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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역사 기억의 ‘자산’과 ‘이자’

    • 등록일
      2021-10-12
    • 조회수
      225
먼 과거의 일 가져와 현재의 정치적 이득 노려
미래 지향적 화합 못 이루면 영원한 대립 계속

최근 들어 역사 기억을 둘러싼 국제적 대립이 더 빈번하고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화로 교류가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집단적 자의식도 강해지고 타자의 시선에 더 민감해진 탓이다. 게다가 신속한 정보의 전달은 오히려 충돌의 파장과 기회를 증폭시킨 셈이다.

 

지난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알제리 출신 청년들과의 대화에서 현 알제리 정부를 ‘군부정치 체계’라고 비판하면서 지배세력이 ‘역사 기억의 지대(地代)’를 악용한다고 지적했다. 독립을 위해 반(反)프랑스 해방전쟁을 벌인 군부세력이 60년 넘게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토지를 밑천으로 세를 받아먹는 자산가에 비유한 것이다. 이 발언으로 최근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됐다.

 

멕시코는 지난달 27일 독립 200주년을 맞아 거대한 기념행사를 치렀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수세기 동안 원주민을 탄압하고 학살한 식민 과거에 대해 스페인과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바티칸이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2019년부터 주장해 왔다. 공교롭게도 스페인이 가톨릭교회의 이름으로 멕시코를 침공해 아스테카 왕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함락한 사건도 1521년으로 올해 500주년이다. 게다가 테노치티틀란이 건립된 것도 1325년으로 700주년에 얼핏 가까운 시기다. 이래저래 멕시코 역사의 기념 주기가 집중되는 202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정부는 “500년 전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 영토에 도착한 사건을 현대적 관점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면서 멕시코의 사과 요구를 거절했다. 반면 바티칸은 “교회가 복음화라는 목표에 공헌하지 못한 행동과 실수에 대해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원주민의 탄압과 학살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에둘러 간접적으로 사과한 모양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먼 과거의 역사 기억을 동원해 민족주의를 자극함으로써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60%가 넘는 지지율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3분의 2 정도의 멕시코 시민은 대통령이 식민 역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고 생각하며 스페인의 용서를 받는 일도 필요 없다고 여긴다. 실익이 없는 정치적 술수인 줄 알지만 그래도 지지한다는 감정적 반응이다. 심지어 실제 인구의 9%를 차지하는 원주민 대표세력은 정부에 과거가 아닌 현재의 원주민을 억압하는 정부 정책이나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데도 말이다.

 

이처럼 멕시코와 스페인, 알제리와 프랑스의 역사 기억을 둘러싼 논쟁에서 자산과 이자라는 비유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군부독재의 알제리나 민주체제 멕시코에서 모두 과거 식민시절의 호출은 정치적 이자를 선사한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극우세력도 여전히 제국주의가 야만의 세계에 문명을 전파했다며 표를 끌어모은다. 문제는 과거의 정치적 호출이 객관적 역사 연구나 미래의 국제 협력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우뚝 선다는 점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하되 미래지향적인 화합을 촉진하는 길은 없는가. 이것이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이겠으나 그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곤란하다. 역사 기억의 자산을 누가 동원해 어떤 이자를 거둬들이는지 엄밀하게 감시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는 영원한 집단적 대립과 증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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