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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7)] 호모 루덴스, 놀이와 자본주의의 조합

    • 등록일
      2022-05-17
    • 조회수
      262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7)] 호모 루덴스, 놀이와 자본주의의 조합 

 

즐기니까 인간이다 

 

유럽의 근대 시민사회 골격 형성에 기여한 스포츠, 올림픽으로 확대돼
F1에서 e스포츠까지 다변화한 프로 스포츠 발전할수록 마케팅 극대화


▎10만 명까지 입장할 수 있는 호주 멜버른의 대형 크리켓 경기장. 스포츠는 집단적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 사진:위키피디아

자본주의의 발전은 생산능력의 획기적 향상과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왔다. 인간의 삶에서 기본이 되는 의식주에서 자본주의는 풍요로운 생산을 통해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 인간은 노동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농경사회 진입을 분석하며 ‘인구의 증가로 인간이라는 종(種)은 발전을 이뤘을지 모르나 농업에 종사하면서 개개인의 삶은 이전보다 더 긴 시간 고된 노동을 제공해야 했다’고 설명한다.

 

평균적으로 수렵 채취 시대의 인간보다 농경사회의 사람들이 더 많이 일해야 했다. 또 산업사회 공장이나 탄광의 노동자가 농촌의 농민보다 더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다. 농한기를 여유롭게 즐기거나 농사를 짓다가 새참을 먹는 등 농촌 생활의 노동 리듬은 꽉 짜인 공장 노동자의 하루보다 집중도가 약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나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 부담이 일률적으로 가중됐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문명의 발전은 사회적 분업을 통해 가능했다. 즉, 노동에 종사하는 집단이 글을 읽거나 사무를 보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구조가 생겨난 것이다. 모두가 식량을 생산하는 세상에서 정치, 행정, 군사, 학문 등의 분야에만 종사하는 인구가 점점 더 많아지는 사회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지난 200여 년 동안 농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자본주의의 선두주자인 미국만 보더라도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870년대까지 50%가 넘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 비중은 2% 미만으로 떨어졌다. 반면 서비스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제조업이 자본주의 산업혁명의 핵심이었지만 제조업조차 서비스업에 경제 활동의 왕좌를 내주는 변화가 일어났다. 21세기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은 80%라는 압도적 비율을 차지한다. 유럽연합도 70% 이상이다. 후발주자 중국 또한 2017년 현재 서비스업이 51%를 차지하면서 경제의 중심이 서비스 분야로 옮겨가는 중이다.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은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촉진한 동력이다. 효율적 생산을 위해 토지와 노동, 자본과 기계 등을 적절하게 동원해 생산량을 대폭 늘려주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농업 비중이 줄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극소수로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농업의 자본주의화 때문이다. 동시에 제조업의 발전은 면이나 모직 등 의류가 주축이었다. 주택과 도시를 만드는 건설업 역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경제의 핵심적인 기둥이다.

 

자본주의의 폭발적 성장은 기존의 의식주 패턴을 뛰어넘는 수요 증가에서 비롯됐다. 조지프 슘페터가 강조했듯이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창조적 파괴’다. 이런 변화는 초기부터 자명했다. 물을 마시던 사람이 콜라를 소비하면서 새로운 산업이 생성되는 식이다. 집에서 여인들이 짜낸 옷이 아니라 공장에서 만든 의복을 시장에서 사면서 직물산업은 급성장했다. 주거 형태도 손수 짓는 나만의 초가집에서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으로 이전하며 자본주의는 발전했다.

