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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시사매거진][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0)] 인류 문명을 전진시킨 에너지 변천사

    • 등록일
      2021-10-14
    • 조회수
      265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0)] 인류 문명을 전진시킨 에너지 변천사

 

전기는 여성해방의 진정한 전사였다

세탁기·냉장고·청소기 사용은 가사 노동 시간 축소에 큰 기여
석유 등 효율 높은 연료 개발 덕분이지만 지구는 온난화 몸살


▎중국 신장 지역의 풍력 발전 광경. 지구온난화가 심화할수록 친환경 에너지는 각광받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에너지야말로 유일한 보편적 화폐(universal currency)다.” 에너지는 물질에서 열이 되기도 하고 빛으로 변하기도 하며 움직이는 힘으로도 돌변하는 능력까지 있다 보니 어디서나 통용되는 돈과 같다는 뜻이다. 캐나다의 바츨라프 스밀 교수는 <에너지와 문명>이라는 역작에서 인류의 역사를 에너지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분석하고 서술했다. 그는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는 핵심 요소는 궁극적으로 에너지라는 화폐 가치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주장을 편다. 에너지는 생명 그 자체다. 인간은 음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생명을 유지한다. 음식의 재료가 되는 동·식물도 태양과 다른 생명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태양의 빛과 열은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화학 에너지로 전환되고 인간과 동물은 이를 먹고 살아가는 셈이다. 인류가 자연 상태에서 문명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에너지를 지혜롭게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인류 초기 불은 문명을 향한 첫발을 내딛게 했다. 불은 작은 태양처럼 어둠을 밝히는 존재였고 추운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온기도 선사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활동 범위를 온대지역 너머까지 넓혀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또 음식을 익혀 먹는 화식(火食)은 인간이 소화기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두뇌로 돌리는 데 요긴했다. 밥만 먹으면 쏟아지는 졸음은 우리 몸 안에서 뇌와 소화기관이 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는지 체험하게 한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됐다. 석기, 청동기, 철기 등 인류의 발전 단계와 시기는 도구를 만드는 소재를 중심으로 구분한다. 청동과 철의 생산은 전형적으로 불의 조절 능력에 의존한다. 에너지를 다루는 기술이 인류 발전의 디딤돌이었다는 뜻이다. 벽돌이나 도자기의 생산 과정에서도 화력을 활용해 구워내는 기술이 소재의 기능을 대폭 향상하는 비법이다.

 

21세기 한국인에게 트레드밀(treadmill)이란 다이어트나 체력 단련을 위해 실내에서 달리는 운동기구다. 원래 트레드밀이란 밟기(tread)와 으깨기(mill)의 조합으로 인간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장치에서 유래했다. 19세기 영국 감옥에서는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곡식을 분쇄하거나 물을 퍼내는 작업을 시켰다. 철로 만든 긴 바퀴에 나무 발판을 매달아 수감자들이 밟아서 돌리도록 만든 기계가 바로 트레드밀이다.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달아 40여 명까지 동시에 노동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였다. 영국은 1898년이 돼서야 감옥에서 운영하는 트레드밀을 법으로 금지했다.

 

단추만 누르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21세기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뼈를 깎는 노동으로 이뤄져 왔다. 트레드밀에서 볼 수 있듯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세기 영국에서도 인간의 에너지는 여전히 요긴하게 동원됐다. 수백미터 지하에 들어가 산업화의 양식인 석탄을 캐내는 작업은 인간 노동의 몫이었다. 탄광의 좁은 구석까지 침투해 석탄을 긁어오는 역할은 어린이들의 고사리손이 담당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 중세 유럽의 고딕 성당 역시 인간 노동의 에너지가 만들어낸 엄청난 건축물들이다. 현대 기중기가 간단하게 해결할 과제를 당시 사람들은 묘안을 짜낸 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천천히, 차근차근 진행했다. 과거의 공기(工期)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레드밀’, 곡식 분쇄 강제 노동 장치서 유래

 


