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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시사매거진][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9)] 인위적 형태 사각형이 현대 건물 디자인 기본

    • 등록일
      2021-09-02
    • 조회수
      293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9)] 인위적 형태 사각형이 현대 건물 디자인 기본

 

네모 틀에 갇힌 생각, 집이 인간을 빚다

‘인류의 구렁’서 해방공간으로 바뀐 도시, 인구 감소 부작용도
‘아파트 공화국’ 사는 한국인의 삶 지배해 비슷한 성향 만들어


▎르코르뷔지에가 마르세유에 지은 ‘빛나는 도시’의 주거 단위. 한국 아파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집을 짓는 일은 인간이 문명의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에 몸을 맡겨 휴식을 취하던 인간에게 주택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집짓기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건축을 위한 다양한 계산, 노동 시간의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창조적인 작업이다. 인류 초기에 나타난 도구 사용과 종합적인 관리 능력이 집짓기에 총결됐다고 볼 수 있다.

 

집이란 인간의 사고가 건축 과정에 투영된 결과지만, 일단 완성된 뒤에는 주택이 우리를 지배한다. 일반적으로 집은 인간보다 훨씬 견고하고 세파에 잘 버틴다. 사람들은 몇 세대에 걸쳐 같은 집에 살기도 한다. 그릇의 모양에 따라 진흙이 굳듯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주택은 인간을 빚는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건축물들은 다양한 네모 모양을 활용했다. 특히 현대 건물에서 사각형은 모든 디자인의 기본이다. 건물의 외형은 물론 거의 모든 내부 공간도 사각형이다. 덧붙여 창도 문도 일률적으로 네모인 경우가 대다수다. 게다가 건물의 내부 공간에서 사용하는 책상이나 가구, 공책과 컴퓨터도 사각형 모양이다.

 

둥근 모양의 원은 인간이 자연의 태양이나 달을 보고 상상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네모는 자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인위적인 형태다. 자연에서 벗어난 문화적 사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사각형 모양의 공간과 사물로 가득찬 문명 안에서 생활하는 인류의 사고도 네모질 수밖에 없다. 신체를 아무리 분석해 봐도 사각형 모양은 찾기 어렵지만 인간의 두뇌와 사고는 주택과 물건을 통해 네모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빚어지는 셈이다.

 

시대 반영한 아기 돼지 삼형제 동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밀집된 런던의 주거 환경. / 사진:위키피디아

짚이나 나무로 손쉽게 지은 집은 늑대가 입김을 불어 날려버릴 수 있으나 벽돌로 탄탄하게 만든 아기 돼지의 집은 늑대의 위협에도 끄떡없다. 이야기는 얼핏 보편적 진리를 담은 것 같지만, 사실 문화적 배경을 음미해 봐야 한다. 아기 돼지 삼형제는 영국과 미국에서 19세기 말에 출판된 이야기로 1930년대 미국의 월트 디즈니사가 만화영화로 만들어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동화의 원형은 18세기 영국이라고 한다.

 

벽돌집이 견고함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영국의 18세기 건축 현황을 반영한다. 이 시기 서유럽에서는 목재가 고갈됨으로써 새로운 건축 자재가 필요했다. 영국은 열처리를 통해 단단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기 시작했고 벽돌집은 영국 제국주의와 함께 지구촌에 퍼져 나갔다. 아마 아기 돼지 삼형제의 프랑스 버전이 있었다면, 벽돌집보다 석회암이나 사암(砂巖)으로 만든 돌집이 등장했을 터다. 문제는 벽돌이나 석조 건물은 지진에 무척 취약하다는 점이다. 16~19세기에 유럽 세력은 세계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건축 양식을 다른 땅에 이식했으나 일부 지역에서 낭패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 태평양의 지진대에서 건물을 올릴 때 유럽인들은 1층만 벽돌을 사용하고 2층부터는 나무나 짚 등 식물성 자재를 동원하곤 했다. 문화와 자연조건의 복합적 퓨전이 이뤄진 셈이다.

