적인 존재로 커가고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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