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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폴란드에서 지고 네덜란드에서 뜨는 유럽 포퓰리즘

    • 등록일
      2023-12-15
    • 조회수
      106

 

2023년 유럽 정치에서 포퓰리즘 집권의 지도를 그린다면 폴란드라는 큰 나라가 빠지고 네덜란드와 슬로바키아 핀란드 등이 더해진 모습이다. 폴란드에서는 지난 10월 15일 총선에서 2015년부터 집권한 법과정의당(PiS)이 도날트 투스크가 이끄는 자유주의(시민연합), 자유·보수주의(제3의길), 좌파 세력의 연합에 패배해 권력을 빼앗기게 되었다.

 

폴란드는 유럽연합(EU)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큰 나라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폴란드의 법과정의당정부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피데스(Fidesz)정부는 동유럽 포퓰리즘의 축을 형성하면서 EU와 다수의 사안에서 대립해 왔다.

 

EU는 폴란드와 헝가리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며 법치국가의 원칙을 허문다고 비판해왔다. 2022년 헝가리 총선에서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승리했으나, 이번 폴란드 총선에서는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포퓰리즘이 조금 약화되는 모습이다. 물론 올 가을 슬로바키아에서 로베르트 피초의 우파 포퓰리즘 정부가 다시 들어서기도 해 동유럽 자체도 복합적인 상황인 것은 맞다.

 

게다가 법과정의당이 폴란드를 10년 가까이 통치하는 동안 국가기구에 많은 지지자들을 심어놓아 정권교체가 곧바로 자유주의와 법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폴란드 정치의 정상화가 이뤄진다면, EU가 그동안 집행을 보류했던 폴란드 지원 예산이 풀리면서 경제 상황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폴란드의 변화가 보여주는 교훈은 장기간 포퓰리즘의 지배를 받은 국가도 선거를 통해 권위주의적 실험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은 74.25%로 매우 높아 적극적인 참여를 반영했고, 그 가운데 53.5%가 변화를 지향하는 야권연합을 지지했다.

 

 

 

포퓰리즘 약화됐지만 여전히 강한 힘

 

하지만 폴란드가 가져온 안도감은 네덜란드 포퓰리즘의 놀라운 결과로 퇴색했다. 지난 11월 22일 총선에서 네덜란드의 극우 포퓰리즘 자유당(PVV)이 제1당으로 급부상하며 150석 가운데 37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다당제 나라인 만큼 향후 연합정부를 위한 복잡한 협상이 진행되겠지만, 선거를 통한 포퓰리즘의 부상과 그 결과 우경화된 정부가 형성될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폴란드가 네덜란드보다 인구도 많고 영토도 크지만 네덜란드는 EU 정치에서 핵심적인 존재다. 유럽통합을 시작한 초기 6개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근대로 오는 수세기 역사 동안 관용과 자유의 나라로 이름을 떨쳤다. 국가와 사회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 이런 네덜란드에서조차 극우 포퓰리즘이 제1당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유럽정치계에 충격이다.

 

굳이 폴란드와 네덜란드의 포퓰리즘 대차대조표를 보면 유럽의 포퓰리즘은 이전보다 조금 약화됐으나 여전히 강한 힘을 갖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법과정의당이 독점하던 권력을 상실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자유당이 온전히 권력을 차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제1당이지만 다른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해야 하고, 그 협상에 따라 정책적 결과는 달라질 예정이다.

 

 

 

 

이탈리아와 헝가리정부도 관심의 대상

 

종합적 대차대조표에서 폴란드나 네덜란드만큼 중요한 나라는 기존 포퓰리즘 정부 국가들이다. 특히 이탈리아와 헝가리가 관심의 대상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조지아 멜로니 정부가 2022년 출범해 올 한해 극우 포퓰리즘이 집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멜로니의 정치세력인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네오파시즘에 뿌리를 둬 많은 우려를 자아냈으나 나름 EU 현실에 잘 적응하고 있다. 멜로니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이탈리아 정치는 또 다른 극우 세력인 ‘리가’와 신흥 정파인 오성운동의 연정을 경험했다. 2018~2019년 이들은 많은 정책 변화를 추구했지만 유럽의 복합적 상호의존성이라는 제약 아래 개별 회원국 정부가 갖는 한계를 이미 톡톡히 인식하게 됐다.

