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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 시대공감·쿠바 싱거운 화해의 속살

 

중앙SUNDAY | 2015-01-04

 

지난해 1217일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 발표는 단연코 2014년 말을 장식하는 중요한 역사적 변화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쿠바는 불과 100남짓한 거리지만 두 나라는 반세기 넘게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다. 이제 이를 청산하고 서로를 다시 정상적인 이웃나라로 받아들이겠다고 합의했다.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이를 라틴 아메리카의 베를린 장벽 붕괴라며 냉전적 관계의 종말을 환영했다. 북한을 염두에 둔 한국에서는 주로 미국 측의 정책 변화에 주목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수십 년간의 봉쇄정책 실패를 인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사건의 표면일 뿐이다.

  

오바마의 긴 연설은 미국 국내 여론의 설득이 주요 목표였다. 미국이 외교정책에서 내 탓이오를 고백했다고 해석하면 착각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또한 쿠바의 체면을 살려주는 외교적 수사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라는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무릎을 꿇은 쪽은 미국보다는 쿠바다. 혁명의 깃발을 휘날리며 아프리카에 군대를 파견하던 쿠바는 이제 사라졌다.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내세우며 양키의 자본을 거부하던 쿠바도 옛이야기다. 쿠바의 변화는 먹고살기 위해 혁명도 민족도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오바마의 연설은 고개 숙인 적장(敵將)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승자의 관대함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개혁·개방으로 나오는 적국을 거절해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에서 강렬하게 싸웠던 중국과는 1979년 국교 정상화를 실현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원년이다.

  

오랜 전쟁에서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던 베트남과도 95년에 관계를 회복했다. 86년 베트남식 개혁·개방인 도이머이가 시작하고 10년 만이다. 전쟁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적대시하던 리비아(2006)나 미얀마(2012정상화의 정치에서 변수는 오히려 쿠바다. 90년 소련의 붕괴는 쿠바에 치명적이었다. 쿠바 경제를 지탱해 주던 소련의 지원이 종결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실험 역시 위기에 빠졌던 것이다. 이를 구해준 것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다. 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차베스는 쿠바와 혁명의 형제국가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석유를 제공함으로써 쿠바 경제에 도움을 줬다. 매년 베네수엘라에서 쿠바로 가는 지원금이 40~50억 달러 정도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베네수엘라 자체가 위기에 빠졌다.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국가 기구에는 쿠바인들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정부 부처를 비롯해 공기업, 군과 경찰에 수천 명에 달하는 협력 요원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가 얼마나 심각한 경기 침체와 부패, 급격한 인플레와 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지 잘 안다.

  

최근의 유가 하락이 베네수엘라에 치명타로 작동하자 쿠바는 동지를 저버리고 자신만이라도 살길을 찾은 모양새다.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아메리카 냉전의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표면상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싱거운 화해로 끝나버렸다. 골리앗은 다윗이 없어도 거뜬하다. 그러나 골리앗이 사라진 이상 다윗은 존재 이유가 희미해져 버린다. 적이 사라진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이 떠안은 존재론적 고민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관계 정상화가 이미 진전된 양국 관 style=”background: #ffffff; mso-fareast-font-family: 맑은 고딕”>을 종결할 절호의 기회였다는 뜻이다.

  

2015년에는 세계에 이런 화해가 가득하길 바란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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