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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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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막무가내 독재를 대하는 딜레마

    • 등록일
      2021-06-03
    • 조회수
      228

반대세력 탄압 닮은꼴 러와 벨라루스
자유민주사회, 공존과 제재 사이 고심

지중해 관광의 천국 그리스에서 발트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향하던 민간 비행기가 지난달 23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당했다. 유럽의 대표적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 비행기가 벨라루스 하늘을 통과하는 순간 벨라루스 당국이 폭탄 테러의 위협이 있다며 미그 29 전투기를 보내 착륙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폭탄은 없었고 다만 벨라루스에서 반체제 활동을 했던 26세 청년과 그의 여자 친구가 타고 있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셴코의 부정을 폭로하는 인터넷 언론을 운영한 인물이었던 만큼 요주의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 젊은 커플은 강제 착륙 이후 체포되었고 멍든 얼굴로 범죄를 ‘자백’하는 비디오가 공개되었다.

 

2001년 9·11 사건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항공기 납치란 극악한 테러 집단의 범죄행위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정식 국가가 거짓말을 동원하여 전투기로 민간 비행기 납치에 나선 셈이니 경악할 일이다.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위해 국가 기구가 총동원되고 최소한의 국제 규칙도 무시해 버리는 행위였다. 게다가 그리스와 리투아니아는 모두 유럽연합 회원국이다. 유럽인들이 역내 이동의 안전조차 위협하는 심각한 테러라고 인식하는 이유다.

 

독재 국가가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뻔뻔함과 무자비함은 벨라루스만의 특징은 아니다. 인구 900만 명 정도의 작은 벨라루스가 이토록 대담한 테러를 자행하는 배경에는 거대한 러시아가 있다. 크기만 다를 뿐 두 나라는 닮은꼴이다. 벨라루스의 루카셴코는 1994년에 권좌에 올라 계속 집권해 왔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또한 2000년 권력을 잡고 아직 건재 중이다. 푸틴이 마음대로 주무르는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그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수법도 유사하다. 러시아의 정보당국은 작년 8월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독살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나발니를 실은 비행기가 시베리아에 긴급 착륙하였고 옴스크 공항에서 긴급 치료에 성공했기에 그는 생존할 수 있었다. 이후 독일에서 치료를 받은 나발니는 망명을 거부하고 목숨을 걸고 독재에 저항하겠다며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는 귀국 즉시 수감당했는데 러시아 사법당국이 계속 범죄를 추가 기소한다는 소식이다.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나발니는 자신이 수감 상태에서도 외부 조직을 운영해 계속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니 천재인 것 같다고 블로그를 통해 발표했다.

 

이처럼 소련과 공산권의 붕괴로 20세기 철의 장막은 사라졌으나 러시아나 벨라루스를 통해 새로운 철의 장막이 솟아오르는 중이다. 지난 세기 철의 장막 뒤에는 어두운 독재의 표면에 그나마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이념적 포장이 존재했다. 불행히도 21세기의 장막 뒤에는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독재자의 탐욕과 그를 둘러싼 이익으로 똘똘 뭉친 지배집단이 있을 뿐이다.

 

자유 민주 사회가 이들 독재 세력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지구적 고민거리다. 순진하게 평화로운 공존만을 외치다가는 독재자의 공범이 되고 심지어 독재를 먹여 살리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섣부른 공격적 접근은 걷잡을 수 없는 충돌과 분쟁의 소용돌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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