 

플레이(Play)와 엔조이(Enjoy), 놀이의 특징

 

자급자족 시대에는 의식주가 인간의 자연적 필요를 충족하는 영역이었다면, 자본주의는 필요를 넘어 인위적 수요를 창출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물론 자연적 필요와 인위적 수요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놀이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야말로 인류에게 문명을 안겨준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앞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사람, 사고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발전의 축을 형성한 제조업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무엇을 만드는 사람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동물에서 더 높은 단계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위징아가 주목하는 ‘호모 루덴스’는 노는 사람, 또는 즐기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영어를 사용한다면 플레이(play)와 엔조이(enjoy)라는 동사에 해당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종교나 과학을 발전시키고, 호모 파베르가 기술과 공장을 세운 존재라면 호모 루덴스는 20세기 자본주의 발전을 대표한다. 서비스업 대부분은 실제 사피엔스의 놀고 즐기는 특징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농사지어 집에서 밥을 해 먹으면 1차 산업이다. 공장에서 통조림을 만들어 팔면 제조업, 즉 2차 산업에 해당한다. 반면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를 즐기면서 데이트를 한다면 서비스업인 3차 산업을 발전시키는 셈이다. 같은 먹거리도 이렇게 달리 분류될 수 있다. 하위징아는 놀고 즐기는 특징은 이미 동물 세계에서부터 존재해 왔다고 밝힌다. 서로 어울려 뛰노는 강아지들을 살펴보자. 이들은 예측할 수 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서로 부딪치고 물어뜯으나 그것은 장난일 뿐 피가 흐르거나 다치게 하면 곤란하다.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고 과한 행동을 자제하는 노력을 동반한다. 마치 화가난 듯 싸우려 들기도 하지만 사실은 단지 연기일 뿐이다. 무엇보다 놀이를 통해 강아지들은 큰 즐거움을 얻는다. 자유, 규칙, 자제, 연기, 즐거움 등은 동물을 넘어 인간까지, 모든 놀이가 동반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스포츠라는 쌍둥이의 탄생

 


▎피테르 브뤼헬의 1560년 작품 [아이들의 게임]. 형태만 다를 뿐, 오래전부터 놀이는 존재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놀이의 제왕 스포츠를 살펴보자. 자본주의와 근대 스포츠는 비슷한 시기 같은 사회에서 태어난 쌍둥이와 같은 존재다. 19세기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완성될 무렵 근대 스포츠 또한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해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축적하는 인간의 본능이 자본주의를 통해 체계적으로 자리 잡게 됐듯, 즐거움을 추구하는 또 다른 본능은 놀이를 통해 근대 스포츠라는 틀 안에 안착했다. 먹거리 분야에서 차를 음료로 소비하는 문화는 영국 자본주의 발전의 중요한 모멘텀이었다. 귀족들이 동아시아 무역에서 수입한 차를 도자기 잔에 뽐내며 마시기 시작한 뒤 점차 사회 전체로 확산했듯이, 엘리트 교육 과정에서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을 훈련하기 위해 개발한 축구나 럭비와 같은 운동이 사회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소수의 지배층에서 점점 전 국민에게 확산하는 소비 패턴은 이후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등식이 됐다.

 

자본주의 제도가 생산 분야에서 개인주의적 가내수공업을 공장이라는 공동체로 확장했듯 스포츠 또한 개인 단위의 대결이나 결투에서 집단적 대립으로 발전했다. 전통사회의 스포츠는 기사들 간의 개별 토너먼트가 모델이었으나 근대화하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대결하는 습관이 생겼다. 학교 간 대립 모델은 공장이나 도시로 확산·전파됐고 다양한 종류의 클럽이 만개하는 모습이 됐다. 놀이는 이처럼 근대 시민사회 형성에 골격을 제공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자본주의가 규격화된 상품을 대량생산하듯 근대 스포츠는 똑같은 규격의 운동장과 공, 규칙을 적용하는 엄청난 통합의 기제로 작동했다. 지역마다 다른 규칙을 가졌던 세상에서 정해진 규칙이 전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시대가 전개됐다. 축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이 고착되면서 무료함을 달래려는 군인에 의해 대중적인 게임으로 발전했다. 바야흐로 영국에서 시작된 대중 스포츠가 국제화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스포츠와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는 모두 유럽이라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확산해 나갔다. 스포츠 관련 국제기구는 거의 예외 없이 유럽에 본부가 있다. 서울 국기원의 태권도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배드민턴만이 세계 본부가 유럽 밖에 위치한다. 그만큼 지구촌의 근대란 유럽 중심으로 만들어진 틀이었다.

