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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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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韓과 佛의 확진자 자가격리

    • 등록일
      2021-08-13
    • 조회수
      223
韓과 달리 佛선 의무 규정에 위헌 판정 내려
K방역의 성공, 정치 질서의 차이에서 비롯

프랑스에 대한 유럽의 많은 농담 가운데 “프랑스의 신처럼 행복하다”는 표현이 있다. 대혁명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프랑스에서는 유대교도 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어 유럽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떠돌던 말이라고 전해진다. 신도 모처럼 공식 찬양의 대상이 되니 행복했을 터이다. 하지만 프랑스인이 종교에서 멀어졌기에 신이 쉴 수 있어 행복하다는 버전도 있다.

 

프랑스의 신이 행복한지는 모르겠으나 위정자에게 프랑스는 골치 아픈 나라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백신이 모자라 난리인데 프랑스는 충분히 확보한 백신을 맞으라고 해도 접종을 거부하는 안티 백신 세력이 매주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백신 접종 캠페인이 지지부진하자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드디어 ‘보건패스’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카페나 식당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의 출입을 접종자에게만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反)백신 세력에 패스 반대자까지 합세하여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보건독재’를 타도하자고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다.

 

어차피 혁명은 소수에서 시작한다고 믿는 나라 프랑스다. 아무리 다수가 백신과 보건패스를 지지하더라도 소수의 반대 세력은 입을 다물지 않는다. 그리고 다수도 이들 소수의 저항권을 인정한다. 민주주의란 지휘자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가 아니며, 다양한 목소리가 충돌하여 방향을 정하는 토론 과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5일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마크롱 정부의 보건패스 법안을 대부분 합헌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역할과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임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에 9일부터 보건 패스는 프랑스 전역에서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헌법위는 코로나 확진자의 의무적인 자가격리 조항은 위헌으로 보고 가로막았다. 프랑스 정부는 확진자 10일간 강제격리를 추진하면서도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 외출 가능성을 열어 둔 ‘인간적’ 조치였음을 강조했으나 위헌 결정을 피하지 못했다. 개개인의 사정을 무시하고 이동의 자유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무리하며 과도한 조치라는 판단이다.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를 꼬집어 제동을 건 셈이다.

 

헌법위는 특히 기본권과 권력분립에 관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인권선언 제16조와 “누구도 임의적으로 구류될 수 없으며 개인 자유의 보호자인 사법부가 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현행 헌법 66조에 기초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기본권 제한은 꼭 필요한 경우, 그 필요의 정도에 비례해 적절하게 조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부연하자면 확진자라도 감금이라는 획일적 기본권 박탈은 질병 확산을 막는 데 필수의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코로나 검사가 음성이라도 밀접접촉자이거나 해외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도 2주 동안 엄격한 자가격리가 의무인 한국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다. 이번 프랑스 헌법위의 결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K방역의 성공이 정책 결정의 지혜가 아니라 정치 질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신은 프랑스에서 행복할지 몰라도 통치자만큼은 말 잘 듣는 국민이 있는 한국이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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