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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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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침몰하는 미식 세계

    • 등록일
      2021-01-26
    • 조회수
      216

프랑스 레스토랑·카페 코로나로 위기
‘문화유산’ 음식의 미학 사라질까 우려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맛집 가이드 미슐랭(미쉐린)이 2021년 프랑스 레스토랑 평가를 지난 18일 공개했다. 코로나 위기로 프랑스의 모든 바와 레스토랑이 폐쇄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미슐랭 측은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레스토랑은 다 문을 닫았는데 레스토랑 가이드는 평소대로 출판되는 초현실적인 상황이다. 이건 ‘그림의 떡’이 아니라 ‘책 속의 미식(美食)’인 셈이다.

 

프랑스 요식업계는 코로나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다. 작년 봄 봉쇄정책으로 3개월 문을 닫아야 했고, 지난가을부터 2차 봉쇄로 벌써 세 달째 폐업 중이니 말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요식업 매출액은 반 토막이 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전 해 매출액의 20% 정도까지 보상해 주지만 생존을 보장할 수준은 아니다.

 

코로나의 폭풍이 몰아치기 이전에도 요식업계 상황이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규모 국제자본을 등에 업은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와 같은 체인점들이 몰려오면서 카페나 레스토랑은 위축되는 추세였다. 공장 식으로 대량 생산된 음식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5년 테러 사건 이후 ‘노란 조끼’를 위시한 빈번한 대규모 시위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치명적이었다. 파리 거리가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외식의 가장 큰 손님인 관광객이나 노인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시아나 미국과 같은 배달 판매도 탈출구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인건비가 워낙 비싼 데다 배달 전문회사들이 음식 가격의 25∼30%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코로나로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비극이 덮친 셈이다. 파리 레스토랑 조합의 대표는 파리 식당의 최소한 20%가 폐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더 심각한 변화는 독창적인 메뉴의 레스토랑은 사라지고 대자본의 획일적 체인점이 이들을 대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2010년 유네스코는 프랑스 미식 전통을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식전에 아페리티프 술을 마시고, 식사는 전식·본식·후식을 적절한 포도주와 곁들여 먹는 전통이다. 식후에는 디제스티프 술을 마시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일상 문화다. 프랑스는 실제 학교나 직장 식당을 가더라도 반드시 전·본·후식의 스리 코스 식사를 제공하도록 법으로 정한 나라다!

 

레스토랑이나 카페라는 사회 제도가 만들어진 것도 18세기 파리다. 레스토랑, 카페, 앙트레(전식), 데세르(디저트), 뷔페, 메뉴, 아라카르트 등 요식 관련 용어가 프랑스어인 이유다. 카페는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이 모여 하루 종일 토론하면서 근대 세계의 정신문화를 만들어낸 곳이다. 레스토랑은 주머니 두둑한 부르주아들이 입의 쾌락을 추구하면서 음식의 미학이 발달하도록 기여한 곳이다. 1989년 슬로 푸드 운동이 시작된 곳도 파리다.

 

따라서 프랑스 레스토랑과 카페의 위기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은 아니다. 우선 파리의 폭넓은 레스토랑 네트워크는 세계 음식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식사가 헐레벌떡 배를 채우는 단순 행위가 아니라 대화와 정을 나누는 매일의 문화행사로 만들어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전통이 가장 깊은 파리조차 무너져 버린다면 미식의 미래가 조금은 암담해 지는 셈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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