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프랑스에선 뭘 먹느냐가 신분 결정, 헝가리 굴라시엔 민족주의 담겨
육류 보관 기간 늘어나며 대량생산 가능, 자동체인은 자동차 공장에도 접목
▎16세기 피터 애르첸의 작품, 푸줏간과 자선을 베푸는 성가족.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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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구촌에는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 사람보다 훨씬 많다. 일례로 세계 인구는 78억 명이지만 양계장 닭만 해도 240억 마리 이상이다. 또 소, 돼지, 양, 염소, 오리 등은 각각 수억 마리를 초과하는 가축들이다. 이들은 단백질과 지방이 듬뿍한 고기라는 식재료를 인간에게 공급할 뿐만 아니라 달걀과 젖이라는 소중한 먹거리도 선사한다. 게다가 이들의 털이나 가죽은 옷이나 가방 등을 만드는 요긴한 재료로 활용돼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사실 가축은 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사람들의 중요한 자산으로 통했다. 성경 구약만 보더라도 재산을 따질 때 가축의 수가 결정적인 요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 언어에서 자본이나 수도를 뜻하는 캐피탈(capital) 이라는 말의 근원은 라틴어로 동물의 머리를 의미하는 ‘caput’에서 비롯된다. 한자에서도 짐승이나 쌓는다는 의미의 축(畜)자가 모을 축(蓄)으로 발전하여 축적(蓄積)이나 저축(貯蓄)에 사용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살아있는 가축은 부패하지 않는 식량의 자연 창고인 셈이었고, 새끼를 낳아 불어나기까지 하는 자산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던 시대에서 가축(家畜)이라는 표현처럼 동물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1만 년 정도 이전부터다. 농사와 가축이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셈이다. 가장 먼저 가축화된 것은 개이며, 이후 소와 돼지, 양 등이 뒤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인간이 수렵 채취에서 농경사회로 오면서 동·식물의 속성을 파악한 뒤 자신에게 이롭게 활용하는 기술을 터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인류의 역사는 동물과 다양한 방법으로 관계를 맺는 과정으로 점철돼 있다. 특히 동물의 고기와 관련된 금기는 매우 오랜 기간 지속돼 현재까지 내려오면서 각 사회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했다.
▎15세기 유대인 코우셔 식으로 동물을 처리하는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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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는 세상을 채식과 육식의 문화로 나눠 보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채식을 주로 하는 동양의 문화는 평화적인 반면, 육식이 지배하는 서양 문화는 호전적이라는 등식을 적용한다. 또 동양은 논밭을 가는 농경사회로 분류하고 서양은 유목민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회라고 양분하기도 한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편견이 깊숙이 심어진 도식적인 오해다. 동·서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화적인 요소이며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인도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서양 사회인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동양으로 보지만, 사실 인도·유럽 언어와 문화라는 틀을 고려하면 유럽에 더 가깝다.
서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사람 대부분은 채식에 속하는 빵을 주로 먹고살았다. 200여 년 전 유럽인들의 평균 고기 소비량은 1년에 19㎏에 불과했으며, 20세기가 시작하는 1900년에는 40㎏으로 두 배 정도 늘어났다. 물론 이 수치는 뼈와 가죽 등을 포함해 도축된 고기의 무게를 인구수로 나눈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고기란 우리가 상상하는 부드러운 스테이크가 아니라 소금을 잔뜩 넣은 햄이나 소시지, 그리고 캔에 넣어 만든 콘비프(corned beef)의 형식이다.
콘비프에서 콘(corns)이란 작은 소금 덩어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직역하자면 소금에 절인 쇠고기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콘비프를 주로 생산한 것은 가난한 아일랜드였고 상당 기간 저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긴 항해, 특히 대서양의 노예무역에서 사용하던 식량이었다. 산업혁명을 맞아 공장에서 깡통에 콘비프를 담게 되자 저장 기간은 더 늘어났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의 식량으로 활용됐다. 19세기 크림전쟁이나 미국 남북전쟁, 그리고 20세기 제1차와 2차 세계대전에서 콘비프는 군인들의 대표적 먹거리로 등장했다. 콘비프는 한국에 와서 부대찌개라는 퓨전 푸드의 재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유목문화라고 착각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대표적인 농경사회였으며 당대 최고의 도시 문명을 발전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양고기에 대한 태도 변화다. 고대 바빌로니아시대(기원전 24세기~기원전 6세기)에 양은 주로 젖을 짜서 먹고 털을 깎아 옷을 만드는 동물이었다. 양고기는 유대인이나 먹는 음식이었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조차 양고기보다 곡식을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기원전 4세기가 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양고기를 즐기는 문화로 돌변해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음식에 대한 선호는 어느 순간 급격하게 바뀌기도 한다.
