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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유럽의회 극우 세력의 힘과 한계

    • 등록일
      2024-08-20
    • 조회수
      62

https://www.naeil.com/news/read/519822?ref=naver

 

지난 6월 초 치른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720명의 유럽의원이 선출되었다. 이들은 2029년까지 민의를 대표해 유럽연합(EU) 입법에 중추적인 몫을 담당할 예정이다. 임기 5년으로 선출되었으나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프랑스와는 달리 유럽의원은 임기를 끝까지 채울 것이다. 좋건 싫건 유럽연합은 향후 5년 동안 이번에 선출된 정치세력으로 27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정치체제를 끌고 가야 한다는 의미다.

 

유럽의회의 첫번째 임무는 5년 동안 EU를 주도해 나갈 지도부를 선출하는 일이다. 유럽의회는 지난 7월 2019년부터 5년간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을 다시 선출했다. 폰데어라이엔은 기독교 민주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리더로 유럽선거에 나섰고, 기민 세력을 대표하는 유럽국민당(EPP, European People’s Party)이 이번 선거에서 최다 의석(188석)을 차지했기에 자연스럽게 집행위원장에 재선된 셈이다.

 

 

 

폰데어라이엔, 녹색당세력 지원으로 재선

 

물론 유럽의회 과반수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민 세력의 의석만으로는 부족하다. 폰데어라이엔은 2019~2024년에도 기민-사민-자유 세력의 연합을 기반으로 집권한 바 있다. 이번에도 기민(188), 사민(136), 자유(77석) 세력을 합하면 의석수의 과반인 360석을 초과함으로 이론적으로는 선출될 수 있다. 다만 자유투표를 통해 집행위원장을 선출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한다.

 

이번에도 일부 의원들이 각종 불만을 앞세워 폰데어라이엔의 재선을 반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도의 기민-사민-자유를 넘어 더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폰데어라이엔은 이탈리아 조지아 멜로니 총리의 지원을 얻기 위해 공을 들였다. 멜로니와 극우 민족주의 세력인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2022년 집권 후 상당 부분 중도로 정책 방향을 틀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폰데어라이엔의 집행위원장 재선은 극우 세력이 아니라 녹색당 세력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유럽선거의 결과가 극우 세력의 상승세와 녹색당의 위축으로 나타나자 향후 유럽연합의 정책이 반(反)환경적으로 흐를 것을 우려한 녹색당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1979년부터 직접 선거로 선출한 유럽의회에는 전통적으로 확고한 정치세력들이 원내단체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 유럽 차원의 정당을 형성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세력은 기독교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종교인 기독교, 그리고 역시 인류가 목표인 인간 해방의 사회주의는 모두 민족을 초월하는 초국적 유럽 통합과 적절한 조합을 이뤄왔다.

 

 

기독교 민주주의는 20세기 중반 유럽 통합이 시작하던 시기에 독일이나 이탈리아, 그리고 베네룩스 등 창립 회원국의 주요 집권세력이었다. 프랑스만 기민주의가 약한 예외 국가였다. 2020년대 현재까지 기민주의는 여전히 유럽의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이고 덕분에 유럽국민당(EPP)은 폰데어라이엔을 통해 유럽연합의 집권세력 역할을 한다.

 

사민주의 또한 유럽 대륙의 핵심 집권세력으로 각 회원국의 중도 좌파를 대표해 왔다. 독일의 사민당(SPD)이나 프랑스 사회당(PS)은 유럽 통합을 주도해 온 주요 세력이었고 프랑스 사회당 출신 자크 들로르 집행위원장은 1980년대 유럽 단일시장이나 1990년대 유럽연합 출범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탈리아는 사회주의가 약한 회원국이었으나 스칸디나비아나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강력한 사회주의 세력이 있는 회원국이 늘어나면서 사민주의는 유럽국민당과 함께 유럽의회의 양대 축으로 기능했다.

