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주식시장 시총, 사상 처음 파리에 밀려
민족주의 앞세운 브렉시트, 英 금융쇠퇴 초래
카타르 월드컵 8강전뿐 아니라 금융 세계의 경쟁에서도 프랑스가 영국을 눌렀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자본주의의 조국이었고 런던은 세계 금융의 심장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뉴욕에 1등의 자리를 넘겨준 런던의 주식시장은 이제 ‘앙숙’ 파리에게조차 뒤지는 신세가 되었다. 저무는 영국의 해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일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결과는 장기적으로 드러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로 인한 국가 경제의 쇠퇴가 슬슬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런던 주식시장의 시가총액(2조8000억달러)이 파리에 밀렸다. 물론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나 LVMH, 케링, 로레알 등 프랑스 명품 기업의 주가 상승 등 일시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결과는 런던 시장의 심각한 구조적 쇠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브렉시트 이전까지 런던은 유럽을 대표하는 증시로 기능했고 2016년 파리보다 시가총액이 1조4000억달러나 높았다. 영국은 EU의 회원국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통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영국 금융산업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측했기에 런던의 금융산업계는 EU 탈퇴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었다.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는 긴 과도기를 거쳐 작년 시행되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리듯 국제 금융계의 탈(脫)런던 행렬이 결국 시작되었다. 라이언에어 항공사는 이웃나라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광업 대기업 BHP는 호주의 시드니로 이동했다.
EU의 대륙에서도 주요 도시들이 서로 경쟁하며 런던에 있던 금융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정책적 네트워크의 중심이며 게르만 세계를 대표한다는 장점을 내세운다. 17세기 영국보다 앞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도 21세기 부활을 꿈꾸며 개방적 도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자본 친화적인 정책을 선전하며 프랑스와 독일 사이 지리적 중심임을 강조한다.
파리는 런던이나 뉴욕 등과 견줄 만한 진정한 코즈모폴리턴 도시임을 자랑하며 2019년 런던에 있던 EU 은행위원회를 파리 근교 라데팡스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영어로 일하는 국제금융 엘리트들을 파리로 이끌기 위해 국제학교 확충에도 열심이다. 런던과 같은 글로벌 대도시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파리에서도 똑같이 누리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금융 조사기관(EY)에 의하면 브렉시트 이후 2021년까지 이미 7600개의 전문직 고용과 1조3000억유로에 달하는 자산이 런던에서 유럽으로 넘어왔다. 런던이 그만큼 가난해지면서 파리나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을 살찌웠다는 의미다. 게다가 런던이 상실한 자산이나 고용을 유럽이 전부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BHP가 시드니로 이동했듯 미국이나 동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3분의 1 정도를 흡수한다.
브렉시트로 표출된 영국의 민족주의가 런던의 금융을 강타한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국수주의가 홍콩이라는 전통적 금융 중심을 흔들고 있다. 이 기회를 향해 싱가포르와 도쿄, 시드니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에서 서울이 새로운 금융 중심으로 부상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