동양의 중심을 형성하는 중국 역시 채식보다는 돼지고기의 문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돼지의 가축화는 중국보다 실제 서남아시아가 2000년 정도 앞섰다. 그런데 7세기 이슬람이 등장하면서 서남아시아에서는 돼지가 사라졌고 오히려 중국에서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단연 돼지다. 물론 유럽이나 미국의 고기 소비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서민들이 돼지고기를 상용하게 된 것은 최근이다. 현재 전 세계 돼지 6억 마리 가운데 절반이 중국에 있다. 반면 소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브라질과 인도로 각각 2억 마리 정도를 키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고기와 관련해서 수많은 금기를 만들어 왔다. 식물과 달리 동물에서 얻는 고기는 인간의 살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야만성을 논하거나 난폭성을 지적하기 위해 ‘식인(食人)’이라는 살벌한 공포의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또 먹을 것이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등장하는 ‘식인’의 현실은 인간성을 포기하는 단계라고 본다. 과거 일부 인간 집단은 사망한 조상의 몸을 나눠먹기도 했다. 가톨릭에서 빵과 포도주를 통해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적으로 공유하는 의식은 ‘먹는다’는 행위의 복합성을 잘 보여준다.
▎스페인 출신인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화폐에는 토끼가 등장한다. / 사진:브리티시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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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철저한 금기는 육식을 아예 금지하는 일이다.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는 오래전부터 가장 먼저 고기 소비를 가로막는 문화적 체계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를 채택한 아시아 국가들이 반드시 강력한 육식 금지 정책을 편 것은 아니다. 불교의 지리적·문화적 토양을 제공한 힌두 문명 또한 육식보다는 채식을 장려하는 종교다. 물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도에서 신성시되는 소는 절대 식용으로 사용될 수 없다. 브라질이 현대 축산업을 발전시켜 소의 숫자가 인도를 능가하기 이전까지는 ‘돼지 대국’ 중국처럼 인도는 ‘소의 제국’이었다. 인도에서 소는 농사를 짓는데 노동력 측면에서 절대적인 기여를 하며 우유나 치즈, 버터와 같은 유용한 양식도 제공한다. 한국에서 서양 음식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버터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사실 인도다. 또 인도에서 소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광범위하게 연료로 활용된다.
힌두 문명에서 소를 신성시해서 먹을 수 없다면, 유태(猶太)와 이슬람 문명에서는 돼지를 불결하다고 생각해 먹지 않는다. 이처럼 신성한 것도 금기지만 더러운 것도 금기 대상이 된다. 지리적으로 서남아시아라는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유대인의 음식 전통이 상당 부분 이슬람에 전달된 것이다. 성경의 구약은 먹어서는 안 되는 고기를 나열하는데 대표적으로 돼지와 낙타를 들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 금기를 여전히 지키지만 이슬람권에서는 낙타를 먹는다. 서남아시아나 북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 시장에 낙타 고기를 파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전통은 항상 선택적으로 계승하는 대상이다.
유대인의 구약을 경전(經典)으로 삼는 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럽의 기독교는 고기와 관련된 유대교의 금기를 수용하지 않았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채택돼 로마 사회의 주류가 된 것은 4~5세기의 일이다. 로마제국 사람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짐승의 피를 흘려 제사를 올리는 전통은 포기했지만, 돼지를 포함한 가축을 먹는 음식문화는 유지한 셈이다. 중세에도 기독교는 금식일이나 고기를 금한 날들이 많았지만, 돼지고기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았다. 특히 이슬람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형세 속에서 기독교인의 돼지 소비는 유대인이나 이슬람 문화와 차별화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21세기에도 고대 종교에서 규정한 고기 관련 금기는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힌두 중심의 인도에서 쇠고기는 여전히 금지의 대상이고, 할랄(halal)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슬람 음식은 돼지고기를 피하는 것은 물론 다른 식품도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 할랄은 세계음식 시장의 16%를 차지하며 2016년 기준 무려 2450억 달러 규모다. 유대인의 종교적 주문을 반영하는 음식은 코우셔(kosher)라 부른다. 최근 유럽이나 미국의 다문화적 환경에서 음식, 특히 고기와 관련된 문제는 사회적으로 무척 민감한 사안으로 등장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기의 질서는 가격으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쇠고기가 닭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비싸고, 쇠고기 중에서도 한우가 수입산보다 가격이 월등하게 높다. 물론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기도 한다. 예전에는 지방이 골고루 퍼진 마블링(marbling) 많은 등심을 선호하다가 건강한 식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지방이 적은 안심이 인기를 끈다. 또 붉은 고기가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생선이 선호의 대상이 됐다.
