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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9)] 관광, 인간을 유혹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 등록일
      2022-07-07
    • 조회수
      232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9)] 관광, 인간을 유혹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강력한 떠나고 싶은 욕망

정치·종교적 이유로 시작해 교육 목적으로 진화한 여행, 교통 발달로 날개 달아
대중화된 관광산업 아시아로 전파… 답사 공간의 이야기와 체험 위해 고행 감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의 사진을 찍기 위해 운집한 관광객들. 여행은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한 인증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관광업은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위기로 가장 심각한 손해를 입은 대표적 산업이다. 전염성이 강하면서 동시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신종 바이러스의 특징 때문에 인류의 이동과 교류가 거의 중단되거나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 관광의 큰손으로 부상한 중국은 2022년에도 여전히 해외여행을 거의 차단한 상태다. 반면 유럽이나 미국 등 대부분 국가는 백신 접종과 다수 국민의 감염 경력을 토대로 격리 기간을 없애는 등 여행을 다시 자유화하는 중이다.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21년 말, 관광업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의 7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질병과 사람의 이동이 충돌하는 관계가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특징이라고 속단하면 곤란하다. 인간의 이동과 전염병은 태초부터 인류의 발자취를 결정한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흑사병, 콜레라 등의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숨졌음에도, 아시아와 유럽은 끊임없이 교류를 지속해왔다. 인간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이동하고 교류하게 됐을까.

 

지배계층의 특권이었던 ‘여행’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를 작품으로 남겼다. / 사진:위키피디아

인류는 원래 꾸준히 이동하는 동물이었고, 농경시대로 돌입하면서 정주(定住)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동과 활동,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등이 유전자에 있는 데다 교류는 항상 커다란 경제적 이익과 문명적 혜택을 가져왔다. 개방적인 집단이나 교류가 활발한 지역에서 경제가 발달하고 문명이 꽃피었음을 보여주는 인류사가 이를 증명해 준다. 게다가 사람의 교류는 예기치 못한 선물도 제공했다. 세균과 질병의 교류가 유라시아 지역에 면역이 강한 인간 집단을 형성시켰다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이론([총·균·쇠])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이유로 병균에 취약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거주민들은 말살되고, 유럽인의 지배가 가능했다는 통찰이다.

 

여행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고립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실제 말 안 듣는 어린이부터 죄를 지은 어른까지 자유를 제한하는 감금은 흔한 처벌이며, 특히 집단에서 고립시키는 독방 감금은 가장 가혹한 벌이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환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했던 미국이나 유럽은 여러 차례 도시가 봉쇄되는 상황을 맞았다. 외출이 금지되자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동했다. 시골에서는 마당을 이용해 바람과 햇볕을 접할 수 있었으며, 매일 산책하기도 수월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부동산의 중심이 도심에서 지방으로 이동할 정도였다. 코로나 위기로 해외여행 길이 막히자 사람들은 국내로 발길을 돌렸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보편적인 현상이다. 심지어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만 한 바퀴 돌아오는 논스톱 비행이라는 초현실적 여행 상품도 등장했다.

 

여행과 관련한 고전적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왔다.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전쟁을 마치고 귀국하는 군대의 길고 험한 여정을 이야기한다. 중국의 [서유기]도 진리를 찾아 인도에 다녀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모험 넘치는 여행 소설이다. 일상을 벗어나 이동하는 영웅의 사연은 문명의 틀을 만드는 데 공헌했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고 신과 인간이 어울리는 신화적 배경을 넘어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교류와 여행이 지배계층의 특권처럼 부상했다. 유럽의 왕들은 여러 곳에 성과 궁을 짓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생활했다. 유럽의 자본가로 성장한 상인 계층은 지역을 이동하고 해외에 체류하는 일이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움튼 유럽의 자본주의는 배를 타고 지중해를 누비면서 출범했고, 네덜란드와 영국은 대서양을 통해 세계 바다를 지배하면서 지구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동아시아 문화에서도 지배계층은 중앙집권적 정치제도 속에서 임지를 돌며 생활했다. 일본처럼 봉건제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영주가 영지와 수도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상업 문화를 발전시켰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이 사냥에 몰두하며 자연을 누볐다면 동아시아의 관료와 지식인들은 여유롭게 산수와 풍류를 즐기는 부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여행과 관광이 비슷한 느낌이다. 굳이 한자를 풀어가며 분석해보면 여행(旅行)은 움직임이나 이동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의 Trip에 가깝고 프랑스어의 Voyage와 비슷하다. 반면 관광(觀光)은 빛, 다시 말해 선진 문물을 보는 행위, 더 나아가 느끼고 배우는 행위를 함축한다. 유럽 언어의 투어리즘(Tourism)과 통하는 말이다. 실제 유럽 투어리즘의 기원에는 영국 귀족 청년들이 대륙을 돌며 수행했던 그랑 투어(Grand Tour)가 있다. 영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17세기 영국 귀족들은 자식과 개인 교사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함께 여행하도록 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 문명의 중심지를 돌면서 문화와 예술을 배우고 익히도록 했던 것이다.

