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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아름다운 나라, 정치가 만든다

  

 경향신문 2012-08-12

  

지구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말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파리를 지목한다. 실로 파리는 현기증을 유발하는 마천루가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는 뉴욕의 맨해튼이나 상하이의 푸둥과 달리, 인간적 규모의 건축물들이 서로 미적 조화를 이루면서 도시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가 세계 최대 관광대국이고 파리가 세계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도시라는 사실은 나의 선택과 찬사를 공유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증명한다.

  

프랑스와 파리는 어떻게 지금의 위상을 얻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아름다운 나라, 멋진 도시를 만드는 것은 정치다. 파리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기념물은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12세기에 착공돼 약 300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성당은 종교적 열정의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 왕실의 정치적·재정적 지원 없이는 건립 자체가 불가능했다.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프랑스 건축공학의 진수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자유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미국과의 우호 증진을 위해 프랑스가 선물로 준 작품이다.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은 모두 민주주의와 산업사회를 기념하는 정치적 의지를 반영하는 결과물이다. 파리의 개선문도 나폴레옹이 승승장구 유럽에서 거둔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국가의 개입 없이 시장의 원칙에 맡겨놓았더라면 노트르담도 에펠탑도, 그리고 개선문도 없었을 것이며 파리는 그저 평범한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상징적 기념물뿐 아니라 도로와 건물도 19세기 오스만 시장이 계획한 결과물이다. 당시 대통령 당선 뒤 황제로 등극한 루이 나폴레옹은 오스만 남작에게 영국 런던처럼 파리도 커다란 공원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로 가꾸라는 재개발을 지시했다. 이런 본격적인 계획에 따라 1850년대에 만들어진 도시가 지금의 파리다.

  

프랑스와 파리를 문화와 예술의 중심으로 만든 것도 정치다. 루브르 박물관의 시작은 왕실에서 예술품을 소장하던 전통에서 출발했다. 베르사유에 호화로운 궁전을 지은 루이 14세는 연극과 음악회를 귀족을 통제하는 궁정정치의 수단으로 삼았고 예술 보호자를 자처했다. 혁명과 민주화 이후에는 국가가 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자로 등장해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에 전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드골 대통령은 문화부를 창설, 말로에게 10여년간 문화정책의 근간을 세우도록 했다. 퐁피두 대통령은 현대 예술의 중요성을 감안해 퐁피두 센터를 건립하게 했고,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은 오르세 박물관의 설립을 추진했다. 문화 대통령을 자임한 미테랑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라데팡스의 신개선문이나 센 강변의 거대한 국립도서관 등의 건설을 구상했다. 유로 위기로 많은 유럽 나라들이 재정긴축에 돌입했지만 올랑드 신임 프랑스 대통령은 문화예산만큼은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은 정치적 의지는커녕 문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싸고’ 맛있는 수입 고기를 먹으라고 권장하는 물질주의적 사고를 가진 대통령, 정치 논리로 인사권을 휘두르는 폭력적 장관에게 문화예술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요즘 대한민국은 예술 분야에서도 화폐적 가치를 창출하라는 천박한 사고가 일반화되면서 문화가 탄압을 당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산업이나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는 근시안적이다. 세계 최대의 명품 기업인 LVMH와 화장품 회사 로레알이 경제 강대국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것은 1000년이 넘게 순수하게 미를 예찬하고 가꾸는 문화예술의 전통이 일상화된 사회 환경 덕분이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꿨던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은 21세기 한국이 나아가야 할 시급한 방향을 제시한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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