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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미스터 브렉시트’ 보리스 존슨의 퇴출 (22.07.14)

    • 등록일
      2022-07-15
    • 조회수
      141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출렁이기 시작한 영국 정치가 멈출 줄 모르고 여전히 요동치는 중이다. 보수당은 650석 의회에서 과반수 이상인 358석을 차지하고 있어 안정적인 집권 세력을 형성한다. 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보리스 존슨 내각은 지난달 6일 보수당 내 의원 투표에서 신임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7월 들어 50여 명이 넘는 내각 인사들이 줄지어 사임함으로써 존슨 총리에 대한 신임을 거두었고 존슨은 총리직을 계속 수행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주요 장관은 물론 내각 전체가 존슨을 거부한 모양새다. 지난 7일 존슨 총리가 결국 사임을 발표함으로써 영국은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한 과정에 돌입했다. 보수당은 집권 세력으로 남겠지만 이미 열 명이 넘는 후보가 총리 경쟁에 뛰어든 혼란한 상태다.

 

비극적 종말이라고 할 수 있다. 존슨이 2019년 테리사 메이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았을 때 보수당은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형편없이 분열되어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존슨은 개인 리더십을 발휘하여 마거릿 대처 이후 보수당에 가장 큰 총선 승리를 안긴 지도자였다.

 

당시 존슨은 “브렉시트를 이루겠다”(Get Brexit Done)는 단순한 슬로건으로 정국 마비를 극복하는 구원자를 자처했다. 실제 존슨은 유럽연합과 협상을 종결함으로써 2020년 1월 브렉시트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존슨을 ‘미스터 브렉시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처럼 위기의 보수당을 수렁에서 건져낸 존슨이 어떻게 총선 승리 2년 반 만에 퇴출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일각에서는 영국 정치가 카리스마와 관리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번갈아 집권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대처와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과 메이로 이어지는 카리스마-관리능력 커플이다. 카리스마의 존슨이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이제 관리능력을 가진 총리로 권력을 넘겨줄 차례라는 말이다.

 

하지만 존슨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카리스마-관리능력을 통한 설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영국 중도 우파의 대표적인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존슨에 대해 “부정직하고 오만하며, 성적(性的)으로 무절제에다 능력은 없고, 유치할 정도로 무책임”하다고 묘사한다. 실제 거짓말을 잘하는 존슨의 성향은 유명하다. 그는 첫 직장인 타임스지에서 기사를 작성하며 가짜 인용문을 만들어내 해고당했다. 존슨은 이후 데일리 텔레그라프지의 브뤼셀 특파원 시절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럽연합을 비판하는 기사로 유명해졌다.

 

존슨이 누리는 대중적 인기의 비결은 삭막한 정계를 재미있게 만드는 유머와 위트에 있다. 그는 자신이 총리가 될 가능성은 가수 “엘비스가 화성에 가거나 자신이 올리브로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기자가 존슨에게 자동차광이 어떻게 녹색 환경주의자가 될 수 있냐고 물으면 “기후도 변하는데 내 생각이라고 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능청을 부렸다.

 

존슨의 문제는 유머와 위트가 비전이나 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양념이 아니라 변덕이나 거짓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이었다. 동료가 “정치인이란 항상 연기(演技)와 정치 사이에서 방황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존슨은 “코미디와 정치는 똑같은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수정해 주었다.

 

항상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허튼소리를 하는 존슨은 런던 시장일 때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외무장관으로 임명되고 2019년 총리로 부임하면서 국가 정책을 담당하게 되자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일례로 존슨은 유럽연합과 협상에서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단일시장의 규칙을 따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 약속을 번복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을 넘어 영국이라는 국가의 신뢰도를 낮추는 행태다. 코미디와 정치를 혼동하는 총리로 인해 보수당 집권 세력이 도매금으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코로나 위기로 정부는 전국을 봉쇄하고 시민의 외출을 금지했으나 막상 총리실에서는 술 파티가 열렸다. 총리가 임명하는 보수당 원내 부총무는 취중(醉中) 성추행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는데 그 사실의 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존슨은 오락가락했다. 내각의 인사들은 집단적 책임을 공유하기에 총리는 사건을 당연히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이들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번 달 들어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리듯 경쟁적으로 50여 명이 내각에서 사임한 직접적인 이유다.

 

이제 존슨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존슨이 퇴장한다고 보수당 정부나 영국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존슨의 총선 승리 자체가 무책임한 즉흥적 슬로건의 조합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존슨은 감세를 시행하겠다면서 동시에 빈곤층을 지원하는 지출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노동당의 선거 기반이던 미들랜드 지역에서 보수당이 성공을 거둔 배경이다.

 

과거 대처는 확실하게 신자유주의적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당의 블레어는 제3의 길이라는 일관성을 가진 프로그램을 내세웠다. 2010년대 캐머런도 재정 긴축과 균형이라는 목표를 꾸준히 추구했다. 하지만 존슨은 모순투성이의 정책 어젠다로 당선되었고 집권하면서도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부분은 유럽과의 관계다. 영국의 유럽연합 공식탈퇴는 일단락되었으나 경제적 대가는 오히려 지금부터 치러야 한다. 영국 정부 자체의 평가가 브렉시트 때문에 향후 10년간 경제성장률이 4% 포인트 정도 낮을 것이라고 본다. 브렉시트를 결정하고 6년이 지난 현재 영국의 무역 개방성은 이미 크게 줄었고 그로 인해 생산성이나 물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커졌다. 예를 들어 지난 2년 동안 영국의 식품 가격은 브렉시트 때문에 6% 정도 더 올랐다는 지적이다.

 

2016년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할 시기에 유행한 슬로건은 ‘글로벌 브리튼’이었다. 유럽에서 나가 더 큰 세계로 진입할 것이라는 포부였다. 당시 더 넓은 세상이란 기본으로 중국을 의미했는데 2022년 상황은 크게 변했다. 먼 중국은 물론, 가까운 러시아까지 적대적이거나 적어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유럽연합으로 돌아가는 일도 곤란하다. 일단 유럽이 무척 까다롭게 나올 것이 확실하다. EU가 변덕스럽게 들락날락하는 클럽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시 가입하려면 영국이 반드시 유로를 채택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 수 있다. 브렉시트로 영국은 안에서 누리던 혜택을 한꺼번에 포기한 셈이고 다시 진입하려면 모든 조건을 다시 협상하는 입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국민의 자존심도 단기적인 재가입 추진을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당 당수 키어 스타머가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 가입이나 심지어 단일시장 참여도 당장 정책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발표한 배경이다.

 

유럽연합도 영국이 탈퇴한 덕분에 지난 몇 년 동안 오히려 상당한 자유를 누리면서 일부 정책의 통합에 성공했다. 영국이 회원국일 때는 자신이 통합에 불참하는 것은 물론, 다른 국가의 통합도 반대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빠진 유럽은 코로나 위기를 맞아 공동 백신 정책을 만들었고, 재정 통합을 위한 기반을 다졌으며,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분위기로 나가고 있다.

 

유럽 회의주의(懷疑主義)라는 정치 아이템은 존슨이라는 젊은 기자에게 성공과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반(反)유럽주의의 폭발적 클라이맥스였던 브렉시트는 정치인 존슨을 권력의 정점인 총리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광대 존슨’의 시대는 끝났고 영국 국민이 뒤치다꺼리하는 일만 남았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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