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의사집단행동 어떻게 접근하나
의사들의 저항권 불법으로만 볼 일인가
2월 말부터 시작한 정부와 의사의 대립이 벌써 몇 주째, 한국 의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과 비교해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정부는 의대 정원의 폭발적 증가를 추진하고, 의사들은 사직(辭職)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여론은 이를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 비극적 상황에서 윤석열정부가 출범부터 강조했던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진 듯하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정부라도 독단적으로 정책을 강제하는 제도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권리를 존중하고 타협과 조율을 통해 정책을 집행하는 체제다. 특히 밥그릇이라 불리는 시민의 생존권은 보호받아 마땅한 권리다.
물론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는 특별하다. 의사의 권리와 시민의 공익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진국에서는 의사의 집단행동을 어떻게 다룰까. 워낙 의료시스템이 특수한 미국을 제외한다면 한국과 비슷한 유럽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보다 의사 수가 많은 유럽이지만 파업은 빈번하다. 의사 대부분이 공무원 신분인 영국은 지난해 여름을 파업하느라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전공의와 유사한 주니어 닥터들이 7월에 이어 8월에도 대거 파업에 돌입했었다. 쟁점은 인플레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해 먹고살기 어렵다는 불평이었다. 영국은 2023년만 파업으로 인해 80만회 이상의 의료 일정 차질이 빚어졌다는 소식이다.
2022년 11월에는 스페인 의사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다. 스페인, 특히 마드리드 지역은 영국과 유사한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의사 처우가 너무 열악해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스페인은 의사가 부족하지만 소득수준이 너무 낮아 기존의 의사도 다른 나라로 이주해 가는 대표적인 국가가 되었다.
시민사회보다 정부가 강한 전통의 나라 프랑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랑스는 공화국 헌법에 파업의 권리가 새겨진 나라다. 의사나 공무원, 교사 등 어느 직종도 파업의 권리를 갖는다. 군인과 경찰만이 예외다. 프랑스 종합병원 의사들은 지난 7월 처우개선이 없다면 필수의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파업을 일으켰다. 프랑스는 개업 의사들도 파업하는 신기한 사회다. 2023년 1월 프랑스 개업의들은 전국적 파업에 돌입했었다.
환자를 볼모로 한 의료 파업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유사회란 개인과 집단의 생존권, 저항권을 서로 인정하자는 약속이다. 때로는 답답하고 불편함에 화가 나지만 집단이나 개인의 권리를 강압적으로 짓밟아서는 곤란하다는 합의다.
한국에서는 의사의 파업이나 집단행동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의사들은 개별적 사직으로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다. 소득을 부분적으로 포기하는 파업에 비교한다면 사직은 누구에게나 위험한 최후의 선택이다. 그런데 정부는 병원과 대학에 사직조차 거부하라며 경찰 수사와 의사면허 정지로 대응 중이다. OECD 기준으로 보면 대통령의 자유 담론은 위선이고 정부의 정책은 폭정에 해당한다. 공무원조차 사표 내면 그만이고 조선시대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데 의사는 사직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셈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