 

같은 유럽이라도 나무가 많았던 지역은 19세기에도 여전히 목조 건물이 지배적이었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등 알프스산맥 지역의 산장인 샬레(Chalet)는 전형적인 나무 건물이고, 스칸디나비아도 목조 건물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는 성당과 같은 대형 건축물도 여전히 목재를 이용해 만들었다. 건축 자재에 대한 문화적 인식도 서구 문명이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서 영국 선교사들은 벽돌이나 석조를 사용한 교회와 주택을 지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돌이란 망자의 무덤에나 적합한 재료이며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장소에는 짚이나 나무 같은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21세기의 아기 돼지라면 어떤 자재를 사용할까. 벽돌이 아니라 철골에 시멘트를 쏟아부어 굳힌 집을 지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단한 알루미늄과 유리로 집을 지어놓고 아기 돼지가 집안에서 늑대를 보면서 부숴 보라고 놀리는 장면도 상상할 수 있다. 19세기 근대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벽돌은 오히려 낭만적 건축의 한 요소가 됐다. 지금은 현장에서 기술자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벽돌보다는 미리 공장에서 생산된 거대한 재료를 크레인을 사용해 조립하는 속도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주거 환경을 가장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요인을 꼽으라면 단연 도시화다. 농경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으나 도시만큼 빼곡한 인구 밀도를 자랑하지는 않았다. 유럽에서 발달한 서구 문명은 특히 도시라는 공간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동아시아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문명이라면, 유럽은 고대 그리스부터 이미 도시국가 폴리스(polis)의 문명으로 시작했다. 고대 로마도 도시를 기반으로 발달한 제국이었으며 중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또한 베네치아나 제노바, 피렌체 등 도시국가들의 경쟁 체제였다. 유럽은 21세기인 지금도 도시 간 평균 거리로 표현되는 영토의 도시 분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유럽의 도시화는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기 사이 폭발적으로 진행됐다. 1800년 유럽의 도시 인구는 2000만 명에 불과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는 무렵 3억4000만 명 수준으로 폭증했다. 농촌의 삶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도시 생활이 일반화되는 시기로 변한 셈이다. 유럽에서 시작한 도시화는 20세기 전 세계로 확산해 인류의 보편적 삶의 조건이 됐다. 도시 공간은 무엇보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의미했다. 특히 유럽에서 급격한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세기 당시 도시의 주택이란 외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몰려와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판잣집이 대부분이었다. 상·하수도가 없는 상황에서 콜레라나 흑사병, 장티푸스 등 각종 전염병은 도시의 특징이었고, 빈번한 화재는 재산과 인명을 앗아가는 주범이었다. 따라서 지속적인 이농 현상이 없다면 도시 인구는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럽서 촉발된 도시 문명


▎18세기 초 칠레의 산티아고 지도로 바둑판 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 사진:위키피디아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인간이란 동물 가운데 무리 지어 살기 가장 어려운 존재”라면서 “도시야말로 인류의 구렁”이라고 부정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9세기 도시화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럽 사회의 고민은 이렇듯 다양한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전염병이나 화재와 같은 직접적 위협은 물론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타락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셈이다. 농촌이 아니라 도시가 편리하고 위생적인 삶의 공간이라는 우리의 인식이야말로 혁명적인 가치 반전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그만큼 지난 200여 년 동안 도시의 변화와 발전이 획기적이었다는 뜻이다. 상·하수도의 설치는 도시를 외양상 청결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이었다. 주택에 수세식 화장실이 만들어지고 하수 시설이 완성되면서 도시의 특징이던 악취가 서서히 사라졌다. 1880년대 세균을 발견해 퇴치에 나선 파스퇴르 혁명은 전염병의 통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20세기 들어 도시의 주택마다 가스와 전기가 배급되면서 화재의 위험은 줄어들고 삶의 편리함은 배가됐다.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현대 건축 운동을 주도한 월터 그로피우스는 L자형 부엌을 고안하여 주부가 이동을 최소화하면서 요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여성을 가정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며 부엌과 식당, 거실을 하나로 통합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공산주의 혁명을 진행하는 소련에서는 심지어 여성 해방을 위해 주택에서 부엌을 제거하는 지경까지 도달했다! 이쯤 되면 도시는 인류의 구렁이 아니라 인간 해방의 공간으로 재구성된 셈이다. 유럽과 미국이 만들어 놓은 도시의 긍정적인 주거 환경은 전 세계에 선진성의 이미지로 포장돼 확산해 나갔다. 서구 중심 도시화가 이제 지구촌을 무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바둑판 배치는 현대 도시 특성