아마 다양한 고기를 즐겨 먹던 중세 프랑스 사람들이 봤다면 다소 의아해했을 것이다. 중세 프랑스에서 고기의 질서는 비교적 단순하고 알기 쉬웠다. 사회 질서와 마찬가지로 서식지가 높을수록 고급 고기였고 낮을수록 천한 고기로 쳤다. 당연히 공중에서 이동하는 조류가 최고의 고기였으며 조류 중에서도 물이나 땅에서 사는 종류보다는 하늘을 나는 새 고기가 훌륭하다고 여겨졌다. 그들이 21세기 한국의 전국을 뒤덮은 치킨 가게를 봤다면 놀라고 부러워했을 것이다. 물론 닭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둘기만은 못하지만 말이다.
▎19세기 조선의 야연(野宴), 고기 구워 먹는 모습.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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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프랑스 사람들에게 물속의 생선은 땅에서 자라는 감자처럼 그다지 선호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덕분에 바다와 강, 호수에 가득한 생선은 서민들의 소중한 먹거리 기능을 할 수 있었다. 북해에서 대량 생산되는 청어는 ‘바다의 밀’이라 불렸다. 청어는 내장을 제거하고 훈제하거나 소금에 절이면 1년까지 보관이 가능했기 때문에 북유럽과 남유럽을 오가는 무역 선단의 중요한 상품이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 지중해에서 활발했던 밀 무역에 이어 청어는 중세 유럽에서 식량 무역의 범위가 곡식에서 생선으로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육지의 가축 가운데 소와 돼지는 중세부터 이미 가장 많이 소비되는 동물로 떠오른다. 유럽에서는 돼지가 식용 고기로 가장 큰 기능을 해 왔지만, 중세부터 밭을 가는데 소보다 말을 활용하면서 쇠고기도 식용으로 대량 사용됐던 것이다. 돼지는 유럽 전역에서 즐기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쇠고기가, 그리고 남쪽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양고기 소비가 늘어난다. 같은 쇠고기라도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잘 익힌 고기를 선호하지만 프랑스는 덜 익은 고기가 인기다. 영어의 레어(rare)는 프랑스어로 세냥(saignant)이라는, 즉 ‘피가 흐르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지금도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시키면서 ‘잘 익혀 달라’(bien cuit)고 하면 그럴 바에야 고기 말고 생선이나 먹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짐승의 종류나 요리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선호하는 부위도 제각각인데, 독일 사람들은 간을 좋아하고 프랑스인들은 뇌나 골수를 제일 먼저 찾는다. 지금도 프랑스인의 버터 소비량이 이웃 나라보다 높은 것을 보면 미식의 나라 프랑스는 기름지고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성향이 강한 셈이다.