▎고대 이집트에서 소를 활용해 농사짓는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인류의 동반자 가축은 인간에게 영양을 공급했을 뿐 아니라 노동력까지 빌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특히 밭을 가는데 소나 말, 노새 등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소가 농사의 일꾼이었다면 유럽은 말을 주로 사용했다. 말은 체중의 중심이 앞쪽에 있어 소보다 끄는 힘이 우월하다. 800~1000㎏ 정도의 대형 짐승이라면 황소(250~550W)보다 말(500~850W)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말은 풀이나 짚을 먹을 때보다 곡식을 섭취할 때 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말의 노동력에 의존하면 농업 생산성을 계속 높여야 하는 압력이 생긴다. 사람에 더해 말도 곡식을 먹어야 하니 말이다. 19세기 미국이나 아르헨티나, 호주 같은 국가에서 농업 생산성이 놀랍게 발전한 비밀은 말에 있다.

 

밭을 갈거나 밀을 수확하는데 말을 집단으로 활용하는 기계들을 사용했다. 20세기 초반이 되면, 최다 40마리의 말을 동시에 투입하는 수확 기계도 생겼는데 1헥타르(3025평)를 40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 19세기 초 한 명의 농부(80W)가 황소 두 마리의 도움(800W)을 받아 짓던 농사를 평균 말 30마리를 동원해 기계로 지으면서 1만8000W의 에너지를 활용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100년 사이 농부의 노동생산성이 20배 정도 늘어난 셈이다. 농업 대국 미국의 힘은 말의 에너지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0년 미국 농장에는 2400만 마리의 말과 노새가 ‘근무’했고 덕분에 인간이나 소가 일하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자랑할 수 있었다. 당시 트랙터는 1000대에 불과했다. 미국 농업의 진정한 기계화는 20세기에 일어난 현상이다.

 

‘소-나무’와 풍차, 미국 서부 개발 숨은 공신

 


▎20세기 초 미국 펜실베이니아 광산의 어린이 광부들. / 사진:위키피디아

인류의 발전에서 도시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분업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이는 특화와 전문화를 가져왔다.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삼는 농촌과 달리 도시는 교환을 통해 운영되는 사회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근대화 이전에는 도시가 발전하려면 식량과 물의 공급이 결정적으로 중요했으나 연료 또한 중요한 변수였다. 음식을 만들거나 난방을 위해 연료가 필요했고 당시 나무와 숯은 거의 유일한 에너지 공급원이었다. 달리 말해서 한 도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땔감을 댈 수 있는 충분한 숲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겨울을 지내야 하는 온대에서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도시 면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숲이 존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매년 나무가 자라는 속도는 에너지 소비의 2%밖에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대나 중세에 큰 도시가 발전하기 어려운 중요한 제약이었던 셈이다.

 

꼭 도시가 아니더라도 땔감은 항상 인류의 큰 고민거리였다. 위에서 살펴본 가축과 동물은 나무가 충분치 못한 지역에서 배설물을 통해 인간의 고민을 해결해 주곤 했다. 지금도 지구촌 많은 지역에서는 동물의 말린 똥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인들이 서부를 개척할 때도 숲이 부족한 건조한 지역에서는 소똥 덕분에 추위를 버티면서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소-나무’(cow wood)라는 말이 유행했다. 인간과 동물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준 일등공신은 시냇물과 바람이다. 다른 사람을 부리든, 동물을 활용하건 자연만큼 꾸준하게 일하지는 못한다. 물레방아나 풍차는 고안해서 만들기가 어렵지만 일단 설치해 놓으면 사람이나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하게 작업에 임한다. 먹이 걱정도 없고 휴식도 필요 없다.

 

밀가루를 갈아 빵을 만들어 먹는 유럽에서 수차(水車)는 중세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수차의 사용이 일반적이지는 않았지만, 11세기 영국에서는 이미 6500개의 수차가 활용됐다. 10명 정도의 노동자가 작업하는 작은 수차라면 3500명 정도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밀을 분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풍차를 활용해 저지대 물을 뽑아 올렸고 그곳에 농지와 도시를 만들었다. 17세기 세계를 지배한 네덜란드는 풍차 에너지로 세운 셈이다. 수차와 풍차는 산업혁명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제사(製絲)나 방직공장은 수차가 제공하는 에너지에 크게 의존했다. 1880년대 이전까지 수력이 석탄을 활용한 증기기관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세기 말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수백만 개의 풍차를 활용했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풍차야말로 요긴한 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소-나무’와 풍차는 이처럼 미국 서부 개발의 숨은 공신이다.

