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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카불 함락의 수수께끼

    • 등록일
      2021-08-30
    • 조회수
      276
탈레반 무혈입성에 전세계가 경악
‘다국적 국가’ 아프간 정부 민낯 드러나

지난 15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반군(叛軍)은 수도 카불에 진입하면서 전국을 장악하고 국가 권력을 차지했다. 세계를 경악하게 한 것은 미국조차 불가피하다고 여긴 탈레반의 승리가 아니라 반란 세력의 진군 속도다. 이처럼 빠른 아프가니스탄의 완벽한 접수를 탈레반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공식 정부가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진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미국과 나토(NATO)에 너무 의존한 정부군이 취약했다는 분석부터 파키스탄과 같은 이웃의 도움을 받는 탈레반 세력이 막강했다는 설명까지 다양한 분석이 들린다.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군인의 임금을 빼돌렸고 산악 국가라 정부군의 물자 보급이 어려웠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수수께끼는 여전히 남는다. 탈레반 세력이 전국 주요 도시를 차례로 차지하는 동안 대규모 전투를 벌일 만한 저항을 전혀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지방 도시에서 탈레반은 시장(市長)에게 돈을 주며 가족과 함께 도망가게 해 준다는 약속만으로 무혈입성했다. 또 다른 도시는 택시를 타고 온 탈레반 세 명이 뒤에 수백 명의 군대가 따라온다는 거짓말로 항복을 받아 냈다는 소식이다. 탈레반의 승리가 종국에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내전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종결된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도 모른다.

 

카불에 간판을 내건 아프가니스탄 공식 정부는 미국과 유럽이라는 외부 세력에 의존하는 인위적인 기구였던 셈이다.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자한 자금이 1조달러에 달한다. 다양한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이 나라에 유입된 자금도 만만치 않다. 해외 원조가 국민총생산의 42%, 정부 예산의 75%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프랑스의 도론소로 교수는 이를 지칭해 ‘다국적(transnational)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다국적기업처럼 이익으로 운영되는 조직 말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해외의 자금을 부패한 방식으로 나눠 먹는 ‘회사’였지 충성을 바칠 만한 조국의 조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부와 사회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고 외부의 대주주가 사라지자 임직원은 도망가고 회사는 문을 닫은 셈이다.

 

이번 탈레반의 승리가 명백하게 보여주는 현실은 외부에서 아무리 장기간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어 도움을 주어도 하나의 나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거나 기존의 사회와 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파슈툰의 종족 단결심으로 무장한 탈레반 앞에 정부군은 쉽게 총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해변에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듯 카불의 정부 조직은 텅 빈 건물만 남기고 오간 데 없다.

 

충격으로 다가오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지구촌에 대한 불안으로 연결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 많은 지역으로 수호하고 확산하는 것은 진정 불가능한 일인가. 카불의 함락에도 희망의 불씨를 버릴 수는 없다.

 

탈레반의 승리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탈레반조차도 20년 동안 다양성에 노출되고 다른 현실을 경험하면서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20년 동안 자유와 해방을 맛본 어린이들이 미래에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저항과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다만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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