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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獨 정치가 위기에 대처하는 법

    • 등록일
      2025-03-18
    • 조회수
      29

[조홍식의세계속으로] 獨 정치가 위기에 대처하는 법

 

 

 

좌우 대립 넘어 협치, 잘못된 건 전략수정

증오의 노래만 읊어대는 한국 반성 필요

 

 

 

혼란스러운 세계의 위기 속에서 유럽의 중심국가 독일이 어디로 향할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독일은 ‘유럽의 환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경제는 후퇴하고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더해 최근에는 전통 우방 미국마저 유럽을 적대시하는 난국이다. 그래도 독일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주요 정치 세력이 신속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덕분이다.

 

우선 정략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정운영을 위해 협력하는 태도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중도우파 기독교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유력한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극우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는 연정을 꾸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우파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단 세력과의 연대를 단호하게 거부한 셈이다.

 

그리고 오히려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과 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좌우의 이념적 대립을 넘어 국정을 위한 협력을 택했다. 물론 이런 선택은 정치 상황의 마비를 막기 위해 사민당이 연정 제안에 긍정적으로 응했기에 가능했다. 지난 8일 기민당과 사민당은 연정의 원칙에 합의했다. 사민당은 강경한 난민 정책을 받아들여 양보하는 대신 기민당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한발 물러선 덕분이다. 독일은 과거에도 1960년대 그리고 21세기 들어 두 차례 좌우 대연정이 수립된 경험이 있다.

 

다음은 위기가 닥치면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곧바로 수정하는 뛰어난 능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보 분야에서 대서양주의에서 유럽주의로의 전환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동맹을 최우선시하는 대서양주의의 대표주자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2기에서 확인되는 미국의 불확실성을 보고 이제는 유럽의 방위 ‘독립’을 언급하며 프랑스, 영국, 폴란드와 긴밀한 군사협력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나 재정 분야에서도 독일은 유럽에서 ‘짠돌이’ 국가로 유명했으나 이제는 ‘베짱이’가 되었다. 국가 부채 규모를 제한했던 헌법의 빗장도 풀고 유럽 차원의 재정 긴축 조항도 다시 조정하겠다고 나섰다. 유럽의 독자적 방위능력을 키우려면 그만큼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망가진 경제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도 인프라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수십년 건전 재정을 외치던 독일의 급격한 변화에 유럽 주변국들은 요즘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라고 있다. ‘기적’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말이다.

 

우파 기민당만 이렇게 신속하게 적응하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좌파 사민당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맞아 처음 ‘시대전환’(Zeitenwende)을 외치면서 수십년 지속했던 동방정책(Ostpolitik)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러시아와 협력하면 러시아가 변할 것이라는 계산이 완전한 오판이었음을 인정하고 사민당은 국가전략의 변화를 직접 추동했다. 러시아의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확실하게 절단해내고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어느 정당이나 자신이 장기간 주장해 왔던 전략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독일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 실제 기민당과 사민당의 득표율은 바닥을 향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신속하게 전략을 수정하고 협치의 길로 들어서는 선택은 정당의 이익보다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더욱 중시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고 위기가 닥쳐도 같은 증오의 노래만 읊어대는 한국에서 보니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협치를 택한 독일의 지혜롭고 책임감 있는 중도세력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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