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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유럽톺아보기] 6월의 유럽선거와 그린딜의 지정학

    • 등록일
      2024-02-16
    • 조회수
      90

올해는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결정적인 선거를 치른다. 미국은 11월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이 2020년 대선에 이어 다시 벌어지면서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오는 6월에는 유럽연합 전역에서 의회 선거가 치러지는데 국제적 관심도는 훨씬 떨어진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72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인 데다 사실 대중에게 유럽의회의 역할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미국처럼 군사적으로 강력한 연방국가는 아니지만, 세계정치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강대 세력이다. 특히 ‘브뤼셀 효과’, 즉 유럽에서 결정한 규제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 때문에 EU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행위자로 등장했다. 2024년 현재 유럽연합은 세계에서 미국(279조 달러) 다음으로 큰 시장(193조 달러, IMF 추정)을 관리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올 6월의 유럽의회 선거는 앞으로 5년간 유럽연합을 총지휘할 집행위원장 선출과 유럽의 다양한 정책을 담당할 의회 구성을 결정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바이든이 재선에 도전하듯 유럽에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

독일을 제외한다면 폰데어라이엔은 2019년 취임할 때 유럽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정치인이었으나 지난 5년간 성공적으로 유럽연합을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다. 영국과 브렉시트 협상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영국의 탈퇴를 완성했으며, 2020년 몰아닥친 코로나 위기를 백신 공동구매정책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잘 관리했다. 또 코로나를 계기로 유럽의 공동 경제 대응을 이끌어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유럽 회원국의 공동 대응을 도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업적은 유럽 차원의 그린딜이다. 유럽은 선진국 가운데 주도적으로 친(親)환경 정책을 추진해 왔으며 2020년 결정한 그린딜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성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1990년의 55%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고, 2035년 이후에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공표했다.

 

 

지난 6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는 그린딜의 새로운 목표로 2040년까지 이산화 탄소 배출량을 90% 줄이겠다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2030년의 55% 축소와 2050년의 탄소 중립 사이에 2040년 90%라는 중간 단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유럽연합의 정책적 의지를 법제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런 친환경적 포부는 지금부터 6월 의회 선거까지 다양한 정치세력에 의해 논의될 것이고, 선거 결과에 따라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미 현재의 그린딜에 대한 도전이 사방에서 심각하고 거세게 제기된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유럽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하여 트랙터로 고속도로나 도심을 장악하며 시위에 나섰다. 연초부터 지금까지 농민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나라만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루마니아, 폴란드 등이다. 농업은 유럽연합의 국내총생산에서 1.4%밖에 차지하지 않는 경제적 비중은 작은 산업이 되었으나 농민의 정서적 어필은 사라지지 않았다. 농민의 시위에 여론이 우호적인 이유다.

 

 

유럽 농민의 불만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도시민들이나 좋아할 환경정책을 위해 농민과 농업이 희생한다는 비판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정책은 기본으로 농업의 다양한 비용을 높이기에 농민들은 반대한다. 다른 하나는 유럽이 1990년대 이후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여 외부에서 환경 신경 쓰지 않고 저렴하게 생산한 농산품이 물밀 듯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국경을 개방하려면 환경정책을 포기하거나, 그린딜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면 대신 농업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이번 농민의 반발을 관찰하면서 유럽에서 떠오르는 걱정은 과거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 운동이 일어나 국가를 마비시켰듯, 유럽 차원의 격렬한 농민 중심 운동이 들불처럼 퍼져가는 상황이다.

농업뿐 아니라 산업 전체에서 그린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우렁차게 커지는 분위기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유럽은 최근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를 경험했다. 물가 안정의 시기에 참을만하던 환경비용은 인플레가 닥치면서 견디기 어려운 굴레로 변하는 모양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이자율도 상승하고 러시아와 전쟁 때문에 에너지 가격도 올라 비용 상승에 대한 불만은 산업계를 달구는 중이다.

 

 

따라서 그린딜에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업계에서 ‘유로7’ 환경기준이 너무 강화되지 않도록 로비했으며, 2035년 화석연료 사용 자동차 판매 금지는 돌이켜봐야 한다는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을 넘어 철강이나 시멘트, 건설업계도 유럽의 그린딜은 너무 강력해 국제시장에서 정부 보조금이 넘쳐나는 미국이나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가득하다.

2022년 미국이 발표한 IRA는 인플레를 축소한다는 목표를 내세웠으나 실제는 3,700억 달러 규모의 환경 기술에 대한 보조금 정책이다. 중국의 신기술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지원도 유럽은 따라가기 어려운 정책이다.

 

 

유럽은 세계 최첨단의 환경 규제를 만들어내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미국과 중국이 앞서가는 상황이라고 업계는 주장한다. 실제 유럽이 2030년 55% 이산화 탄소 감축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덕을 보는 쪽은 중국의 태양광 패널 수출업자들이다. 유럽에선 향후 전기 배터리나 풍력 산업에서 똑같은 현상, 즉 강력한 유럽의 환경정책이 중국의 배만 불리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 정치경제에서 지정학적 경쟁을 들먹이며 유럽의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산업계의 전략이 새롭지는 않다. 다만 이런 주장이 유럽 여론에 침투하면서 실제 정치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은 2020년대의 트렌드다. 이번 6월 유럽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여론 조사를 보면 유럽에서 전반적으로 녹색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내려가는 한편, 반(反)환경적 정서를 자극하는 극우 포퓰리즘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전통적으로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세력은 중도 우파의 기독교민주주의와 중도 좌파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재선에 도전하는 폰데어라이엔은 기민주의의 유럽인민당(EPP)을 기반으로 하지만 다당제가 기본인 유럽에서 홀로 집권할 수는 없다. 사민주의나 자유주의, 녹색당 등의 세력과 연합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 달 발표한 2040년 90% 감축 목표의 선거 후 재조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녹색당은 당연히 친환경 정책을 지지하고 강화하려고 하겠으나 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유주의 세력은 반대로 재조정의 방향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프랑스에서 전멸에 가깝게 몰락하고 독일에서도 인기가 급하강 중인 사민주의 세력은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으로 인기 없는 그린딜의 강화를 주장할 가능성은 작다.

이런 유럽의 복합적 정치 방정식을 고려하면서 기존의 그린딜을 운전해 나갈 드라이버는 폰데어라이엔일 것이다. 유럽정치 전문가들은 그녀를 과거 1980년대 단일시장과 유럽연합의 형성 등 거대한 유럽통합을 이끌어낸 자크 들로르 집행위원장과 비교한다. 당시 들로르는 일본의 경제적 도전과 냉전의 종식이라는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유럽을 강력한 경제세력으로 결속해냈다. 공교롭게 지난 12월 말 들로르는 세상을 떠났다. 중국의 경제적 부활과 유럽을 무력으로 위협하는 러시아의 공격 속에서 폰데어라이엔이 들로르의 정신을 이어받아 유럽연합을 국제무대의 주요 행위자로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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