 

귀족 청년의 ‘그랜드 투어’


▎1851년 영국 런던의 만국박람회가 열린 크리스털 팰리스. / 사진:위키피디아

투어는 ‘한 바퀴 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냥 이동하는 여행과 결이 다르다. 게다가 상업이나 전쟁을 위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행위와도 구분된다. 유럽에서 상인들은 오래전부터 육지와 바다를 오갔고, 십자군은 중세에 이미 서남아시아까지 이동해 전쟁을 치르곤 했다. 반면 영국 청년들은 순수한 관찰과 배움, 경험과 고찰을 위한 여유로운 여행을 즐겼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Stendhal)은 1838년 [투어리스트의 회상록](Mémoires d’untouriste)이라는 작품을 통해 문화와 교양을 쌓기 위해 개인적으로 다니는 여행자를 투어리스트라 불렀다. 이후 투어리즘 즉 관광이라는 표현이 점차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인류사에는 투어리즘의 사례들이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유목민은 대개 주어진 영역 내에서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종교적 목적으로 여행하고 돌아오는 일도 빈번했다. 모든 이슬람교도에게 권장되는 메카 여행이 대표적이지만, 성지 순례는 기독교에서도 자주 관찰할 수 있는 여행의 사례다.

 

여행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요인은 무엇보다도 교통의 발달이다. 특히 19세기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철도가 전국에 깔렸다. 증기기관 덕분에 여행의 속도는 빨라지고,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귀족이나 부자들만이 누렸던 관광의 특권이 점차 대중화,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됐다.

 

대중적 관광의 발전은 현대 자본주의의 본고장 영국에서 시작됐다. 18세기 귀족 청년들이 큰돈을 들여 유럽 대륙을 여행할 때, 부모들은 영국 국내에서 온천이나 해수욕을 즐기곤 했다. 바스(Bath)나 브라이튼(Brighton)은 귀족들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였고, 런던과 이들 도시를 연결하는 유료 도로는 영국에서 관리가 가장 잘 된 훌륭한 길이었다. 철도가 개설되기 직전인 1835년 런던과 브라이튼 사이의 합승(合乘) 마차(馬車) 여행객은 이미 연간 12만 명 정도에 달했다. 일찍이 휴양도시는 바닷바람을 쐬며 산책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던 셈이다. 당시에는 수도 런던에서 불과 80㎞ 남쪽에 있는 해안 도시까지 가는데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1841년 기차가 개통되고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1862년 부활절에는 하루에 12만 명의 여행객이 몰려왔다. 여행 시간은 두 시간으로 줄었고, 12실링이던 마차 가격은 기차 요금 3실링으로 대폭 싸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의 철도회사들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다 쏟아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 사이에는 세계 최초의 여객기차 노선이 운영됐는데 바자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특별 할인된 기차표를 팔곤 했다. 웨일스 지역에서는 사형 집행 구경을 위한 기차여행도 있었는데 관광객을 위해 형장을 아예 기차역에 설치했다고 한다.

 

