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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유럽의 안보위기와 핵의 국제정치

    • 등록일
      2024-04-12
    • 조회수
      11

2024년 봄, 유럽이 수십년 만에 가장 심각한 안보위기를 맞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다. 일단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유럽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사라진 것으로 여겼던 국가 대 국가의 전면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가 분열하면서 발생했던 종족주의적 세력의 내전보다 훨씬 심각한 평화의 붕괴이자 전쟁의 도발이었던 셈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제 3년 차에 돌입했으나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 7일 러시아의 공격에 대항해 유럽의 번영과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오는 6월로 다가온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9~2024년 첫 임기를 마치고 2024~2029년의 두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폰데어라이엔이 유럽(EU)에서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쟁점으로 내세운 사안이 바로 러시아의 위협과 이에 대한 유럽연합의 대응인 셈이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넘어 유럽 민주주의와 사회 안정을 흔들기 위해 계속 공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못잖게 미국도 불안요소

 

2020년대 평화로운 국가에 대한 전격 침공으로 발톱을 드러낸 러시아 못지 않게 유럽에 위기감을 안기는 요소는 미국이다. 올 11월 미국 대선이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이 되고, 두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유럽은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2017~2021년 처음 집권하면서 이미 나토의 동맹국들을 경시했었고 최근에는 집단안보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발언도 일삼았다. 나토 체제에서 재정 부담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동맹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쳐들어와 마음대로 짓밟아도 좋다는 식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나토는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다른 모든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해 반격을 가하는 전형적인 집단안보체제다. 트럼프의 발언은 집단안보체제의 기반을 부정하고 뿌리채 뒤흔드는 도발이다. 탄탄한 안보조약에 대한 국제적 신뢰의 문제를 발생시키면서 수십년 간 힘들게 쌓아 올린 체제를 바닥부터 갉아먹는 언행이기 때문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20세기 소련조차 헝가리나 체코와 같은 위성국가에는 개입했으나 서방을 향해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민주·공화당 어느 대통령이건 나토를 통해 유럽에 자신의 핵우산을 펼쳐 들고 안보를 보장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블라디미르 푸틴이 주도하는 러시아의 공격성을 일깨웠다면, 도널드 트럼프는 70년 넘게 유럽의 평화를 가능하게 했던 북대서양 집단안보체제를 취약하게 만드는 미국 대통령이다.

 

물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유럽에서 핵우산을 거두겠다고 천명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또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단순히 동맹국의 책임 있는 재정부담을 위한 압력을 행사하는 수사(修辭)에 불과했다고 물러섰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자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의 발언은 안보처럼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파괴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당장 유럽에서는

 

 

미국이 미래에도 핵우산을 통해 유럽의 안보를 강력하게 보장할 것인지, 언제까지 보장할 것인지 논쟁이 한창이다.

 

트럼프가 아직 당선되지도 않았는데 미국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이 상원 통과 뒤 하원에서 공화당에 의해 지연되고 있다. 이 상황은 유럽의 우려가 과장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할 경우 미국이 핵 공격당하는 상황을 감수하고 바르샤바를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다.

 

 

 

제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전반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과 소련의 핵이 공포의 균형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언행은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확실성을 초래했고, 따라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국방력을 회복하면 핵우산의 실질적 효과에 대해 테스트에 나설 수 있다고 유럽 안보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사실 1950년대 미국 핵우산의 확실성을 의심한 나라는 동맹 프랑스였다. “파리를 위해 뉴욕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까”라는 의문은 프랑스가 독립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서게 만든 기본 원인이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위대한 프랑스’를 만들기 위해 핵무기 보유 국가가 되려 한 것은 사실이나, 그보다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 핵우산의 불확실성이었다. 프랑스가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자국의 핵무기를 나토에 위임하거나 공동 관리하는 정책을 펴지 않는 이유와 통한다.

 

 

 

 

유럽의 핵, 공포의 균형수단 될지 의문

 

우크라이나전쟁과 트럼프의 불확실성은 유럽 안보의 위기의식을 고조시켰고, 그 결과 영국이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만의 안보체제를 구축하자는 아이디어들이 요즘 신중하게 논의되고 있다. 두 나라는 유럽에서 러시아 말고 핵무기를 보유한 강한 군사 세력이며 외교적으로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유럽의 대표성을 갖는다. 다만 영국과 프랑스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영국은 핵무기 보유국이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체제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핵무기를 나토 산하 핵계획단(NPG, Nuclear Planning Group)에서 관리하도록 통합시켰다. 미국이 집단방어체제를 포기하거나 나토에서 갑자기 탈퇴할 경우 영국의 핵 전략은 상당한 제도적 불확실성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영국 자체가 2021년 유럽연합에서 탈퇴해 대륙 국가들과의 관계도 나토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나토가 약화하거나 붕괴하더라도 EU이라는 틀 속에서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찾을 수 있다. 다만 프랑스의 핵전략은 동맹까지 핵우산을 펼치는 미국 영국 러시아 등과 달리 매우 프랑스 일국 중심적이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조건은 프랑스의 결정적(vital)이거나 근본적 이익이 위협당할 경우이며 그 판단은 대통령이 내린다. 2020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핵전략에 ‘유럽적 차원’이 존재한다고 추가하여 공표했으나 프랑스 핵우산을 동맹으로 확대하는 일은 여전히 선언적이고 공허한 수준이다.

 

설사 나토와 유럽연합이라는 커다란 기구를 단단하게 묶어내고, 그 중심에 영국과 프랑스라는 핵 세력을 두더라도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이 될지는 의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핵탄두를 모두 합쳐도 500여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5000개 정도이고 러시아는 심지어 미국보다 많은 6000개 수준이다. 프랑스는 항시 한두대의 핵잠수함을 운영하다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3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과연 유럽을 방어하는 공포의 균형수단으로 충분할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에스토니아를 방어하기 위해 영국이 런던을 포기할지, 또는 핀란드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가 파리를 희생할지도 미지수이기는 마찬가지다.

 

 

 

 

군사적 유럽 건설은 여전히 먼 길

 

마지막으로 나토의 지정학적 역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토는 미국을 안(In)으로 끌어들이고, 러시아를 밖(Out)으로 밀어내며, 독일을 아래(Down)로 끌어내리는 기구로 유명하다. 달리 말해 미국이라는 강력한 주도 세력이 있었기에 독일이라는 유럽 안의 강국을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는 의미다.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빠진다면 과연 독일이 프랑스나 영국의 아래로 들어가려 할지 불확실하다는 말이다.

 

물론 제2차세계대전이 막 끝났던 1950년대에 비해 프랑스와 독일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더 강력한 동맹이자 통합체가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대통령이 쉽게 핵무기의 버튼을 독일의 총리와 공유하지 않듯, 독일도 프랑스의 군사적 주도력을 온전히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에 프랑스가 참여하지 않은 사례만 보더라도 군사적 유럽이나 방위 유럽의 건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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