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바로가기

정치외교학과

메뉴

정외뉴스

제목 - 설명
  •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영국·이탈리아 여성총리에 대한 기대와 우려

    • 등록일
      2022-10-17
    • 조회수
      43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영국·이탈리아 여성총리에 대한 기대와 우려

2022년 가을 유럽 정치판에 여풍이 거세다. 21세기 들어 유럽의 중심국가 독일을 장기간(2005~2021년) 책임졌던 앙겔라 메르켈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데 영국과 이탈리아에 동시에 여성 리더가 들어섰다. 영국에서는 리즈 트러스가 9월 5일 보수당 당원 투표에서 승리하면서 총리로 취임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조르자 멜로니가 9월 25일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번 달 말 수상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유럽의 동서를 연결하는 남성 축을 형성한다면 영국의 트러스와 이탈리아의 멜로니는 이제 유럽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여성 굴대를 세우는 셈이다.

 

좌파 가정 출신의 우파 여성 총리

 

최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4대 주요 국가의 리더십은 아주 젊어졌다. 마크롱 트러스 멜로니는 모두 지금 정치에 입문해도 늦지 않은 40대다. 독일의 60대 올라프 숄츠 총리와 대비된다. 물론 독일도 녹색당 출신 외무장관 아날레나 베르보크는 1980년생으로 젊음과 여성의 기운을 함께 불어넣고 있다.

 

혜성처럼 떠오른 영국의 트러스와 이탈리아의 멜로니는 40대 여성이라는 특징 말고도 많이 닮았다. 둘 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멜로니는 남성 중심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예정이다. 멜로니가 2012년 창당한 정치 세력 이름은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이며 극우 보수주의를 대표한다. 그런데 ‘형제들’을 이끄는 사람은 ‘누님’이다.

 

멜로니의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26%의 득표율로 함께 선거연합을 형성한 ‘리가'(Liga, 9%)와 ‘이탈리아의 힘'(Forza Italia, 8%)을 멀리 따돌렸다. 리가를 대표하는 불같은 성격의 마테오 살비니 ‘오빠’나 한때 이탈리아 우파에 힘을 불어넣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삼촌’은 이제 주인공 멜로니를 지지하며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조연들이다.

 

영국 트러스의 부상은 조금 더 친숙하다. 이미 마가렛 대처와 테리사 메이라는 여성 총리를 경험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트러스는 또 총선을 통해 선출된 지도자가 아니라 지난 7월 퇴출당한 보리스 존슨 총리를 대신하기 위해 보수당 당원이 뽑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래도 역사는 트러스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영국을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마지막으로 임명한 총리이기에. 96세의 여왕은 마치 새로운 총리를 임명하고 숨을 거두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듯 9월 6일 트러스를 만난 뒤 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리즈는 엘리자베스의 별칭이다.

 

멜로니와 트러스는 둘 다 중산층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조숙한 아이들이었다. 멜로니가 정치에 뛰어든 나이는 15세다. 공산당 지지자인 회계사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스페인으로 떠난 것이 멜로니가 11세 때다. 멜로니가 공산당 정반대의 극우 정당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을 선택하면서 가족이나 종교와 같은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우연은 아닐 듯하다.

 

이후 멜로니의 정치 경로는 순탄했다. 21세에 로마 지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2006년에는 하원의원으로 당선된다. 2008년에는 베를루스코니 내각에서 청년부장관으로 발탁되어 젊은 여성 장관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2011년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붕괴로 멜로니는 장관 경력의 34세 실업자 정치인이 되었다. 이듬해 멜로니는 ‘이탈리아의 형제들’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지극히 개인적인 정치 모험의 배를 띄웠다. 지난 2018년 총선까지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4%의 득표율을 보일 정도로 취약한 군소정당이었지만 이번에는 이탈리아 제1당으로 부상하며 기염을 토했다. 멜로니의 정치 모험이 10년 만에 성공한 셈이다.

