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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터키와 프랑스의 역사전쟁

 

경향신문 2011-12-25

 

프랑스와 터키 간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문제는 지난 22일 프랑스 하원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터키 제국에서 행해진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종족학살(Genocide)을 부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시작됐다. 터키는 곧바로 다음날, 프랑스 주재 자국 대사를 송환함과 동시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까지 나서서 프랑스는 식민 통치 시절 알제리에서 자행한 종족학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현 사태를 파악하려면 역사적 사실부터 살펴봐야 한다. 오스만 터키 제국은 1915년부터 1918년까지 150여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집단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대전 패배로 인해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이후, 터키는 자국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이 집단 학살 사실을 부정·은폐하고 그 의미를 축소하려 애써왔다. 이에 대해 유럽은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터키의 노력은 민주화가 덜 된 정치문화 탓이라고 비난해 왔다.

 

프랑스 역시 1960년대 탈식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거대한 제국을 운영했다. 특히 알제리에서는 1945년부터 독립하는 1962년까지 장기적인 독립전쟁이 진행됐고, 프랑스 식민당국은 민간인 고문과 학살을 서슴지 않는 악랄한 정책을 폈다.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알제리 인구의 15%가 희생당한 독립전쟁에서 프랑스는 종족학살을 자행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남의 역사를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반성하라는 반박이다.

 

<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은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역사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웰이 갈파한 또 다른 진실은 언어와 개념이 매우 핵심적인 지배 수단이라는 점이다. 지노사이드(Genocide)는 종족 또는 집단 학살로 번역되는데 원래 멸족을 목표로 하는 학살 행위를 지칭한다. 나치 독일의 유대민족 학살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오스만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민족을 전멸시키려는 계산되고 의도된 정책이었지만, 알제리에서의 민중 학살은 전통적인 식민 전쟁의 일환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혹은 아르메니아는 고대부족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가운데 하나지만,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됨으로서 집단 정체성을 갖게 된 영토라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가 즐겨 내세우는 보편적 인권의 입장에서 본다면 멸족의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민간인의 집단 학살은 지탄받아야 마땅하고, 기억되는 것이 당연하며, 반성과 사과의 대상이어야 한다. 에르도안 총리의 접근법도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집단 학살이 터키가 자행한 집단 학살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류에서 유일하게 원폭의 대상이 되었던 일본은 ‘우리도 피해자’라는 논리로 군국주의 시절 자행한 집단 학살과 범죄를 망각하려고 노력한다. 중국은 일본제국주의의 난징 대학살 기억을 집요하게 되살리려 하면서도 위구르와 티베트 민족의 탄압에는 거침없이 앞장선다. 국가나 민족과 같은 집단적 권리의 논리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보편적 인류애가 우선적 가치로 존중되지 않는 한 대량 폭력과 살인의 고리를 끊기는 힘든 이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터키와 프랑스 간 역사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민족주의적 감정을 동원하고 있는 두 나라 정치세력이나 두 제국의 범죄적 학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아르메니아와 알제리 민족은 아니다. 이들은 역사적 집단으로서 강한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현 사태의 진정한 피해자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위해 터키·프랑스·아르메니아·알제리 등 각각의 사회에서 인권을 위해 노력해 왔던 인본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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