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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브뤼셀 효과’와 유럽연합의 환경 정치

    • 등록일
      2021-08-13
    • 조회수
      361

‘브뤼셀 효과’와 유럽연합의 환경 정치

 

2021년 도쿄 올림픽이 한창일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는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심지어 고대 올림픽이 발생한 지역이나 유럽 문명의 요람 파르테논 신전이 화재로 재가 될 위험에 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유럽의 강대국이자 선진국의 대명사로 통하는 독일도 여름의 홍수로 도시가 물에 잠기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첨단 기술과 수출로 명성을 날리는 독일도 이상(異常) 기후가 초래하는 재해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셈이다.

 

올여름은 이처럼 기후 변화의 위험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그리스나 독일에서 볼 수 있듯 해당 국가의 위상에 상관없이 언제든 산불이나 홍수 등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유럽은 오랜 기간 환경의 중요성을 널리 인식하고 나름 정책적 대응을 해왔던 만큼 심리적 충격은 더욱 강했다.

 

유럽은 지난 2005년부터 탄소배출을 제한 및 거래하는(Cap-and-trade) 환경정책을 추진했고 상당한 결실을 거뒀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권 제한 및 거래 제도로 유럽의 전력생산 기업들은 지난 16년 동안 에너지 효율성 향상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직접 탄소세 부과보다는 약하지만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지역은 유럽연합과 중국이 대표적이며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일부 주가 있다. 유럽연합은 세계 환경정책의 선구자 역할을 한 셈이다.

 

유럽연합은 지난달 14일 더욱 야심 찬 환경정책을 발표했다. 1990년 탄소 배출량의 55%를 2030년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다. 그간 탄소배출 제한 및 거래 정책에서 제외되었던 교통이나 주택난방 등도 새롭게 포함되었다. 또 국제경쟁을 의식해 예외를 인정받았던 철강이나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등의 산업도 2025~35년의 과도기를 거쳐 정책 대상으로 포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의 기업들은 국제경쟁에서 비용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EU는 역외 기업이 철강이나 비료 등 해당 상품을 유럽으로 수출할 때 유럽의 탄소 배출비용에 해당하는 세금을 추가로 걷는 탄소경계조정제도(CBAM)도 함께 추진 중이다. 유럽 시장에서 역내·외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런 균형의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런 조치를 퇴행적 보호주의라고 볼 수는 없다고 유럽연합은 주장한다. 역외 국가가 유럽과 유사한 제도를 운용할 경우 유럽 시장에 진입의 추가 세금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계 차원에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한 조치일 뿐이라는 논리다. 오히려 역외 수출기업이 자국에 비용을 지불하면 해당 국가는 세수가 늘어나니 이롭다. 따라서 유럽의 환경정책이 자연스럽게 세계로 확산할 수 있는 루트다.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유럽의 규제가 세계로 확산하는 현상을 ‘브뤼셀 효과’라고 부른다. 미국과 중국의 G2가 강대국의 쌍두마차를 형성하나 유럽연합은 여전히 세계 최대 시장이다. EU의 수도 역할을 하는 브뤼셀에서 표준을 정하면 유럽에 수출하는 전 세계의 기업이 적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즈니스 친화적인 미국이나 규제가 약한 중국에 비해 유럽의 기준은 비교적 까다로운 편이다. 달리 말해 유럽의 기준만 맞추면 세계시장에 자유롭게 수출하는 길이 열린다. 물론 소요 비용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유럽 기준에 맞춰 ‘세계 상품’을 만드는 방식은 많은 기업의 경우 경제적이다. 하나의 표준에 맞춘 생산은 다수 모델 생산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보건, 안전 등의 분야에서 유럽연합의 규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이런 현상도 확산했다.

 

일례로 유럽이 주도한 인터넷에서 사생활의 보호 규제는 세계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아이러니는 미국 기업이 인터넷 시장을 지배하는 한편, 유럽 브뤼셀의 관료가 만든 인터넷 규제가 미국 기업을 조정하는 형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이번 환경정책도 세계로 널리 퍼져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지난달 발표한 EU의 환경정책이 아직 완벽하게 비준된 상태는 아니다. 유럽연합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책이 가을에 최종 결정될 때까지 세밀한 조정 과정이 있겠지만 강화된 환경정책은 큰 틀에서 그대로 실행될 예정이다. 유럽통합의 역사를 보면 환경정책은 유럽 차원에서 책임지는 초국가 정책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회원국들도 국내의 다양한 로비에 시달리느니 유럽 수준으로 책임을 미루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스를 메우는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의 재앙 시리즈는 여론을 친 환경정책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중이다. 오히려 앞으로 거의 모든 정책을 환경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쪽으로 유럽은 나아갈 수도 있다. 최근 브뤼셀에서 유행하는 표현이 ‘55에 맞춘’(fit for 55, 즉 2030년까지 탄소축소목표에 적합한)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복병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기름값을 인상하는 환경친화적 정책을 시행하려다 ‘노란 조끼’라는 전국적 반발 운동에 직면해야 했다. 코로나 위기도 아직 환경정책과 대립하지는 않으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급속한 경제 회복과 환경이 서로 상충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유럽연합 환경 정치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다음 달에 치러질 독일 총선이다. 독일은 유럽의 핵심을 형성하는 경제 대국이다. 유럽연합에서 제도적 비중도 제일 크고 유럽의회 의원도 가장 많다. 역사적으로 독일은 유럽 환경정책의 리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16년간 독일을 이끌어 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번에 퇴진한다. 변화의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독일 총선의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으나 환경정책을 최우선시하는 녹색당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어보크라는 40대 초반의 여성 지도자가 메르켈 이후를 여는 새 총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녹색당이 연정을 이끌지는 않더라도 녹색당을 제외한 연정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유럽 환경 정치의 강화라는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독일에 이어 프랑스는 내년 봄이 대선이다. 프랑스는 환경주의 세력이 독일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유럽정치의 일반적인 패턴은 독일이 강하게 원하는 정책을 프랑스가 수용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우선 정책과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프랑스가 독일의 환경 우선 성향을 가로막을 가능성은 적다.

 

이렇게 보면 브뤼셀 효과의 파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계는 미국이다. 유럽의 환경 정치가 미국이라는 아군을 얻느냐 여부에 따라 세계에 미치는 결과는 다르다. 미국은 지난 3월 유럽의 탄소 관련 관세 부과에 대해 보호주의로 가서는 곤란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자체가 기업의 환경 부담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다. 유럽과 미국이 환경 분야에서 이렇게 공조한다면 지구적 영향력은 배가될 것이다.

 

세계 차원에서 중국은 이미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국가로 부상했다. 중국은 경제발전의 동력을 지속하기 위해 유럽이나 미국의 환경 규제에 반대할 수 있지만, 내부의 환경 문제도 심각하기에 미래 정책 방향을 예단할 수는 없다. 인류 모두의 관심 쟁점인 환경에서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중국이 국제 리더십을 보여주려 할 수도 있다.

 

유럽의 새로운 환경정책이 알려지자 한국의 즉각적 관심은 수출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그러나 환경을 무역 쟁점으로 축소·환원하여 득실을 계산하는 반응은 대단히 20세기적인 사고방식의 결과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 환경은 무역을 넘어 인류 전체의 운명에 관한 공공 목표에 해당한다. 환경에 대한 인식과 담론, 정책과 여론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한 사회의 소프트 파워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국익의 계산기를 당연히 두드리되 방정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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