철도가 가져온 사회적 변화


▎이슬람교도의 의무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나 순례는 종교적 여행에 해당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철도를 통한 관광의 발전은 민주적인 사회로 이행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말을 타는 귀족과 걸어서 여행했던 수많은 보통사람 사이의 격차는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기차는 기껏해야 일등석과 이등석의 차이가 있을 뿐, 귀족과 노동자 수천 명이 같은 철로 위에서 함께 이동하는 운명 공동체였다. 부를 과시하고 싶던 귀족은 말과 마부를 싣고 기차로 이동한 다음 목적지에서 다시 개인용 말과 마차를 타곤했다. 마세라티 자동차를 비행기에 싣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자본주의와 관광의 만남을 상징하는 인물은 토머스 쿡(Thomas Cook, 1820~1890)이다. 놀랍게도 쿡을 사업으로 이끈 것은 종교적 신념이었다. 독실한 침례교도였던 그는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이 획기적인 교통수단을 금주(禁酒) 사업에 동원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1841년 백여 명의 손님을 모집해 단돈 1실링이면 왕복 기차여행을 하면서 금주를 위한 피크닉에 참여할 수 있는 티켓을 팔았고 대성공을 거뒀다. 고객의 교통과 식사를 동시에 해결해 주는 패키지여행의 발명이었던 셈이다. 쿡의 혁신적 사업 아이디어는 1851년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때는 숙박까지 해결된 덕분에 무려 16만 명이나 되는 지방 관광객들이 쿡의 회사를 통해 런던 박람회를 구경할 수 있었다.

 

영국 국내에서 시작한 대규모 패키지여행은 점차 해외까지 범위를 넓혀갔다. 영국의 만국박람회에 이어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는 영국인의 해외여행 보편화에 크게 작용했다. 토머스 쿡은 최고급 호텔을 선정해 음식이 영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관리하는 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는 한해 2만 명의 고객을 책임질 정도로 사업을 키웠고, 1878년에는 그 수가 7만을 넘었다. 구매력을 가진 상류층에서 시작한 해외여행이 점차 대중으로 확산하는 과정이다. 물론 이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파리 공터에 임시 건물을 지어 숙박하도록 했다.

 

영국에서 철도와 만국박람회를 통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관광 산업은 증기 여객선이나 버스, 항공기 등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을 더 멀리까지 여행하도록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다. 1960년대부터 일본을 선두로 한국, 중국 등이 점차 세계 여행의 주요 고객으로 떠올랐다. 대륙을 횡단하는 항공 루트가 개발되면서 장거리 여행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깃발을 들고 루브르 박물관을 휘젓고 다니는 동양인 단체관광객은 익숙한 광경이 됐고, 동아시아의 집단주의니 뭐니 해석도 분분하다. 하지만 이는 단지 매우 경제적인 해외여행의 방식일 뿐이고, 유럽의 관광 산업도 19세기 중반 비슷한 양상으로 시작했다.

 

관광 산업의 세계화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트레비 분수를 방문하는 것이 당연한 공식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대중적 여행 산업은 발전을 거듭해 21세기 해외여행은 많은 지구인의 일상이 됐다. 2012년 해외 여행객 수가 상징적으로 10억 명을 돌파했다. 당연히 이 엄청난 인구가 일시적으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교통, 숙소, 식사 등 기본적인 요소를 해결하는 사업이 번창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볼거리다. 초기 사형집행이나 만국박람회가 잘 보여주듯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행사나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일에 국가적 경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월드 엑스포나 올림픽 게임, 월드컵은 세계인의 행사가 됐고, 다양한 분야의 축제가 세계적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일시적인 축제나 행사 차원을 넘어 관광 자원을 개발해 장기적인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지구적 유행이다. 대표적으로 박물관 설립이 그렇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1만7500여 개의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6300개), 일본(5700개), 중국(3900개)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지금은 중국이 일본이나 독일을 따라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개 목걸이’ 박물관부터 인도의 ‘화장실’, 스페인의 ‘장례 마차’나 미국의 ‘탄 음식’(Burnt food) 박물관까지,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관광 산업이 부상할 때부터 여행은 계급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분야였다. 영국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국내 도시를 떠나 해외로 눈을 돌린 중요한 이유도 관광의 대중화로 인해 휴양도시들이 군중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스위스 알프스산맥이나 프랑스 남부의 해변으로 멀리 떠나갔고 덕분에 스위스의 다보스나 인터라켄, 프랑스의 니스 등이 국제 관광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뤼크 볼탄스키와 아르노 에케르는 [풍요](Enrichissement)라는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의 변화에 주목했다. 자본주의는 상당히 오랜 기간 대량 생산과 소비라는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으나 풍요사회에 돌입하면서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는 주장이다. ‘완전 자본주의’(Capitalismeintégral) 논리의 핵심은 ‘부가 축적되면서 나타나는 풍요가 다시 부를 낳는다’는 점이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새것이 헌것보다 비싸다. 하지만 풍요로운 완전 자본주의에서는 오래된 것이 새것보다 소중하고 비싼 경우가 빈번하다. 새로 지은 전원주택을 구경 오는 것은 친구들뿐이지만 100년 넘은 고택(故宅)은 관광 자원이 되고, 1000년이 되었으면 유네스코 유산 목록에 등재를 시도해볼만하다. 19세기에 지어진 멋진 성보다 2000년 전 유적의 작은 돌기둥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논리다. 기능성을 중시하던 초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문화적이고 역사적 의미를 따지는 ‘풍요의 자본주의’로 이행한다는 설명이다. 관광 자원에는 이런 논리가 가장 뚜렷하게 적용된다. 두바이의 최첨단 건물과 아부다비의 박물관보다 파리의 역사적 문화유산을 선호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자연조차 남아메리카의 안데스보다는 유럽의 알프스를 구경하고 싶어 한다. 알프스는 코끼리를 몰고 로마를 공격한 한니발 장군부터 하이디 소녀까지 역사적 이야기와 문화적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쟁에서 후발주자는 막강한 이점을 누린다. 저렴한 노동력과 최첨단 설비를 동원해 값싼 상품을 대량 생산하는 데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풍요를 누려온 사회가 보유한 물질적 토대와 문화적 자본은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열심히 저렴한 물건을 만들어 번 돈을 유럽 여행에서 명품 쇼핑으로 소비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이유다. 명품이 담고 있는 명성과 문화적 가치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은 일과 여가로 분명하게 나뉜다. 여기서도 초기 자본주의와 성숙한 자본주의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일과 여가가 뒤섞여 있었다. 농촌이건 도시의 작업장이건 일하면서 농담도 하고 새참도 즐기며 술도 한두 잔 마셨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테일러리즘이나 포디즘 등의 이름으로 노동과 휴식의 확실한 구분이 도입됐다.