 

스포츠의 지형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많이 반영한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야구는 중남미와 동아시아 등 미국과 역사적으로 가까운 지역에서 유행했다. 또 영국의 크리켓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시아에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축구에서 인구 대국 중국은 시진핑의 엄청난 관심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월드컵 예선의 단계도 넘지 못하고 있다. 축구에는 집중 투자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미묘한 사회문화적 비밀의 문이 있는 것 같다.

 

영국에서 축구의 발전은 클럽을 통해 공동체 간의 경쟁을 부추겼다. 전국의 학교가 서로 대항하는 형식의 대회는 영국에서 시작해 모든 스포츠의 기본 경쟁 형식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대학은 미식축구나 농구를 통해 교내 결속력을 다지고 전국적인 홍보에 나선다. 일본이나 한국의 고등학교 야구도 비슷한 원리가 확산한 결과다. 다양한 스포츠의 국내 대회나 리그는 기본적으로 도시들이 경쟁하는 구도를 갖는다. 게임에 참여하는 것은 더 커다란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규칙을 지켜야 하고,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동시에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엘리트 청소년의 교육을 위해 고안된 근대 스포츠가 시민사회를 조직하고 길들이는 중요한 수단으로 발전한 셈이다. 특히 국가와 민족의 차원으로 경쟁과 시합이 확산하면서 스포츠는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민족주의와 스포츠의 결합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 개막식. / 사진:위키피디아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백작이 창안한 근대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 국가가 참여하는 스포츠의 보편적 축제를 시작한 셈인데 역사적 기원이나 문화적 배경이 고대 그리스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유럽 중심적인 색채를 띠었다. 이후 전쟁이나 정치적 대립 등으로 일시 중단되거나 분열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으나 지금은 100년 넘게 지속되는 인류의 중대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으로 인식할 정도로 스포츠의 위상은 대단해졌다. 일본의 도쿄올림픽(1964년), 한국의 서울올림픽(1988년), 중국의 베이징올림픽(2008년)은 각각 동아시아 3국의 선진화를 상징하는 역사적 계기로 인식된다. 나치 독일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아리안 종족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장으로 활용하려 했고, 공산 소련이나 동독은 금지된 약물까지 동원해 뛰어난 성적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스포츠의 경제적 중요성은 그 대중성에서 비롯된다. 특히 운동하는 사람뿐 아니라 구경하는 관객이 늘어나면서 스포츠는 관람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기제로 부상했다. 선수와 관객, 참가와 관람이라는 분업이 이뤄지면서 직업적인 스포츠 선수들이 등장한 것이다. 아마추어가 대접받던 19세기의 올림픽 정신은 서서히 사라지고, 20세기가 되면 높은 기량을 자랑하는 프로 선수들이 스타로 부상했다. 축구나 테니스가 올림픽의 틀에서 일찍이 벗어나 독자적 프로 세계를 개척한 사실이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스포츠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는 중요성은 도시 건축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제적인 대도시에 있는 가장 커다란 구조물은 대부분 경기장이다. 기차역이나 공항이 더 큰 공간을 차지할지 모르겠으나 경기장만큼 수만 명의 관객이 동시에 입장해서 밀집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21세기 현재 전 세계에는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 10여 개 이상이다. 미국의 미식축구장, 유럽의 축구장, 인도의 크리켓 경기장에 이어 북한의 능라도 5·1 경기장까지 그 종목과 목적은 다양하다.

 

서울의 잠실 종합경기장이나 상암 월드컵경기장처럼 거대한 경기장이 해당 도시나 국가의 자랑스러운 건축물로 떠오르면서 세계는 경기장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축구의 고장 유럽에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베르나베우 경기장이나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 경기장,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 등은 성전(聖殿)에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다. 축구 팬 중에는 대통령 선거나 총선 결과보다 월드컵 결승전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스포츠웨어 삼국지 : 아디다스, 푸마, 나이키

 


▎선수와 오토바이가 광고판으로 활용되는 모터스포츠. / 사진:위키피디아

게임이 진행되는 경기장이 건설 부문을 자극했다면 선수들의 옷이나 신발은 새로운 의류 세계를 열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다슬러(Dassler) 형제는 1920년대부터 선수용 스포츠 신발을 만들었다. 1940년대 두 형제는 각각 아디다스(동생 Adolf Dassler)와 푸마(형 Rudolf Dassler)라는 회사로 독립했는데 유럽 스포츠웨어를 지배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 출범한 나이키가 도전장을 내밀면서 전 세계 스포츠웨어 시장은 세 회사가 나눠 갖는 모습이 됐다.