▎홍콩의 고밀도 아파트 단지. / 사진:위키피디아

유럽에서 근대 도시란 기존의 도시가 팽창한 결과다. 유럽의 대도시를 상징하는 파리나 런던은 이미 고대 로마 시대 루테시아(Lutetia)나 론도니엄(Londonium) 등으로 불리는 작은 도시였다. 많은 유럽 도시는 지리와 역사가 결합해 만드는 원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에 형성된 도심부터 중세에 만들어진 성벽, 그리고 근대에 넓혀진 주거 및 산업 공간에 이어 현대적 건물이 들어선 교외까지 역사 여행이 가능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럽이 도시 관광의 세계 중심지로 기능하는 중요한 이유다. 도심에서 멀찍이 떨어진 교외에 자리 잡은 공항에 내린 관광객은 버스나 기차로 도심에 접근하면서 현대부터 고대까지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도시는 역사 유적이 층층이 누적된 파노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도시의 형태 그 자체가 역사의 전개 과정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유럽 도시에 비한다면 뉴욕이나 서울의 강남은 전혀 다른 모양새다. 특히 도시의 지도를 놓고 살펴보면 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난다. 현대성을 담은 도시는 전형적으로 바둑판의 모양을 갖는다. 사방으로 뻗은 직선 도로가 도시를 가로지르며 균등한 사각형 블록을 만들어 내곤 한다. 계획에 의한 도시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면서부터다. 스페인 제국은 새로운 도시의 건설을 노골적 침략 수단으로 삼았다. 1580년 이미 230여 개에 달한 스페인의 식민도시는 중심 광장(Plaza mayor)과 거기서 출발하는 8개의 도로가 바둑판 공간 배치를 그려내는 형식이었다. 식민도시는 역사나 자연의 지형을 무시하고 인간의 의지를 환경에 찍어내는 근대성의 출발점이 됐다.

 

스페인 제국의 식민도시 모델은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영국 등 다른 제국에서도 재현됐고 독립을 쟁취한 미국도 결국에는 1785년에 바둑판 도시 모형을 기본으로 삼았다. 평지를 위해 고안된 바둑판 도시 모델은 심지어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언덕이 많은 지역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이와 같은 도시 계획은 간단하고 간편했으며 개척자들 사이에 평등한 토지 분배를 가능하게 했다. 삶의 환경을 바둑판처럼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놓으면 사회적, 윤리적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게다가 도시의 향후 발전 방향을 미리 정하지 않아도 되는 유연성을 갖고 있었다. 사각형 블록 안에 어떤 기능이 들어가도 별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바둑판 도시는 20세기 들어 대형 아파트라는 주택의 보편적인 형태로 반영되는 듯하다. 르코르뷔지에를 중심으로 발전한 근대 건축은 최대 다수의 시민을 편리함을 갖춘 기능적 건물에 살도록 계획했다. 프랑스 남부 도시 마르세유에 지어진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La cité radieuse)라는 이름의 주거 단위는 필로티(piloti, 기둥만으로 건물을 지상에서 분리해 떠받치는 건축 공법)나 옥상, 리본처럼 건물을 두르는 대형 창 등 그가 정의한 근대 건축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 바둑판 모형이 도시의 수평적 구조를 결정한다면 주거 단위(Unité d’habitation)라 불리는 고밀도의 대형 아파트는 도시의 수직적 모양을 그려내는 형국이다.

 

독일 격언에 “도시의 공기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어느 정도 재산과 소득이 보장되는 부르주아에게만 해당하는 일일 수 있다.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한 근대 도시만큼 빈부의 격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자신이 사는 동네를 나타내는 주소가 도시민의 중요한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겠는가.

 

마르크스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5년 [영국의 노동계급 상황]이라는 저서를 통해 산업혁명의 영국이 안고 있는 도시 빈민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했다. 도시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불안 요소로 존재했다. 20세기 전반기 주택 문제는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유럽에서 사회 운동의 불씨였다. 주택의 각종 근대적 설비가 발전한다는 것은 같은 도시 안에서 주거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계급이나 빈민층은 집세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항하는 사회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예를 들어 바르샤바(1905년), 나폴리(1911년), 글래스고(1915년), 빈(1921년) 등지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이 집결하여 집세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격렬하게 벌였다. 부다페스트에서는 1912년 5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주거비의 인상에 반대했다. 이 운동은 남성이 주도했던 기존의 노동운동과 달리 여성이 대거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주요 도시마다 저렴한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이 확산하는 배경이다.