 

 

기민과 사민의 양대 축에 동참하면서 삼각형을 이룬 것은 자유 민주주의 세력이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이미 19세기에 유럽을 지배한 세력이나 현재는 기민과 사민주의에 밀려 주니어 파트너의 역할만 한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세력 르네상스와 독일 자민당이 핵심을 형성하면서 20개 회원국에서 의원을 배출해 77석을 차지하고 있다. 자민세력은 시장 이데올로기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좌파와 대립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는 기민-사민과 힘을 합친다.

 

이번에 폰데어라이엔을 지지한 녹색당은 53석으로 지난 의회의 72석에서 상당히 줄어들었다. 역시 독일의 녹색당이 그중 12석으로 유럽 환경주의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녹색당이 각각 4~5석씩 보태는 모양새다. 환경주의 녹색세력은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민 세력과 종종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46석을 차지한 좌파(The Left)는 사민주의보다 더 왼쪽에 자리 잡은 세력들을 규합하고 있다. 원래 20세기에는 사민주의보다 좌측에 공산당이 강력하게 버티고 있었으나 21세기 들어서는 공산당이 아닌 신좌파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장뤼크 멜랑숑의 ‘불굴의 프랑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M5S), 그리스의 시리자 등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좌파의 회원 정당이다.

 

 

 

극우, 의석수로는 기민 사민 이어 제3세력

 

기민 사민 자민 녹색 좌파 등은 상당히 일관된 정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들이다. 이들 정치 이념은 특정 국가나 민족, 문화가 아니라 인류 보편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럽 차원의 초국적 세력을 형성하는 데 적합하다. 반면 극우 민족주의 세력은 유럽 차원의 세력을 만드는 데 익숙하지 못하고 쉽게 차이를 드러내며 반목하곤 한다. 유럽의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가장 이합집산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세력이다.

 

이번 유럽의회에서 극우 민족주의 세력은 ‘유럽애국자들(PfE, Patriots for Europe)’이라는 원내단체를 구성했다. 의석수만 본다면 84석으로 기민 사민에 이어 제3세력이다. 프랑스에서 제1당으로 부상한 민족동맹(RN)이 30석으로 중심을 차지하며,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피데스가 10석, 이탈리아의 북부 리가가 8석 등으로 제일 큰 주주들이다.

 

 

이전 의회에서는 프랑스 민족동맹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중심을 이루는 ‘정체성과 민주주의(ID)’라는 원내단체가 있었다. 그러나 2024년 선거를 앞두고 AfD 지도자가 친나치 발언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ID에서 퇴출당했다. 극단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집권세력으로 부상하려는 프랑스 RN의 전략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AfD는 이번 선거에서 사민당을 제치고 독일 제2당으로 부상했고, 14석을 얻어 이를 기반으로 ‘주권민족의 유럽(ESN, Europe of Sovereign Nations)’을 출범시켰다.

 

극우와 우파 중간쯤 위치한 또 다른 집합이 존재한다. 유럽보수개혁(ECR, 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세력으로 극단적 성격은 덜하지만 유럽통합에는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집단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 형제들’(24석)과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PiS, 18석)이 핵심 세력을 형성하며 78석으로 다소 온건한 반(反)유럽 세력을 꾸렸다.

 

 

 

세력은 성장했지만 분열과 대립이 일상

 

유럽에 회의적인 우파 포퓰리즘 세력은 이처럼 삼분되어 있다. 헝가리 오르반 총리와 프랑스 대권 주자 르펜이 이끄는 ‘유럽의 애국자들’,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유럽보수개혁당, 그리고 독일에서 제2당으로 올라선 AfD의 ‘주권민족의 유럽’까지 합하면 187석으로 기민세력의 유럽국민당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달리 말해 유럽의 극우는 이미 대륙 차원에서도 최대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뜻이다. 다만 상호 협력이 여의치 않으며 분열과 대립이 일상이기에 이들의 힘과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근시안적으로 자민족의 정체성과 이익만을 앞세우며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극우 포퓰리즘의 원초적 한계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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