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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프랑스 ‘광복’ 80주년의 풍경

    • 등록일
      2024-08-20
    • 조회수
      52

함께 싸워준 연합군 국기도 함께 거리 장식
지역마다 정치적 성향 상관없이 기념일 즐겨

 

 

 

2024년 8월, 서울에서 들려오는 분열의 광복절 소식과 프랑스에서 느끼는 광복 80주년이 교차하면서 많은 생각을 자아낸다. 한국과 프랑스는 대통령 선거의 주기만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다. 비슷한 시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군국주의 세력 일본과 독일로부터 영토와 주권을 회복한 역사 경험도 유사하다. 한반도가 일제에서 벗어났듯, 프랑스도 나치 독일과 그 괴뢰 정권에서 해방되었다.

 

1944년 8월15일은 파리에서 레지스탕스 봉기의 날이다. 같은 해 6월6일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은 원래 파리를 남겨두고 독일로 곧바로 진격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지하철, 경찰, 헌병을 필두로 총파업을 시작하고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며 독일군과 시가전을 벌이자 연합군도 파리를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미군 지휘 아래 있던 소규모 프랑스 군대가 명령을 무시하고 파리로 진격했다. 프랑스 수도 파리는 이렇게 8월25일 레지스탕스와 프랑스 군대의 협력을 통해 ‘자주적으로’ 해방되었다. 덕분에 샤를 드골 임시정부 수반은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개선장군으로서 행진하며 국내·국제적으로 정통성을 쌓을 수 있었다.

 

파리에서 레지스탕스 봉기가 일어나던 같은 날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으로 연합군의 두 번째 상륙작전이 이뤄졌다. 원래 대서양에서 노르망디 그리고 지중해에서 프로방스로 동시에 상륙할 예정이었으나 지중해 쪽이 두 달 정도 늦어진 셈이다. 1944년부터 이듬해까지 나치 독일과 전쟁 말기에 프랑스는 지중해를 통해 총 25만명의 군인을 투입해 본격적으로 연합군의 승리에 공헌했다. 전후 협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싸운 25만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식민지 출신이었다. 세네갈의 흑인이나 알제리의 회교도들, 심지어 멀리 남태평양 섬에서 차출된 군인들이 나치 체제를 무너뜨리고 프랑스 공화국을 재건하는 데 결정적으로 희생했다.

 

정치 싸움을 벌이는 데 둘째라면 서러운 프랑스지만 역사에 대한 냉철한 시각과 균형적 감각은 인상적이다. 식민지의 군인이 프랑스 광복에 결정적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최근 들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기념하기 시작했다. 올 8월15일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아프리카 국가 원수들을 프로방스로 초청하여 감사를 표명하는 기념행사를 열었다. 늦게라도 은폐되었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2024년 8월, 노르망디의 해변과 도시마다 나부끼는 성조기와 삼색기는 프랑스가 아직도 미국에 대해 역사적 감사를 표명하는 데 인색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상세히 들여다보니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연합국으로 전쟁에 동참한 나라의 국기가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대도시부터 시골 마을까지 해당 지방단체 집권당의 성향은 제각각일 터다. 그러나 지역 집권당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노르망디의 동네마다 광복의 기쁨과 기억을 국제적으로 즐기고 기리는 모습이다.

 

그렇다. 나 홀로 광복을 기념하기보다 군국주의 압제를 타도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함께 연대하고 투쟁했음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한 듯하다. 독일의 패배나 일본의 항복이 아닌 인류의 광복과 평화를 기념하는 일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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