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인한 다양성 사회, 국가 정체성 훼손 혐오
빅텐트 세력화 땐 극단적 어젠다 실행 가능성
한국에서는 보수 진영이 자유 민주주의를 강조하나 유럽은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하다. 유럽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함께 가기 어려운 이념이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보수가 대표하는 전통적 가치관과 제도를 짓밟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영국을 빼면 정당 명칭에 ‘보수’를 사용하는 정당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민족주의가 극우 보수 세력의 이념이라면 자유 민주주의는 중도 우파의 성향이며 이 둘은 강하게 부딪는다.
지난 14~1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유럽 극우 세력의 모임이 부다 왕궁 국립미술관에서 화려하게 개최되었다. 2010년부터 헝가리를 이끌어 온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인구 정상회담’이라는 이름으로 극우 지도자들을 정기적으로 모아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이번 회담이 국제적 관심을 끈 이유는 이탈리아의 현직 총리 조르자 멜로니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오르반과 이탈리아의 멜로니는 현재 유럽 정치에서 극우 민족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결혼, 가족, 출산은 전통적 가치관의 출발점이고 조국, 민족, 애국은 극우 사상의 지향점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고 사회의 질서와 가치관을 미래 세대로 전달해 주는 일이야말로 애국하는 길이고 민족의 번영을 위한 당연한 공헌이라고 여긴다. 유럽의 극우 보수는 이(異)민족의 이민(移民)으로 인한 다양성의 사회를 혐오한다. 민족의 정신과 국가의 정체성을 오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우가 이민을 반대하면서 가족을 진흥한다는 인구 정책을 즐겨 내세우는 배경이다. 헝가리는 가족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4명 이상의 자녀를 둔 여성은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 준다. 최근에는 3명으로 그 기준을 낮추려고 한다. 또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기존 대출을 감면해주는 주택정책을 편다. 헝가리의 출산율은 2010년 1.26에서 최근 1.52까지 높아졌다. 오르반은 자신의 가족 우대 정책 덕분이라고 주장하나 인구학자들은 지속 가능한 결과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오르반과 멜로니는 가족을 우대하고 이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공유하지만 다른 구체적 정책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는 난민의 유럽 분산을 요구하나 헝가리는 극구 반대하는 국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멜로니는 서방과 함께 비판적 입장이나 오르반은 여전히 친러시아적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멜로니는 이번 회담에서도 1956년 소련의 부다페스트 침략을 언급하며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오르반과 멜로니가 만나는 동안 이탈리아에서 경쟁하는 또 다른 극우 세력의 마테오 살비니는 프랑스의 마린 르펜과 회동했다. 내년 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럽 극우 세력의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형국이다.
유럽 극우는 크게 보면 두 가지 전략이다. 하나는 멜로니처럼 극우에서 극단적 성격을 떼어버리고 중도 우파로 변신하자는 노선이다. 반면 오르반이나 살비니는 프랑스 민족연합이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유럽의 극우 세력을 커다란 텐트 속에 하나로 모으자는 주장이다. 이 두 번째 전략이 성공할 경우 유럽의 극우는 더 과감하게 자신들의 극단적 어젠다를 실천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