 

멜로니는 이런 실험을 잘 인식하고 소화하는 한편, 실용적 태도로 집권하면서 EU의 중심부와 크게 부딪치지 않았다. 이탈리아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의 무려 140%에 달한다는 재정적 약점은 멜로니정부를 ‘온순’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탈리아에서 리가와 이탈리아의 형제들이라는 두개의 커다란 극우세력이 경쟁한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마테오 살비니의 리가가 조금 더 현실비판적이라면 멜로니는 집권능력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유럽을 뒤흔드는 우크라이나전쟁이 러시아에 매우 비판적인 멜로니의 외교적 위상을 뒷받침해 준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유럽의 극우는 권위적인 푸틴에 대개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헝가리 피데스당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2010년부터 계속 집권해왔으며 당분간 유럽 극우 포퓰리즘의 중심기지로 작동할 예정이다. 헝가리는 민주 제도를 퇴보시킨다는 이유로 EU가 지급하는 수백억유로에 달하는 재정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제재 대상이다. 그럼에도 오르반정부가 유럽에 순순히 굴복할 태세는 아니다.

 

국가 규모만 본다면 헝가리보다 훨씬 큰 이탈리아가 오히려 EU의 제약과 압력에 더 순응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탈리아 국채가 국제시장에 더 노출돼 있고, 따라서 어쩌면 국가 경제가 더 취약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번 14일과 15일에는 연말을 결산하는 유럽정상회의가 열려 장기화 궤도에 오른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은 유럽 국가들의 놀라운 단결력과 신속한 대응을 불러왔으나, 이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종의 피곤현상과 비판적 의견이 표출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오르반의 헝가리는 이런 약점을 파고들면서 친 러시아 노선을 유럽 안에서 더욱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헝가리는 여전히 EU 안에서 예외적인 나라이고, 거기에 슬로바키아가 목소리를 더하더라도 이들이 소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년에는 미국 대선이 예정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라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의 미국과 푸틴의 러시아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는 분위기라면, 유럽 내 작은 목소리도 유럽을 분열시키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민족주의 우파, 한목소리 내기 어려울 듯

 

게다가 유럽도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치른다.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활발하게 선거를 준비하면서 단일 세력화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양새다. 현재 프랑스의 민족연합(RN)과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정체성과 민주주의(ID)’라는 원내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폴란드의 법과정의당과 이탈리아 형제들이 주축을 이루는 ‘유럽보수개혁(ECR)’ 그룹이 있다. 여기에 그룹 소속을 거부하는 헝가리의 피데스도 존재한다.

 

만일 ID와 ECR, 그리고 피데스가 하나로 뭉친다면 유럽의회의 많은 결정을 마비시킬 수 있는 강한 소수그룹을 형성할 수 있다. 유럽의 기독교민주주의 세력은 유럽민중당(EPP)을, 사회민주주의도 하나의 그룹(SD)을 이루듯 유럽에 비판적인 민족주의 우파도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맹점은 배타성과 분열성으로 공존과 협력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독교민주주의의 보편적 사랑이나 사회민주주의의 인류 연대 같은 통합적 철학과 논리가 민족주의에는 없다. 기껏해야 타자의 민족도 인정할 수 있다는 정도인데다 자신만 바라보는 정체성 타령으로 민족을 넘어서는 협력에는 서툴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 포퓰리즘은 과거의 민족국가 틀에는 어느 정도 어울리지만 현재 EU 정치에서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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