 

트러스의 부모도 멜로니처럼 중산층 좌파였다. 수학 교수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는 케임브리지대학 출신 엘리트였고 트러스는 어릴 적 “매기(마가렛의 줄임 호칭) 아웃!”을 외치며 마가렛 대처 반대 시위에 참여하곤 했다. 트러스는 옥스퍼드대학 시절 중도 자유민주당 지부 학생회장을 역임하면서 군주제 폐지나 대마초 합법화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트러스는 1996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소속을 보수당으로 바꿨다. 멜로니가 처음부터 극우에서 정치를 시작했다면 트러스는 좌에서 서서히 우로 이동해 간 셈이다. 정치적 대부인 데이비드 캐머런의 지원으로 2010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2012년 교육부장관으로 입각했다. 이후 환경 사법 예산 무역 외교까지 주요 장관직을 두루 섭렵하면서 국정 경험을 쌓았다.

 

여성 총리 등장 자체가 시대상 반영

 

이처럼 멜로니와 트러스는 2020년대 유럽 정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인 10대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강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무서운 아이’들이 약관(弱冠)에 선거에 나서 당선되었고 30대에는 장관으로 이립(而立)했다. 그리고 불혹(不惑)의 나이에 권력의 정점에 도달하는 시대상 말이다.

 

트러스와 멜로니는 둘다 확실히 우파 정치인이지만 멜로니의 색깔이 훨씬 진하다. 트러스는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역사를 대표하는 보수당 소속이다. 19세기 디즈레일리나 20세기 처칠 등 민족적 영웅의 맥을 잇는 정치 세력을 대표한다. 반면 멜로니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정치의 비난이 집중되는 파시즘의 계보와 맞닿아 있는 이단아다. 유럽 여론이 멜로니의 집권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그러나 보수당과 포스트 파시즘이라는 라벨을 넘어 정책을 살펴보면 유사한 점도 상당하다. 특히 경제정책은 감세를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한 방향이다.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나 영국의 대처를 연상케 하는 신자유주의 재정정책이다. 문제는 트러스 내각이 지난달 23일 대규모 감세를 포함하는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국제 자본이 기겁하고 영국에서 탈출하는 바람에 새 정부가 시작부터 심각하게 삐걱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트러스가 얼마나 집권할 수 있을지 벌써 의문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유럽 언론은 영국 보수당의 트러스보다 오히려 이탈리아 극우 멜로니에 대해 걱정을 덜 하는 것 같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마음대로 정책을 펼 자유가 있으나 이탈리아는 유럽연합 회원국이기에 다양한 안전장치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극우 리가와 신흥 세력 오성운동(M5S)이 집권했을 때 확인했듯이 이탈리아의 예산은 유럽연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탈리아는 영국과 달리 독자적 정책으로 ‘사고 칠 자유’가 제한된 셈이다.

 

이탈리아의 멜로니정부가 어떤 재정정책을 펼칠지는 이탈리아반도를 넘어 유로를 사용하는 19개국 모두의 관심사다. 이탈리아가 파산이라도 하는 날에는 집단적 유로 붕괴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멜로니의 장관 경력을 단절시킨 2011년 베를루스코니의 실각은 이탈리아의 방만 재정에 대한 유럽 압력의 결과였다. 멜로니가 강한 유럽의 영향력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무책임한 재정 운영에 섣불리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 스타일로 망가지는 영국 이탈리아

 

이처럼 유럽 정치는 파란만장하다. 영국은 안정적이지만 세기를 넘어 답답한 양당제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신사를 떠올리는 유구한 전통의 보수당이 보리스 존슨과 같은 ‘광대 총리’, 취임하자마자 국제적 사고를 친 ‘시한폭탄’ 트러스를 권좌에 올렸다.

 

이탈리아는 1994년 이후 매번 선거에서 집권 세력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매춘부를 동원한 ‘붕가붕가 파티’의 베를루스코니, 혐오주의로 ‘유럽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자’ 살비니도 모자라 이제는 여성의 얼굴을 한 ‘무솔리니의 후예’들을 권력 정상에 올렸다. 지속의 영국과 변화의 이탈리아, 각자 자기만의 스타일로 망가지는 모습이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