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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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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John Stuart Mill 「자유론」

-100년 전 과거에 살던 밀이 우리 시대에 남겨준, 자유에 대한 메시지-

   

1859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을 세상에 소개하며 한 차원 높은 토론의 장을 열어주었다. 자유란 단어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그에 대한 정의를 내라고한다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늘 강조하지만 정작 잘 알지는 못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나 철학은 미숙한 게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전에 밀은 이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하였다.

  

자유란 무엇인가.

  

‘본인은 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재확인 시켜주고자 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안겨준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밀은 정신적 기반이자 철학적 동반자였던 아내에게 바치는 말로 책을 시작하면서, 1장 서론에서는 권력자의 힘에 한계를 두는 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밀은 자기 나라를 온전히 지탱하기 위해, 최고 권력자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의 한계를 규정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권력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을 바로 자유라고 불렀다.

법이나 관습은 권력의 지배를 받는 인민에게 어떠한 제약을 가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민은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며 밀은 권력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권력이 인민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더욱이 사람들은 때로 관습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결정되는 상황이 억압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관습을 마치 자연과 같이 생각하는데 밀은 관습은 자연을 지속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관습은 사람들이 만들고 지켜온 행동 규칙의 타당성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관습은 이성적인 토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일반적인 의식 때문에 이런 속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관습으로 개인의 자유가 제약되는 것을 그는 옳지 못하다고 하여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상황은 오로지 그가 타인에게 해를 끼칠 때 뿐 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그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의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이 외에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이 당연히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개개인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다.

  

밀은 효용이 도덕을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효용은 보통의 정의로 보기보다는 진보하는 존재인 인간의 항구적인 이익에 기반을 둔, 가장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효용을 쉽게 말하면 쓸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밀이 단순하게 쓸모 있는 것을 중요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인간은 주제척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그는 효용을 언급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므로 자신이 스스로 택한 길을 갈 때 가장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하는 것이다.

  

큰 의미를 담은,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마치고 2장에서는 출판의 자유에 대해 역설한다. 밀이 살던 시대는 의회에서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시행하고 있던 때였다. 이에 대한 글은 밀의 자유론과 함께 현대 언론의 고전적 자유주의의 경전으로 간주되고 있는 밀턴의『아레오파지타카』가 있다. 두 글은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언론자유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전개하였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밀은 자유로운 출판을 막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비난한다.

  

‘그들이 특정 의견이 잘못되었다는 확신 아래 다른 사람들이 들어볼 기회조차 봉쇄해버린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완전하다고 전제하지 않는 한 일체의 토론을 차단해버릴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표현을 막는 것은 자신의 기준을 절대적인 위치에 놓는 자만적인 행동이다.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완전한 기준점이 될 수는 없고 따라서 다른 이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 혹여 자유로운 표현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이가 있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존 밀턴의 주장이 좋은 반박이 될 것이다. 존 밀턴은 진리는 거짓과 싸울 때에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고 말하였다. 진리가 거짓에 질 수는 없으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성의 존재를 신뢰하면 인간이 충분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사상의 자유를 막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논의는 큰 함의를 갖고 있다. 우리는 분명 밀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고 여성의 참정권은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답은 다양할 것이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권력에 의한 감시가 더욱 강해졌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특히나 언론에 대한 탄압은 과거로의 회귀라고 할 만큼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밀의 자유에 대한 옹호는 현 상황에 대해 통찰력을 더해주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주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지금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후에 언제든지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개별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였다. 개인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몰아갔다. 과거부터 같아지려고 하면서 혹시라도 다르게 보일까 겁에 질려왔던 시대였다. 이제 우린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시대다. 따라서 자유는 어떠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논쟁일지라도 결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자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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