 

 

주택에 새겨진 사회 질서


▎영국 런던 인근의 전원도시 웰인(Welwyn)은 1920년 세워졌다. / 사진:위키피디아

도시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또 다른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비좁은 주택에서 거주해야 하는 도시 빈민들이 적극적으로 산아 제한에 나섬으로써 인구가 감소하는 경향은 강해졌다. 특히 아동 노동이 점차 금지되면서 자녀들이 가져오던 소득은 사라지고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무겁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왔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에 나섰던 소련 또한 도시민의 주거 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소련에서도 빈곤한 주거 환경 때문에 도시 인구의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도시의 부자들은 빈민이 밀집된 지역을 피해 자신들만의 주거 지역을 형성하면서 부촌을 만들곤 했다. 유럽의 대부분 도시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서부는 부촌, 동부는 빈촌’이라는 등식이 어느 정도 확인된다. 영국 런던의 이스트/웨스트 엔드가 그렇고, 파리 서부의 16구와 동부의 20구가 대조를 이룬다. 미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부자들이 도심을 떠나 교외에 자신들만의 공간을 형성하는 패턴이 지배적이었다. 일부 부유층은 아예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라는 폐쇄지역을 형성해 중세의 철옹성을 연상케 한다. 도심의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아파트를 선호하는 유럽 부자와 전원생활을 만끽하려는 미국 부자의 문화적 차이인 셈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아파트는 양적으로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주거 양식으로 등장했으며 질적으로도 한국인 대부분이 지향하는 이상적 공간이 됐다. 한국의 경제 성장을 압축 발전이라고 표현하듯 한국인의 주택도 서구의 경험을 축약해 놓은 모양이다. 서울이 아파트 공화국의 수도가 될 수 있었던 출발점은 강남이라고 하는 새로운 도시 공간이다. 16세기 유럽 세력이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바둑판 계획도시를 세웠듯 한국은 한강 건너 넓은 평지에 근대 도시와 그에 적합한 서구적 주거 양식을 건설했다. 그리고 강남의 인기를 바탕으로 신도시에 같은 패턴의 도시 공간을 확산했다.

 

줄레조는 한국의 아파트는 어쩌면 르코르뷔지에의 꿈을 실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평가한다.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저렴한 주거 양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압축 성장을 하는 동안 도시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위생적’으로 수용하는데 아파트만 한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아파트란 유럽 도시에서 볼 수 있는 6~7층 규모의 인간 및 환경친화적 ‘나 홀로 아파트’가 아니다. 처음에는 저층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높이와 규모가 불어나고 똑같은 아파트 건물이 반복적으로 빼곡하게 들어선 대단지가 한국 아파트의 특징이다. 동·호수를 가리면 수천 채의 똑같은 집으로 구성된 아파트야말로 한국인의 삶과 정신을 지배하면서 획일적 성향을 빚어내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 ‘빛나는 도시’와 닮은 한국 아파트

 

아파트가 한국에서 거둔 인기는 서구적이고 선진적인 주거양식이라는 인식 덕분이다. 하지만 서구에서 한국과 같은 아파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물론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는 한국 아파트와 닮은꼴이다. 그러나 같은 건물을 수십 동 만들어 대단지를 구성하지는 않았다. 서구 아파트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현관도 없고 온돌식으로 바닥난방을 하는 경우도 무척 드물다. 집집마다 스피커를 달아 컴퓨터 목소리로 온갖 공지사항을 각 가정의 침실까지 전달하는 소통 양식이나 엘리베이터와 복도의 감시 카메라도 매우 한국적인 특징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아파트는 명백하게 국산이며 근대 한국 문화를 반영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다.