 

이동성 장점 증기기관, 물레방아에 승리

 

석탄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동반자였다. 중국은 고대 한나라 시기 이미 석탄과 천연가스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유럽은 중세부터 석탄을 이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나무나 숯을 대신하는 본격적인 연료로 석탄을 널리 활용하기 시작한 지역은 16~17세기 영국이다. 우리는 18~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생각하며 석탄의 등장을 상상하지만, 석탄은 그보다 훨씬 먼저 연료로 자리 잡았다. 영국은 ‘석탄 섬’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석탄이 풍부한 나라지만 전통적으로 캐기 어려운 석탄보다는 베기 쉬운 나무를 연료로 활용했다. 다만 16세기부터 숲은 줄어드는데 선박제조와 같은 목재 수요는 늘어나 나뭇값이 올라갔다. 그 결과 석탄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영국의 주요 탄광이 모두 1540년에서 1640년 사이에 개발됐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석탄을 캐는 과정에는 인간의 힘든 노동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땅속으로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가 석탄을 캐오기 시작했는데 탄광의 깊이는 1700년에 100m, 1765년에 200m, 1830년에 300m 등으로 점차 기록을 갈아치웠다. 17세기가 되면서 목재나 숯보다 석탄을 사용하는 작업장과 가정이 더 많아졌고 영국은 석탄이라는 화석연료로의 이행을 최초로 달성한 나라가 됐다. 석탄은 코크스(coke)의 개발로 철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효율성을 높여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해줬다. 석탄의 이용은 영국 에너지 문화의 특징이 되었고 증기기관과 결합하면서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론 앞서 보았듯이 산업혁명 시기 내내 석탄을 활용하는 증기기관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수차나 풍차는 경쟁 관계였다. 자연의 힘을 공짜로 이용하는 수차나 풍차가 훨씬 경제적이었지만 증기기관은 설치 장소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었고, 심지어 기차나 배와 같은 이동수단에 장착할 수도 있었다. 물레방아와 증기기관의 시합에서 이동성이라는 장점이 후자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 특허를 낸 것은 1769년이지만, 증기기관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70년 뒤인 1840년대 기차와 증기선이 널리 퍼지면서다. 그리고 영국에서 나타난 에너지원의 변화가 세계 다른 지역으로 확산했다. 일례로 일본은 1880년만 하더라도 나무와 숯이 1차 에너지의 85%를 공급했으나 1901년이 되면 석탄 비중이 50% 이상으로 부상하고, 석탄 사용의 정점인 1917년에는 77%까지 상승했다. 유럽에서 영국과 주도권을 놓고 경쟁한 프랑스의 경우, 나무에서 석탄으로 이행이 특별히 늦었다. 프랑스는 19세기 초 1차 에너지에서 나무의 비중이 여전히 90% 이상이었고 그것이 50% 이하로 떨어진 것은 1875년의 일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19세기 상당 부분을 석탄을 때우는 영국과 숯을 피우는 프랑스가 경쟁한 셈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18세기 독립 이전 버지니아에서 석탄생산을 시작했으나 1884년이 돼서야 석탄의 비중이 나무를 추월하게 된다. 대자연에 쓸 만한 목재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석탄보다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발견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바로 석유의 등장이다.

 

석유는 단연 연료의 황제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바짝 마른 나무의 에너지 밀도가 17~21MJ/kg이라면 석탄은 18~25MJ/kg수준이다. 나무와 석탄은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유사한 밀도이지만, 석유는 40~44MJ/kg로 두 배 이상이다. 게다가 정유 과정을 거치면 에너지 밀도는 더욱 높아진다. 석유는 또 고체인 나무나 석탄과 달리 액체이기에 운송이 까다롭다. 처음 석유를 개발했을 때 미국에서는 나무통에 석유를 담아 마차에 실어 나르곤 했다. 그러나 파이프라인이 개발되면서 오히려 고체보다 훨씬 수월하게 운송할 수 있는 에너지로 떠올랐다.