 

풍요는 다시 부를 낳고

초기 자본주의에서 휴식은 노동을 위한 재생의 시간, 즉 레크리에이션의 시간이었다. 공장에서 종일 근무하기 위해 밤잠을 자고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관광을 포함한 레저의 개념이 서서히 움텄다. 휴식은 일하기 전에 쉬는 시간이 아니라 여유를 즐기고 개성에 따라 취미생활을 하는 기회라는 의식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선진국을 기점으로 휴일이나 유급휴가는 19세기부터 점차 늘어났고 노동시간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이제 성숙한 선진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을 위한 휴식이 아니라 레저를 위한 노동으로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도 노동 중심의 초기 자본주의에서 풍요의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일 것이다.

 

다만 자본주의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레저도 노동이나 생산과 유사한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 특히 여행이나 관광의 영역에서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예를 들어 여행은 정확하게 목적과 수단으로 나뉜다. 목적은 도달해야 하는 장소이자 경험해야 하는 순간이다.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을 봐야 하고 베이징에서는 자금성을 빠뜨릴 수 없다. 석양이 지는 발리의 해변을 산책하고 사라져버릴 도시 베네치아에서 카푸치노를 마셔야 한다.

 

현대 사회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매뉴얼로 행동 지침을 제공하듯,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한 손에는 여행 가이드북, 다른 손에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들고 정해진 장소에서 ‘추억 생산’하기에 바쁘다. 인터넷만 뒤지면 훌륭한 사진이 넘쳐나지만 ‘내 얼굴이 들어간 내가 찍은 사진’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이라는 의미의 버킷 리스트는 삶에 대한 매우 특수한 접근법이다. 장을 보듯 목록을 만들어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목적의식도 대단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고 얼른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채찍질도 자본주의 생산 방식과 흡사하다. 그리고 이런 리스트는 개인적이라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각종 가이드나 인플루언서가 정한 메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노동이 돼버린 레저

유네스코가 지정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역사 유산은 곧바로 방문할만한 가치로 해석돼 최상급 관광 자원으로 각인된다. 지역과 국가마다 이런 상징적 자본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을 벌이는 이유다. 여행은 점차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코스를 답사하는 또 다른 노동으로 변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위기는 여행과 관광에 가혹한 충격을 가했다. 사람들은 먼 나라와 도시보다 평소 소홀했던 자신의 마당이나 가까운 뒷산, 국내 여행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런 경향이 계속될지, 아니면 과거의 대중 여행 시대로 돌아갈지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게임이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관광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점점 부를 창출하는 재료로 부상하고 있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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