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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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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아프가니스탄 위기와 ‘유럽 주권’ (21.09.09)

    • 등록일
      2021-09-10
    • 조회수
      229

2017년 프랑스 대통령에 막 당선된 엠마뉘엘 마크롱이 소르본대학 연설에서 ‘유럽 주권’의 필요성을 내세웠을 때 유럽의 반응은 냉담했다. 경제 분야의 유럽통합이 오래전부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기는 했으나 군사나 안보 분야는 여전히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럽의 안전을 담당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뒤 아프가니스탄 위기는 유럽의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프랑스는 2014년 일찍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지만, 독일(1,100명), 영국(800명), 이탈리아(750명) 등은 여전히 군대가 현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철군의 결정이나 일정과 관련 유럽 국가들과 전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유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기 국방비를 제대로 분담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올초 조 바이든은 원래의 “미국이 돌아왔다”며 동맹국들을 존중하겠다고 천명했으나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보여준 태도는 유럽을 철저하게 무시한 셈이다.

 

2001년 미국이 911테러를 당한 뒤 아프간과 전쟁을 벌이자 유럽 국가들은 미국을 돕기 위해 참전했다. 그러나 20년 뒤 미국의 성급한 철군 결정에서는 완벽히 소외당함으로써 동맹이 아닌 종속적 관계라는 현실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유럽 안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특별히 중시하던 영국에서조차 이제는 미국에만 의존하는 동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될 정도다.

 

사실 긴 역사를 살펴보면 유럽통합은 군사와 안보 중심의 계획이었다. 유럽은 1950년대 초 냉전 시기 소련과 공산권에 대항하기 위해 방위공동체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경제 중심 통합은 안보 분야의 실패를 간접적으로 만회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말하자면 ‘꿩(군사통합) 대신 닭(경제통합)’이었는데 닭이 공작이 되고 꿩은 참새로 축소된 모양새다.

 

물론 지난 70여 년 동안 유럽이 군사통합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근래의 사례만 보더라도 1999년 유럽연합은 6만 명에 달하는 통합 군대를 창설하자는 계획을 결정했었고, 2007년에도 1,500명 규모의 특별전투부대를 만들자는 합의를 이룬 바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계획도 성공적으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그만큼 국가 주권의 핵심 영역인 군사통합은 어려웠다는 의미다.

 

아프간 사태에서 유럽이 당한 굴욕이 군사통합의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의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조셉 보렐 폰텔스는 지난 1일 뉴욕타임즈 기고에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 얼마나 필요한지 설명하면서 역외에 개입할 수 있는 특수부대와 유럽의 방산 관련 공동기금(80억 유로 규모) 추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유럽 주권과 전략적 자율성의 개념을 가장 강조하는 프랑스의 계획에 EU의 중심 독일도 관심을 표하고 있다. 오는 26일 총선을 앞두고 독일의 대표적 정치 세력인 기민당(CDU)과 사민당(SPD)이 모두 유럽 주권의 담론을 받아 호응하고 있다. 지난 6일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그리고 8일 기민당의 아르민 라셰 총리 후보는 각각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예방하여 향후 유럽통합을 위한 독일과 프랑스의 협력을 약속했다.

 

프랑스도 내년 봄에는 대선을 치르기 때문에 미래를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현재로선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군사통합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은 분명하다. 물론 과거처럼 합의한 계획을 실현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유럽은 프랑스와 독일 뿐 아니라 27개 국으로 구성된 연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험적 통합이 성공하더라도 유럽이 미국과 대등하게 세계정치를 논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유럽을 관찰하면 작은 아이디어가 정부간 합의로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작은 실험에서 큰 계획으로 성장하여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결과를 낳는 일이 빈번했다. 달러와 어깨를 견주는 유로가 그랬고, 보잉을 위협하는 에어버스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 백일몽이 될지 아니면 군사 부문에서도 꿈이 실현될지 주목해 볼 일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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