 

에너지는 경제 발전을 한걸음 앞서 예시해 주는 것일까. 영국이 산업혁명의 리더로 부상하기 훨씬 전부터 에너지 중심이 석탄으로 이행했듯 미국과 러시아는 20세기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전에 이미 석유 개발에 뛰어들었다. 러시아는 1846년에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 지역에서, 그리고 미국은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20m가 넘는 깊이의 유전을 통해 석유를 체계적으로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로 석유 생산의 영역을 넓혔고, 러시아도 카스피와 흑해를 중심으로 석유 개발에 나섰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석유 생산은 서남아시아와 남미 등으로 퍼졌다.

 

석탄이 단순한 연료로 사용되다가 증기기관과 결합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듯이 석유도 내연기관(엔진)과 짝을 이루며 세계적인 유행을 맞게 되었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과학은 프랑스가 더 발달했는데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자동차 개발에서 유럽과 미국이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왜 미국에서 자동차 문화가 발전했는지 궁금해한다. 영국의 풍부한 석탄과 미국의 풍요로운 석유 생산, 그리고 에너지를 배급할 수 있는 인프라 시설은 이런 차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20세기가 되면 기술의 발달로 예전에 그냥 태워 버리던 가스도 연료로 확보해 사용하게 됐다. 가스와 석유는 이제 대규모 선박이나 파이프라인이라는 에너지 수송 고속도로를 통해 수천㎞ 거리에 있는 소비 시장까지 전달되는 편리한 인류의 에너지가 됐다. 21세기는 시베리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가 독일 베를린이나 중국 베이징 시민의 부엌까지 속속 배달되는 시대다.

 

석유, 세계 정치 뒤흔드는 요인으로 부상

 


▎전기의 체계적 공급을 고안한 에디슨. / 사진:위키피디아

석유와 가스가 워낙 중요한 지구촌의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하자 국가 경제를 좌우하고 세계 정치를 뒤흔드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서남아시아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란, 이라크 등 산유국들은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석유 가격을 인상해 세계 경제의 위기를 초래한 바 있다. 석유 수출국 집합인 OPEC은 세계 정치의 당당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러시아가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은 바로 풍부한 석유와 가스 자원에 있었다. 나이지리아나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안겨주는 국부를 차지하려는 세력들의 다툼으로 국내 정치가 혼란에 빠졌다. ‘자원의 저주’인 셈이다.

 

세계 경제의 에너지 갈증은 새로운 생산 지역과 신기술을 불러왔다. 유럽 북해 유전의 개발은 영국이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 엄청난 횡재를 안겨줬다. 또 셰일 가스와 석유 개발 기술은 미국이나 중국 등 기존의 경제 대국의 에너지 고민을 덜어주는 선물이었다.

 

공상과학 소설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서 네모 함장은 잠수함에 빛을 공급하고 따듯함을 제공하며 모든 기계 시스템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일꾼, 힘이 넘치면서도 말을 잘 듣고, 신속하며 어떤 일이라도 척척 해내는 일꾼은 바로 전기라고 설명한다. 1870년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 전기는 아직 초창기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파리의 콩코드 광장이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기로 빛을 발하는 장치가 실험됐을 뿐이었다.

 

에너지끼리 경쟁에서 전기가 갖는 놀라운 장점은 이동성이다. 바로 석유와 가스가 숯이나 석탄에 대해서 가졌던 운송의 수월함이다. 파이프라인이 네트워크로 형성되면 석유나 가스 운송·배급의 편리함을 숯이나 석탄은 따라올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전기도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석유나 가스를 능가하는 이동성을 자랑한다. 전선만 연결되면 전기는 순식간에 가볍게 이동하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제대로 파악한 이가 에디슨이다. 그는 빛을 발하는 전구뿐 아니라 전기를 만들어 공급하는 시스템이 사업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발전과 송전, 배급과 계량이 동반되는 인프라의 구축을 우선시했다.

