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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없는 애국심’ 길을 열다

  

경향신문 2012-08-21

  

ㆍ젊은 연구자 9명 ‘아직도 민족주의인가’서 방법론 모색

  

‘애국가’를 불러야만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이 불거지면서 애국가 제창 여부를 놓고 논쟁이 일었다. 시민적 삶과 유리된 ‘민족주의’를 내세운 이들과 과도한 국가에의 충성을 강요하는 이들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민족주의 혹은 애국심에 대해 갖게 되는 감정은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론 다양성이 거부되는 한국사회의 특징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통해 배양됐다는 의구심이 있다. 그러나 근현대사에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불러일으킨 민족주의의 역할을 부정하기도 힘들다. 과연 민족주의 혹은 애국심이 올바르게 기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숭실대 곽준혁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과 조홍식 교수가 함께 엮은 <아직도 민족주의인가>(한길사)는 9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이라는 주제로 내놓은 그에 대한 성찰이다.

  

그중에서도 홍승헌 박사가 고찰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헌정적 애국심’이라는 개념은 음미해 볼만 하다. 애국심의 근거를 문화적 공통유산에의 맹목적 애착에서 찾기보다, 국가의 정치체제를 규정하는 헌법의 기본이념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충성에서 찾는 개념이다. 여기서 헌법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법적 원칙이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가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치 원칙에 따라 합의한 결과다. 이렇게 도출된 헌법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는 공통의 정체성, 즉 ‘헌정적 애국심’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런 하버마스의 사상은 유럽연합과 같은 다양한 ‘민족국가들의 국가’가 가능하다는 논리에 이르게 된다. 또한 다문화사회에서 이민자들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특수한 문화적 배경과 삶을 포기하지 않고도 정착지의 정치문화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경제위기 국면에서 증폭되고 있는 유럽연합 내 구성원들의 민족주의를 볼 때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

  

‘세계시민주의와 애국심이 양립 가능한가’라는 문제의식으로 논의를 전개한 조계원 박사는 ‘비지배자유’라는 개념을 살펴본다. 이는 오직 간섭만이 자유를 앗아가고, 간섭이 항상 자유를 박탈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 간섭이 없더라도 권력관계에 따른 감독이나 위협을 통해 얼마든지 제한된 선택을 할 수 있다. 만약 간섭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 자유는 축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의를 위해 정치·사회적으로 최소화돼야 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지배”라는 생각에서 ‘비지배자유’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동료시민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자신의 자유도 언제든 훼손될 수 있다. 이는 곧 지배를 막기 위한 공통의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용어가 다를 뿐, 이는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투쟁 등으로 나타난 적이 있다. 이러한 ‘비지배자유’에 기초한 애국심은 특정한 정치공동체와 구성원에 대한 애착이지만,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도 ‘지배’라는 해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는 점에서 세계시민주의로도 발전할 수 있다.

  

엮은이들은 서문에서 “민족주의를 날조된 정치적 선전으로 치부하거나,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특수한 조건 속의 삶의 내용에 무관심한 것은 역사의식과 정치적 사려가 결여된 처사”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세계와 민족주의 또는 애국주의를 조화시킬 수 있는 일관된 인식론적·철학적·정치적 판단 기준”이라고 밝혔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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