 

아파트가 한국 현대 주택의 상징이 되었다면 교외의 개인주택은 미국식 자본주의와 생활패턴을 대변한다. 1947년 미국 뉴욕주에 건설한 레빗타운(Levittown)은 한국의 아파트처럼 특정한 모델의 주택을 대량 생산해 임대하거나 분양한 사례다. 레빗트(Levitt & Sons)라는 건설사는 1930년대 이미 중상층을 위한 고급주택을 1000채 이상씩 집중적으로 지어 판 경험이 있었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주택 수요가 증가하자 이번에는 롱아일랜드에 감자밭을 사서 저렴한 주택 공급에 나섰다. 1만7000채의 개인 주택을 만들어 공급함으로써 도시 하나를 분양하는 셈이었다. 주택 대량 생산의 한국적 버전인 대단지 아파트가 미국의 레빗타운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전 세계가 흠모하는 아메리칸 라이프스타일에서 교외의 개인 주택은 핵심 요소다. 이 모델은 레빗타운으로부터 다른 대도시 교외로 퍼져나갔고 21세기 미국의 부동산 붐에 이르기까지 계속 동력을 유지했다. 한국인이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파트에 올라가 최신형 TV를 즐길 때 미국인은 차고에 트럭을 주차하고 잔디를 깎는 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택 부문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은 통합과 다양성의 양면을 모두 드러낸다. 한국의 아파트와 미국 교외의 개인 주택은 집단성과 개별성의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거실, 부엌, 식당을 합쳐 하나의 큰 공간 속에 배치한 것은 두 모델의 공통점이다. 게다가 집안에는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와 같은 비슷한 가전제품과 침대, 소파, 식탁, 의자, 책상 등의 비슷한 가구가 사용되고 있다. 한국인은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고 미국인은 잠잘 때나 벗지만 둘 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을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자본주의 경쟁 강해지면서 글로벌 시티 양성 추세

 

그렇다면 21세기 미래의 주거 문화와 주택은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인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주거 환경은 도시의 규모나 공간의 배분과 결부돼 있다. 지구촌에는 이제 인구 1000만 명 전후의 초대형 도시들이 곳곳에 들어섰고, 동시에 수만 명 정도 작은 규모의 전원도시도 환경주의의 유행을 타고 발전하는 추세다. 21세기 주택문화를 잡아당기는 두 개의 경향인 셈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화를 주도한 것은 유럽이었지만, 20세기 들어 탄생한 초대형 도시는 비유럽 지역의 특징이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서울을 비롯해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인도의 델리나 뭄바이가 급부상했고, 아메리카는 브라질의 상파울루나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이집트의 카이로나 나이지리아의 라고스가 초대형 도시로 발전했다. 도시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여전히 주거 환경의 차별을 낳고 있는 현실이다. 부가 흘러넘치는 지역과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빈민가가 공존하는 대도시는 늘어나고 있다.

 

21세기 세계 자본주의 경쟁이 강해지면서 상황은 글로벌 시티를 키워야 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하면서 국가 경제가 득을 누릴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자본과 역량을 한 곳으로 몰아야 하는 집중의 원칙이 강조되는 흐름이다. 도시의 규모와는 별개로 다양한 인프라와 사회문화적 기초를 갖춘 곳들이 주목을 받게 됐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두바이, 토론토, 시드니 등이 대표적이다. 선진국의 경우 환경친화적인 도시의 삶을 추구하는 운동은 20세기 초부터 계속됐다. 영국과 미국은 특히 생활공간을 자연에 가까이 두면서 즐기려는 경향이 강했고, 실제 정원 도시(Garden City) 운동으로 발전했다. 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와 주거 공간에 녹색 지대를 첨부하려는 노력은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원의 개발이나 그린벨트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대형 도시가 집중의 원칙을 반영한다면, 전원도시는 분산의 미학을 상징한다. 2020년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 위기는 인류의 주거 환경을 집중보다는 분산 쪽으로 저울추를 기울게 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기후 변화와 같은 의제는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역시 분산의 지혜를 요구하는 방향이었다.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진 피라미드 체계보다는 중소 도시의 균등한 지역 체계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에 더 적절하다는 시각이다. 도르트문트, 에센, 뒤스부르크, 보훔, 뒤셀도르프, 부퍼탈 등이 형성한 독일의 루르(Ruhr) 지역이나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위트레흐트 등이 구성하는 네덜란드의 란드슈타트(Randstad) 지역이 이런 모델에 가깝다. 물론 이처럼 도시를 둘러싼 집중과 분산의 줄다리기에서 어떤 변화가 21세기 미래를 이끌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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