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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신문] 글로벌 포커스 프랑스의 정당 혁명, 어디로 갈 것인가 (21.02.04)

    • 등록일
      2021-03-09
    • 조회수
      289

글로벌 포커스; 프랑스의 정당 혁명, 어디로 갈 것인가

 

2016년 길을 잃은 영국, 미국 등 선진 민주주의가 4년 만에 속속 정상화되고 있다. 당시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주요 정당이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이변이었다. 이어 미국은 정계의 요란스런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켰다.

 

따라서 2017년 프랑스에서 엠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세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의 당선을 피했기 때문이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앞장서 달려온 영국, 미국, 프랑스가 모두 포퓰리즘 정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작년 영국은 우여곡절 끝에 브렉시트의 지난한 과정을 간신히 종결했다. 영국은 이제 홀로 유럽 밖 ‘마이 웨이’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참여를 신청한다는 지난달 30일 영국 정부의 발표는 새로운 글로벌 전략을 뜻한다. 미국도 지난 1월 민주당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잃어버린 국가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영국이나 미국보다 한 템포 늦게 내년 봄에 대선을 치를 예정이다. 마크롱의 정치 혁명과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4년 전 국제 여론이 마크롱의 당선에 안심한 것은 그가 중도 세력을 대표하는 후보로서 극우 민족주의의 르펜에 비해 프랑스 정책의 지속성이나 예측성을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우 르펜보다 온건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마크롱이 가지는 혁명적 성격을 제대로 보지 못한 측면이 있다.

 

마크롱은 당선되기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당시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30대 젊은 정치인과 불과했다. 그는 2016년 장관직을 사임하고 사회당 밖에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1년 만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고,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면서 절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였다. 정치 신인이 1년 만에 이룬 기적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부터 의회에 진출한 르펜의 ‘민족전선’이 2016년 창설한 마크롱의 ‘전진하는 공화국’(LRM)보다 프랑스 정치사에서는 훨씬 오래 된 ‘고참’이다. 게다가 마크롱은 기존 정치권의 사람들을 끌어 모아 간판만 바꿔 단 정치세력을 꾸린 것이 아니다. LRM에 동참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처음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신선한 피의 수혈이었던 것이다.

 

마크롱의 실험이 프랑스 시민사회의 관심과 희망을 집중했던 이유다. 기존 정당에서 당원의 역할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박수 부대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당비를 내더라도 결정권이래야 당의 후보 결정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마크롱의 새로운 정치 세력은 평당원의 목소리와 제안에 정말 귀를 기울이는 놀라운 개방성을 보였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선거에서 후보 자리를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적극적인 시민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마크롱이 총선에 내세운 후보 500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한 번도 선거에 후보로 나선 경험이 없었고, 1/3은 정치나 행정 등 넓은 의미의 국가 기능과는 진정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마크롱 자체가 대선 출마가 첫 선거 입후보 경험이었으니 그의 정치세력에 신인이 많은 점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전진하는 공화국’은 단숨에 309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배출함으로써 프랑스 정치인의 다양성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더 많은 여성과 청년, 시민사회의 후보들이 의회에 진출했던 것이다.

 

4년이 지난 오늘날 마크롱의 실험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정책의 차원에서 마크롱은 사람들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했다. 일반적으로 중도세력은 좌우성향을 막론하고 급격한 정책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판정신이 투철한 프랑스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는 현실에 안주하기 쉽다.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마크롱은 지난 4년간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개혁이 2019년의 연금 제도 혁신이었는데 시위와 파업 등 사회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다. 프랑스는 1995년 자크 시라크 정부 때부터 여러 차례 연금 개혁을 시도했지만 사회의 극단적 저항으로 실패한 바 있다. 30여 년 묶은 문제를 마크롱에 와서야 해결할 수 있었던 셈이다. 마크롱은 이런 점에서 좌우 눈치를 보는 중도의 무기력함이 아니라 중간으로 힘을 모아 추진하는 지도자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반면 정치를 바꾸겠다는 마크롱의 실험은 실망스럽다. 마크롱이 유권자들의 지지와 관심을 끈 데는 사실 정책의 중도성향보다는 정치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마크롱을 통해 정치권이나 사회 엘리트의 기득권을 흔드는 시민 참여의 가능성을 국민들은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중도 정책이야 기존의 사회당이나 공화당이 담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크롱의 정치 운동도 기존의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전진하는 공화국’의 당원 수는 무려 40만 명에 달하지만 극소수만이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람들의 참여 의지조차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309명의 국회의원 당선자 가운데 이미 40명 이상이 ‘전진하는 공화국’에서 탈퇴했으니 말이다.

 

다른 중도 세력과 마찬가지로 마크롱 정부와 여당에서 핵심 세력은 여전히 프랑스 그랑제콜 출신의 엘리트들이다. 마크롱 자신이 파리정치대학 시앙스포와 국립행정대학원 에나 출신이다. 과거 프랑스 명문학교만 나온 엘리트에 비해 마크롱 주변의 젊은 엘리트는 국제적 차원까지 더해 일반 시민과의 거리는 오히려 벌어졌다. 프랑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을 나온 집단이 ‘마크롱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또 젊은 대통령 아래 30대 엘리트 장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 엘리트의 또 다른 특징은 정·관계와 재계를 쉽게 넘나든다는 사실이다. 마크롱 자신이 재무부 관료를 하다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마크롱의 엘리제궁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주요 비서 가운데 두 명이 2019년 각각 프랑스 명품 산업의 양대 산맥인 루이뷔통과 피노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관계와 재계의 장벽이 존재하던 전통 엘리트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점에도 마크롱의 정치 혁명은 시민참여의 확대보다는 엘리트 독점의 강화에 가깝다.

 

결국 객관적 관점에서 보면 2017년 마크롱의 혁명은 포퓰리즘의 엘리트 비판 담론을 활용했지만 내용은 엘리트의 강화로 귀결된 셈이다. 그렇다면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마크롱은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것인가. 문제는 중도 세력의 좌우가 모두 깊은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도 좌파 사회당이 2017년 몰락한 이유는 겉으로 사회평등과 정의를 외치면서도 결국은 소수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적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회당은 올랑드 대통령 시기에 이미 다양한 부정부패 스캔들로 도덕적 상처를 입은 데다 최근에는 사회당계 헌법학자 올리비에 뒤아멜의 근친상간 아동성애 사건까지 터져 심각한 지경이다. 중도 우파도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2017년 대선 후보였던 프랑수아 피용은 국회의원 시절 부인을 보좌관으로 채용해 국가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현재로선 중도 좌우의 사회당이나 공화당보다는 마크롱이 중도를 대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상대해야할 후보는 극좌의 장뤽 멜랑숑과 극우의 르펜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이 3위로 처져 극좌와 극우가 결선투표에서 만나는 것이다. 민주정치의 국가에서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데자뷰이자 걱정스런 미래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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