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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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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내일신문] 천년이 넘는 영국 군주제의 비결 (22.09.14)

    • 등록일
      2022-09-16
    • 조회수
      191

장수(長壽) 시대를 반영하듯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70년 이상 왕위를 지킨 영국 사상 최장기 국왕의 기록을 세웠다. 영국은 입헌 군주제로 국왕의 실권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 기록은 놀랍다. 잉글랜드 왕정은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주변 지역을 포괄하면서 천년이 넘도록 작동한 장기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기록보다 더 놀라운 점은 중세부터 내려오는 영국 군주제가 여전히 살아남아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왕실과 군주제가 21세기까지 천년 넘게 생존한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유연성이다. 과거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이야말로 영국 왕실과 군주제가 살아남은 조건이다.

 

11세기 이후 영국 왕조는 모두 잉글랜드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왕실 가문이었다는 점은 영국이 얼마나 개방적 정체성을 가졌는지 잘 보여준다. 중세 초기 영국 왕실은 덴마크에서 이전해 왔으며, 이후 1066년 정복자 윌리엄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세력을 이끌고 건너왔다. 영국 왕실은 13~14세기 프랑스어를 사용했으며 주민은 앵글로색슨 언어로 말했다. 이 둘이 섞여 재판이나 의회에서 사용하는 ‘잉글리시’라는 언어를 낳았다. 영국의 언어와 정체성은 이렇게 외부의 정복 세력과 내부의 주민이 융합한 결과다.

 

유럽의 왕실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심각한 지속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교회가 강제하는 일부일처제의 제약을 받았다. 이혼도 불가능한 가운데 한 명의 부인으로부터 왕권을 넘겨줄 수 있는 자식을 낳지 못하면 매우 복잡한 왕위 승계의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왕족의 정통성이 무력에 기반하고 전쟁이 잦았다는 점에서 젊은 나이에 전사하는 왕족들이 많았다. 군주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또 다른 악조건이었던 셈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대륙에서는 남성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는 살릭법(Salic Law) 이 지배했기에 상황은 더 어려웠으나 영국은 그나마 딸도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유연성을 가졌다. 여왕이 군림함과 동시에 대륙 왕실의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 영국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 왔다.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나 19세기 빅토리아 등 영국의 전성기를 주도한 것은 모두 여왕이었다.

 

1688년 명예혁명 때 영국은 네덜란드로 시집간 공주 매리와 그의 남편 윌리엄을 불러들여 국왕으로 삼았다. 덴마크,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의 영향력까지 흡수한 셈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세계 최강대국이었고 선진 지역이었다. 18세기 들어서는 다시 독일어밖에 하지 못하는 하노버 국왕 조지 1세를 초빙하여 영국 왕으로 삼았다.

 

이처럼 영국 왕실은 해외의 영향력은 물론 민주적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사회적 변화도 받아들여 명예혁명과 의회주의를 실천했다. 시민사회의 요구에 귀를 막고 자신의 권력 집중에만 치중했던 프랑스 왕실이 대혁명을 맞아 국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역사와 대조를 이룬다.

 

지배와 정복의 논리로 부상한 유럽의 강대국 러시아와 독일의 왕실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함으로써 독일 군주제는 막을 내렸으며,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반면 영국은 제1차 대전 당시 적국 독일 냄새가 나는 작센 코부르크 고타 왕가라는 이름을 버리고 윈저로 개명했다. 전통과 권력에 대한 경직된 집착은 패망을 가져오고 반대로 개방과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성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기면서.

 

21세기에도 영국 왕실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2013년 남성 우선 왕위 승계의 원칙을 포기하고 딸 아들 구분 없이 출생순서에 따라 왕위를 받는 혁신을 통과시켰다. 2022년 영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유일한 군주제 국가이며, 영국 왕실은 G7의 영국과 캐나다 국가원수를 맡고 있다. 또 G20에서 영국, 캐나다, 호주, 인도, 남아공 5개국은 영국 국왕이 대표하는 영연방 소속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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