 

1970년대 운동화는 세계화를 개척한 첨병이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운동화야말로 21세기 지구촌 공급사슬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실험이었다. 미국에서 디자인한 나이키 운동화는 주로 아시아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만들어졌고, 전 세계 시장에 배급됐다. 일본 아식스의 전신 오니츠카는 나이키 운동화 하청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만 해도 운동화는 선수들의 전용물이었지만 조깅의 국제적 붐을 통해 누구나 애용하는 신발이 되면서 시장을 넓혀갔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은 신발을 포함해 거의 모든 소비 용품에서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0년대부터는 스포츠의 세계화가 일상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유럽의 축구나 미국의 농구는 1년 내내 시즌을 운영하면서 다른 대륙의 관심을 끌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 운동화의 아이콘이 됐고, 그의 이름을 딴 ‘에어 조던 1’(Air Jordan 1) 운동화는 1980년대 중반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이후 스포츠 스타를 통한 마케팅은 일반 시민의 일상에 침투해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유명 브랜드 의류와 운동화를 신으려는 욕망을 심어줬다. 나이키와 조던의 합작 사례는 현대 스포츠를 지배하는 문화와 경제의 긴밀한 결합을 상징한다. 수준 높은 스포츠의 세계는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는다. 도시나 지역 등 공동체에 대한 애정은 노골적인 상업 마케팅과 섞여 스스럼없이 사람들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길들인다. 이제 모든 스포츠 선수는 자본주의의 광고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다. 심지어 아마추어 정신의 상징인 올림픽조차 이런 상업주의 스폰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포츠 영역의 확산

 

스포츠가 대중적인 활동으로 발전했던 19세기 중반, 운동 중 사용하는 도구는 단순한 기본 장비였다. 아예 육상이나 수영처럼 맨몸으로 참가하거나 편한 옷과 신발 정도에 한두 가지 장비, 예를 들면 장대나 창·공 등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놀이는 점차 복합적인 모습을 띠었고, 재미를 가미하기 위한 기구나 장비가 개발됐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축구가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할 즈음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눈 위에서 즐기는 동계 스포츠가 서서히 발전했다. 1924년이 되면 하계 올림픽에 이어 첫 동계 올림픽을 프랑스 샤모니에서 개최했다. 이후 스키와 스케이트처럼 눈이나 빙판에서 즐기는 운동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하계 스포츠가 거대한 경기장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듯 동계 스포츠는 산을 깎고 리프트를 설치한 스키장을 양산했다.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지형의 높이를 활용한 스키나 스노보드는 빠른 속도가 주는 쾌감을 만끽하는 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육상 분야에서 인간의 속도를 제일 먼저 자극한 기구는 자전거였다. 프랑스 전국을 일주한다는 의미의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는 1903년 처음 열렸는데 수십 일 간의 장기 경주였다. 산악지역에서 오르막길의 힘든 노력과 내리막길의 빠른 속도는 자전거 경주의 묘미를 선사했다. 자전거에서 시작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오토바이나 자동차 등으로 확산했고 모터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F1이라 불리는 자동차 경주는 속도의 경연장이며, 파리-다카르 랠리(Paris-Dakar Rally, 파리에서 출발해 세네갈 다카르에 이르는 자동차 경주)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사막의 경주 대회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달리기의 모델이 점차 다양한 장비를 활용한 새로운 스피드 경기를 개발해냈다. 검투사나 기사의 결투 모델은 경기의 규칙과 영역을 정해놓고 대결하는 격투기나 구기 종목으로 변형됐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계나 컴퓨터를 활용한 새로운 종류의 게임들이 만들어졌다. 전통 스포츠의 모형을 따라 모터스포츠가 발달했듯 20세기 후반부터 e스포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높은 실력의 프로게이머가 등장함으로써 아마추어와 프로의 세계를 형성했다.