 

에디슨 이후 지난 150년 동안 인류의 역사는 전기 인프라가 지구촌을 촘촘히 뒤덮는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에서 밤에 바라본 지구의 사진은 전기가 밝히는 불빛으로 경제 발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혁명으로 소련을 일으킨 레닌은 1920년대 “공산주의는 소비에트의 권력과 전기”를 의미한다고 외칠 정도였다. 반대편 자본주의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1930년대 거대한 댐을 건설해 전국에 전기를 공급하는 그 유명한 뉴딜정책으로 경제를 재건했다.

 

21세기는 배터리라는 휴대용 에너지 시대

 


▎석유는 20세기를 지배하는 연료로 군림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주 아나콜테스 정유공장. / 사진:위키피디아

전기는 경제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사회의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가사 노동에서 여성을 해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냉장고와 진공청소기,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전기다리미나 믹서, 전자레인지 등은 가사 노동 시간을 절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관점에서 전기야말로 20세기 여성해방의 진정한 전사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는 배터리라고 하는 휴대용 에너지의 시대가 됐다. 고정된 물레방아를 어디나 설치 가능한 증기기관이 누르고, 무거운 증기기관보다 가벼운 내연기관이 승리를 거두었듯 에너지 분야에서 반복되는 변화의 기준은 이동성이다. 갖고 다니기 편리하게 점점 크기는 작으면서도 사용 시간이 긴 배터리가 경쟁의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의 배터리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21세기 인류는 전기가 없는 삶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전기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을 동반하는 일꾼으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만큼 중요한 인류의 일상 주식이 됐다. 따라서 석탄과 석유, 가스는 물론 오래전부터 물레방아를 돌리던 수력이나 풍력 등 모든 힘이 발전에 동원됐다. 원자력의 가공할 폭발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에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증명됐다. 이후 전기 발전에 원자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원자력 발전은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나 자원의 투입이나 공해의 배출에 있어서 경제적이다. 석탄이나 석유 등 자원이 부족한 선진국형 에너지라고 할 수도 있다. 2020년 현재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국가로 프랑스(70%)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를 들 수 있고 한국은 30%, 미국이나 러시아는 20% 수준이다.

 

원자력, 환상적 효율성과 위험성 공존

 

환상적 효율성을 자랑하는 원자력은 동시에 가장 위험한 에너지이기도 하다. 원자력 발전이 생산하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도 난해한 문제며, 사고가 나면 인간과 자연에 치명적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1979년), 소련의 체르노빌(1986년), 그리고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2011년) 원전 사고는 효율성이 동반하는 엄청난 위험을 고스란히 보여준 바 있다.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여론이 강하기에 독일은 탈원자력을 선언했고 미국이나 일본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현재 세계에서 건설 중인 60여 개의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중국이 25개로 가장 많고 러시아 9개, 인도 6개 등이다.

 

원자력 발전은 지구 온난화의 문제가 연결되어 복합성을 띤다.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은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 에너지의 사용이다. 인간의 전기 사용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서도 화석 에너지 사용을 축소하는 해결책이 바로 원자력 발전이다. 친(親) 원자력 세력은 환경친화적 성격을 앞세우며 원전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물론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탈원전이 오히려 재생에너지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반박하지만 말이다.

 

21세기 들어서도 상당 기간 지구 온난화는 먼 미래에 닥칠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온난화의 문제를 환경론자나 학자들의 탁상공론으로 폄하하며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서면서 지구촌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이상 기후, 산불과 홍수, 태풍과 가뭄은 온난화 현상으로 초래되는 심각한 위험이 코앞에 닥쳤다는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질문명의 많은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여기에서도 문제의 핵심은 중국이다. 중국은 2010년 미국을 앞질러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됐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세계 에너지의 1/3 정도를 하마처럼 흡수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미국인의 1/3에 불과하다. 달리 말해 중국인이 미국인만큼 에너지를 사용하는 날이면 중국 한 나라의 사용량이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과 같아진다는 의미다. 게다가 중국 인구를 곧 추월할 인도의 에너지 소비도 경제 발전과 함께 증폭할 예정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나 결과적으로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게 됐다. 서구 수준의 발전을 추구하는 중국과 인도의 추격은 지구촌 에너지 총량의 조절이 얼마나 힘들지를 예고한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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