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백범 선생은 출간사에서, 이 책을 발행하는 것은 스스로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못난 사람이기 때문이며, 만일 자신이 민족독립에 공헌한 것이 있다면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되는데, 상권은 어린 두 아들에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알리기 위하여, 하권은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자신의 경륜과 소감을 후배에 전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백범일지를 관통하는 핵심 주장을 꼽자면 민족과 독립, 그리고 애국이다. 선생 스스로 ‘범인의 자서전’이라고 부른 이 책을 오늘 우리의 눈으로 읽어보려 한다.
신분으로나 경제적으로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렵게 공부하여 과거에도 응시하지만 실패하고, 동학과 의병에도 잠시 투신하나 큰 성과를 얻지 못하는 등 그리 평탄하지 못한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임시정부의 지도자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극적이다. 격동의 시대와 거대한 불합리야말로 그 가난한 소년을 민족의 위인으로 변모시킨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암울한 시대 상황을 뚫고 민족 지도자로 거듭나는 백범의 생애와, 격변기 한반도의 사회상과 국제정세를 동시에 전해준다. 선생의 신념과 가치관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모든 세대는 자신들이 처한 혼란과 어려움을 말한다. 그러나 선생이 그려온 삶의 궤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암울하고 혼란스럽던 시대를 말없이 헤치며 걸어온 선생의 그러한 모습이 본문에서 많이 엿보인다.
선생이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청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동의 바탕이 되는 생각이자, 그가 늘 강조했던 것이 바로 ‘쟁족(爭足)’ 정신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머리’가 되겠다고 다투기 쉽다. 그러나 그는 머리가 아닌 발을 두고 서로 다툴 것을 당부하였다. 그의 이 가르침이 오늘날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른바 무한경쟁의 논리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겠다. 백정과 범부를 자처한 선생의 쟁족 정신은 ‘머리’가 되려는 자라면 마땅히 고민해보아야 할 덕목이 아닐까.
1948년, 선생이 73세가 되던 해, 그의 앞에는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현실적이고도 쉬운 길과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험난한 길이 놓여있었다. 선생은 반민족 세력의 반대와 모략에도 불구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북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생은 책 뒤에 붙인 「나의 소원」에서,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필연적으로 위아래가 생기기 마련이므로 이민족 국가로의 편입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분단 이래로 반세기가 흐른 오늘날, 남북의 이질성은 엄청나게 커져버린 상황이다. 사실상 다른 민족이 되어버린 오늘날 한반도의 상황에서 선생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 자서전이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선 놀랍게만 느껴지는 완벽한 자기희생 때문이 아닐까. 나와 내 가족을 넘어 더 큰 가치에 자신을 아낌없이 던지는 그 희생 말이다. 백범이 자신의 삶 전부를 통해 세상에 구현하려 했던 그 자유를 우리는 얼마나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선생을 전력으로 응원했으나 평생 가슴 졸여야 했을 가족들의 희생 또한 얼마나 큰 것이었을 지도 생각해 볼 점이다.
THE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