고기와 관련된 금기는 종교와 문명에 따라 인류를 거대한 단위로 분류해 놓았다. 또 같은 문명권에서도 먹거리에 따라 사람과 집단을 구분하는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차별화 현상이 이웃 사이에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는 폭이 35㎞에 불과한 도버 해협만 건너면 도달하는 가까운 이웃이다. 영국인들은 프랑스 사람들을 ‘개구리 먹는 사람들’로 부른다. 양서류를 섭취하는 식습관을 빙자해 다른 민족을 폄훼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태도다. 영국인은 개구리나 달팽이처럼 전통적 가축이나 생선이 아닌 생물을 요리해 먹는 것은 야만적인 습관이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 사람들에게 개구리 뒷다리 요리나 달팽이 버터구이는 대표적인 전통 식단에 속한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적어도 백년전쟁 시기, 즉 6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미국 신시내티의 돼지도살장 광경. /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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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계 프랑스인 앤서니 롤레 교수는 [식탁의 세계사: 입의 전략]이라는 저서에서 인간 집단과 먹거리의 관계를 장기간에 걸쳐 분석한 끝에 결론 부분에서 토끼의 사례를 다룬다. 그는 유럽 문명에서 토끼야말로 전형적인 ‘문화적 표시’의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해 보니 토끼가 하도 많아 그 지역을 이사판임(I-Saphan-Im) 즉 토끼의 나라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이후 히스파니아, 스페인 등으로 발전하였다. 스페인 출신의 하드리아누스(76~138년)가 로마 황제로 등극하자 토끼를 새긴 화폐를 발행할 정도였다. 이때부터 토끼 고기를 먹는 습관이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어린 토끼 요리는 미식가들이 선호하는 식재료로 부상했다. 하지만 19세기가 되면서 영국은 토끼를 먹는 것은 고양이를 식용으로 쓰는 것처럼 천박한 취향이라면서 반(反)토끼 유행을 주도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토끼를 먹지만 말이다. 나도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급식에 나오는 토끼 요리를 종종 먹곤 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 요리가 어느 날 갑자기 민족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1867년 헝가리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와 공동 제국을 형성하면서 특정 지역 요리였던 쇠고기 스튜 굴라시(Goulash)를 마자르족의 대표 음식으로 내세웠다. 원래 17세기부터 헝가리는 게르만 인들과 마찬가지로 양배추 절임인 사워크라우트(sauerkraut)라는 대표 음식이 있었지만 오스트리아와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과정에서 차별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870년대 덴마크는 남쪽의 독일이 통일하면서 위협을 가해오자 기존에 먹던 양고기를 포기하고 독일처럼 돼지로 만든 먹거리를 발전시켰다. 덴마크의 ‘민족’ 음식으로 돈육 제품들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덴마크산 베이컨이 영국으로 수출되자 독일 베이컨에 비해 덴마크 제품이 얼마나 우수한지 자랑으로 삼기도 했다. 실제 국제시장에서 덴마크 베이컨의 성공은 저렴한 가격과 돼지 특유의 냄새를 제거한 무미(無味)함 덕분이었다고 한다.
19세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정치적 확장 시기에 헝가리는 게르만과 유사한 요리를 버리고 새로운 요리를 발굴해 민족 요리로 내세웠다면, 덴마크는 독일과 같은 돈육의 영역으로 들어가 차이를 부각시킨 셈이다. 민족이 해체되거나 만들어지는 역사의 흐름에서 음식은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요긴한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이다.
먹거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는 있지만 다소 가벼운 주제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의 탄생에서 먹거리야말로 가장 첨단을 달리는 산업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주식(主食)의 선택에서 제일 중요한 기준은 영양과 보관 가능성이었다. 고기와 생선은 훈제나 절임, 발효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보관 기간을 늘이곤 했다. 캔의 발달은 고기와 생선의 장기 보관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 냉동 및 항해 기술이 발달해 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나 미국에서 쇠고기를 실어 대서양 넘어 유럽까지 수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1925년에 이르면 바다에서 생선을 무더기로 잡은 뒤 곧바로 냉동시켜 시장에 대량 공급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미국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1929~1933년 재임)이 ‘피시 핑거(fish finger)’야말로 ‘세계 식량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발견’이라고 격찬할 정도였다. 고기와 생선도 장기 보관이 가능해지고, 또 잡은 즉시 냉동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가축을 도살한 뒤 가장 중요한 작업은 다양한 부위를 해부하는 일이다. 머리와 사지, 꼬리는 나누는 것은 물론 등심, 안심, 갈비 등을 제각각 따로 썰어내야 한다. 통조림이 제일 먼저 발달한 미국은 도살부터 해부까지 모든 과정이 한 지역의 공장으로 집중됐다. 시카고는 19세기 말 미국 전국 가축의 80%를 처리하는 고기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포코폴리스’(Porcopolis) 즉 돼지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도살장은 전기를 활용한 자동체인을 처음으로 만들어 일꾼들이 한 가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 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동 체인은 이처럼 도살장에서 최초로 발명됐다. 축산업에서 만들어진 생산 과정의 혁신은 담배 공장으로 전파됐고, 마침내 1908년에는 헨리 포드에 의해 자동차 산업에까지 확산됐다. 포드는 1922년 발간된 [나의 삶과 일]이라는 자서전에서 ‘포드 생산 공정의 전반적인 아이디어를 시카고의 통조림 공장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고기의 생산 과정이 큰 덩어리의 가축을 여러 부위로 해부하는 것이었다면 자동차는 다양한 부품을 하나의 완성품으로 조립하는 반대의 공정이었던 셈이다.