 

인류의 놀이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분야가 운이 적용되는 확률 게임이다. 고대에는 우연을 활용해 운세를 점치는 일이 유행했으나 점차 카드나 주사위 등의 도구를 통해 오락의 장을 여는 일이 빈번해졌다. 놀이판에 돈을 걸면서 도박이 탄생했고 자본주의와 도박의 결합은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와 같은 환락의 도시를 잉태했다. 사막 가운데 솟아난 라스베이거스는 1931년 카지노 도박을 합법화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해 자칭 ‘세계 오락의 수도’이자 ‘죄악의 도시’(Sin City)로 우뚝 섰다. 인간의 전략적 두뇌 게임인 체스, 장기, 바둑 등도 놀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두뇌 게임을 둘러싼 자본주의적 부가 사업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란 이성적 게임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감정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적 삶 자체가 이미 너무 계산적이기에 두뇌 게임에서는 충분한 해방감이나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미국의 역사학자 조이스 애플비는 [가차 없는 혁명: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인류는 식량이 부족하고 생존 본능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풍요의 시대로 진화했고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진행됐음’을 강조했다. 결핍에서 풍요로 오면서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문화가 모두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하나의 문화적 시스템으로 규정한다. 정치, 경제, 사회는 각각 따로 작동하는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 체계로 묶인다는 시각이다. 애플비의 문화 체계라는 개념을 수용한다면 하위징아가 제시했던 놀이의 특징이 새로운 풍요 시대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수 있다. 자유를 누리고 놀면서 여유를 갖고 자제력을 발휘하는 태도, 그 속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일이야말로 배가 부른 뒤 누릴 수 있는 자본주의적 시대정신이 아닐까.

 

사회를 지배하는 게임의 논리

 


▎인공적 환락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밤 풍경. / 사진:위키피디아

전통적으로 정치는 권력을 둘러싼 투쟁의 영역이었다. 결핍의 시대에 일어나는 투쟁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임이었다. 승자가 권력을 독식하고 패자를 잡아먹거나 제거해 버리는 생존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전형적 정치체제인 대의 민주주의는 헌법이라는 규칙을 바탕으로 선거라는 게임을 벌이는 한시적인 권력 경쟁의 축제다.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진영의 논리 또한 청·백군을 나눠 초등학생들이 벌이는 운동회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경제 부문에서도 결핍의 시절에 투쟁할 때 사용되던 언어나 개념이 동원된다. 시장을 영토에 비유하고 경제 전쟁에서의 승패를 언급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전은 경제 분야에 게임의 규칙을 통해 승패의 결과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비즈니스에서 유한책임의 원칙을 확립한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파산이라는 제도 또한 재기와 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다. 무엇보다 경제 활동은 과거에는 신분과 결합한 종신의 굴레였으나 이제는 바꿀 수도 있고, 근무 시간만 끝나면 벗어던질 수 있는 일시적 계약으로 가벼워졌다.

 

사회 영역에서도 놀이의 논리는 지배적인 위상을 차지하게 됐다. 일례로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분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녀 구분이 차별로 인식되면서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 성별의 장벽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성별을 선택 사항으로 고려하자는 움직임이 드세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개개인의 주관적 선호가 우위를 점하는 변화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21세기 자본주의 세계에서 섹스는 이제 생물학적 재생산을 위한 엄숙한 행위라기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일 뿐이다. 물론 여기서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 존재한다. 상대방의 동의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고, 미성년에 대한 금기는 엄격히 지켜야 한다. 종교와 전통이 지배해 온 성의 영역은 이제 피임의 발전으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 쾌락과 만족이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호모 루덴스가 만개할수록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번식과 미래가 위협받지는 않을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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