도살장과 자동차 공장의 비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조립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규격화됐기 때문에 기술이 발달하면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 조립 과정을 주도하게 됐다. 반면 소나 돼지는 아무리 대량생산을 하더라도 부품이나 기계처럼 규격에 맞게 키울 수는 없다. 이런 개별적 차이를 고려해 육안으로 뼈와 기름과 고기를 구분해 썰어내기 때문에 도살장의 작업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곳이 바로 많은 인력이 집중됐던 중서부의 도살장들이었던 이유다. 현대 도살장에서 고급 부위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진 고기(ground meat)의 형식으로 섞어버린다.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확산된 맥도널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대기업들은 다진 고기로 햄버거에 들어가는 패티를 생산한다. 세계 고기 소비에서 간 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달한다는 통계는 육식의 산업화가 얼마만큼 진행됐는지 잘 보여 준다.
음식과 관련한 인간의 유연성은 놀라울 정도다. 농경 시대에는 곡식이 주식을 형성했지만 육류를 피한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먹는 음식의 80%가 매머드를 비롯한 육류였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인간은 거대한 짐승을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힘든 농사보다는 사냥과 고기를 선호한 듯하다. 예를 들어 13세기 인간이 처음 발을 디딘 뉴질랜드에는 모아(moa)라는 거대한 새들이 잔뜩 살았는데 사람들의 사냥으로 멸종하고 말았다. 모아는 처음 먹어보는 고기였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19~20세기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인간의 식습관은 밥이나 빵, 감자 등 주식의 양을 줄이고 고기의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해 나갔다. 경제 발전으로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육류와 생선의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고기의 일상적 소비가 중산층을 넘어 노동계급까지 확산됐다. 동아시아처럼 뒤늦게 경제발전에 동참한 지역에서도 육류와 생선 소비는 증가했다. 그 결과 21세기 현재 세계 식량 생산에서 축산업은 40%나 차지한다. 매년 600억 마리의 동물이 도살당하고 있으며 그 무게는 7억2000만t에 달한다. 돼지의 경우 일 년 소비량은 12억 마리이며 이들의 평균 수명은 6개월에 불과하다. 인류의 고기 소비가 이처럼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제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환경 파괴다. 축산업은 인간이 먹을 수도 있는 곡식을 동물 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식량 생산법이다. 게다가 축산업은 지구온난화를 촉진하는 다양한 공해를 발생시킴으로써 기후 변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인류가 자손 대대로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려면 육식 소비를 마냥 늘릴 수만은 없다는 의미다. 축산업의 또 다른 문제는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고기를 생산하다 보니 동물을 가혹한 방식으로 키우게 된 것이다. 현대의 양계장은 닭이 움직일 수도 없는 공간에서 살만 찌워 인간의 식탁으로 올라간다. 물론 고대 이집트부터 사람들은 거위에게 먹이를 강요해 간을 부어오르게 만들곤 했다. 이 전통은 프랑스에 와서 푸아그라(foie gras)라는 명칭으로 발전해 세계 미식의 명단에 올랐다. 최근에는 도살장에서 동물을 죽이는 과정이 너무 잔인하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도살 전에 동물의 의식을 잃게 하는 등의 변화가 일고 있다. 예전에 자연스럽게 생각하던 일들이 요즘에는 동물 복지라는 새로운 도덕적 기준에 따라 평가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수천 년 전부터 종교적 금기의 대상이 됐던 동물 먹거리는 21세기에도 새로운 기술과 잣대로 인간의 식탁에 오를 때까지의 과정과 방법이 변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2002년 깃털이 없는 벌거벗은(?) 닭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환경을 생각한다면 고기 대신 단백질이 풍부한 곤충의 대량 소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연구실 같은 공장의 시험관에서 인위적으로 스테이크용 근육만을 키우는 기술도 발전 중이다. 그런가 하면 아예 고기를 포기하고 식물만 먹자는 비건 운동도 세계적으로 새롭게 활기를 얻고 있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 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