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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시사매거진] 조홍식의 자본주의와 문화 – 물질문명의 파노라마(1) 문명을 나누고 역사를 바꾼 ‘음식 권력’

    • 등록일
      2021-01-12
    • 조회수
      321

밥과 빵, 인류 영혼까지 지배하다

뭘 주로 많이 먹느냐에 따라 언어·문화·기술·신분까지 달라져
주식(主食)의 중요성 줄었지만, 정서에 남아있는 영향력 여전

 

자본주의는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화적 다양성이 놀라울 정도로 지속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지구촌 물질문명을 매개로 삼아 자본주의와 문화의 상호작용을 들여다보기 위한 기획이다. 물질과 정신을 포괄하는 ‘물질문명’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대표작[물질문명,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따왔다.

 


▎장 프랑수아 밀레 작품, 추수 중에 휴식(Harvesters Resting). / 사진:위키피디아

 

자본주의 확산으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중이다. 서울에서 호주산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구워 먹으면서 칠레산 포도주를 마시고, 미국 밀가루를 반죽해 에콰도르 바나나를 얹어 프랑스식으로 만든 파이를 에티오피아 산 커피와 함께 디저트로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지구촌은 이처럼 통합과 분열이 동시에 진행되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대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면서 거의 모든 물건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됐다. 음식문화도 서로 뒤섞이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도 젓가락으로 스시를 먹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는가 하면 토스트와 샌드위치로 아침이나 점심 식사를 하는 한국인과 일본인도 늘어났다.

 

식량 문제를 논의할 때 전문가들은 칼로리로 열량의 공급을 따진다. 이런 점에서는 인간이나 기계나 별 차이가 없다. 전기를 꼽거나 기름을 때워 기계가 돌아가듯이 사람 또한 먹을 것을 공급해야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계와 달리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흡입해 에너지를 얻어왔다. 말하자면 기름도 좋고 가스도 마다하지 않으며, 전기로도 작동하는 전천후 기계 같은 능력을 갖춘 셈이다.

 

세계가 비슷해지는 듯 보이지만 차이와 장벽은 여전하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무척 가리는 편이다. 중국인은 아침에 튀긴 요티아오(油條)를 두유에 찍어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고린내 나는 치즈로 식사를 마쳐야 만족한다. 그만큼 식습관은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삶의 패턴이다. 19세기 프랑스 미식 문학의 전통을 세운 장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한다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줄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식사와 정체성은 이렇듯 긴밀한 관계다.

 

물질문명을 탐구하는 여행을 먹거리로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다.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겨줬지만 그렇다고 먹는다는 가장 기초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에서 인간이 해방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먹방’은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끌고 ‘건강식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인의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외식’은 개인의 능력과 수준을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이번 첫 회에서 다루는 주식(主食)이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제일 중요한 음식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많이 먹는다는 의미다.

 

 

맬서스의 예언은 빗나갔지만…


▎중국 윈난성의 테라스식 논. / 사진:위키피디아

 

긴 인류의 역사를 서술하는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수렵채취의 시대에서 농경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표현한다.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 먹는 시대에 인간은 오히려 더 풍요로운 먹거리를 누렸기 때문이다. 반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먹거리의 종류나 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땀을 흘려 노동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성경의 이야기가 인류사에 어느 정도 적용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기 사건에는 사기꾼이 있고 당하는 피해자가 있다. 하라리의 이야기에서 사기꾼은 인류라는 종(種)이고 피해자는 열심히 일하는 개개인이다. 농경 사회 덕분에 인류 전체의 수는 늘어났지만 각자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종을 위해 개인이 희생한 덕분에 인류는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도시나 문자, 종교와 정치가 복합적인 양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인구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영국의 학자이자 목사였던 토마스 맬서스는 1798년 저서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학적으로 늘어난다는 법칙을 제시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인구 폭발과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기아 현상은 물론 폭동이나 전쟁과 같은 사회적 혼란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 19세기에는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영국에서조차 대도시의 빈곤과 기아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당대 혁명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 또한 수많은 실업자 도시 빈민이 ‘산업예비군’을 형성함으로써 노동자와 경쟁하고 임금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크게 봐서 맬서스의 예언은 빗나갔다. 우선 인구는 그의 예상대로 무한정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 어느 나라나 경제발전에 성공하면 인구 증가의 속도가 줄어들었고 심지어 일본이나 독일, 한국 등 일부는 근래 인구 감소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른 한편 기술의 발전으로 식량 생산이 크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 세계 인구는 1900년에 비해 100년 만에 4배나 많아졌다. 그럼에도 현재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을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하루 2800㎉를 제공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총 식량 생산이 지구 인구를 넉넉히 먹여 살릴만하다는 의미다. 물론 공정한 분배가 이뤄진다는 조건에서다.

 

불행히도 식량 분배의 현실은 불평등하다. 선진국에서는 평균 필요량보다 75%나 많은 열량을 섭취해 비만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 반면 세계 인구의 12% 정도는 충분한 식량을 공급받지 못한다. 선진국 유통과정에서 식품의 낭비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곡식의 상당 부분이 가축 사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불평등한 식량 분배 현실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세계 차원에서 정치적 의지만 모을 수 있다면 말이다. 21세기 현재 78억 명 인류의 배를 채우는 것은 쌀, 밀, 감자와 옥수수라는 네 종류의 주식이다. 이들은 세계 식량의 60%를 차지한다. 지리적 기원을 따진다면 쌀은 동아시아, 밀은 서아시아, 그리고 감자와 옥수수는 아메리카라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지금부터 1만 년 전쯤부터 인간의 농경 생활이 시작됐고 주식은 각각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밥의 제국 vs 빵의 세계


▎에도강 주위에 있는 쌀 상점들. / 사진:위키피디아

 

주식을 중심으로 21세기 세계 지도를 그린다면 아마도 ‘밥의 제국’과 ‘빵의 세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한 통계에 의하면 밥을 주로 먹는 사람들이 인류의 35% 정도로 제일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각각 14억과 13억 명의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가 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밀만을 주식으로 삼는 인구는 불과 10% 수준이다. 빵을 먹는 사람들은 사실 감자나 옥수수 등 다른 주식과 혼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쌀과 밀 같은 곡식을 주식으로 삼은 이유는 명백하다. 일단 농사를 지을 때 투입된 노동에 비해서 얻을 수 있는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많다. 또한 곡식의 영양소를 살펴보면 70~78% 정도의 탄수화물과 7~13% 정도의 단백질을 골고루 포함하는 양질의 식량이다. 놀랍게도 쌀, 밀, 옥수수, 보리, 수수, 호밀 등의 곡식은 매우 유사한 탄수화물과 단백질 분포를 보여준다. 그에 비해 감자는 2% 정도의 단백질밖에 없다. 게다가 건조한 곡식은 장기적으로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를 계획하는 삶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이런 측면에서도 감자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하다. 물론 최근에는 패스트푸드의 튀김용 냉동감자나 건조한 칩의 형태로 저장이 어렵다는 단점을 극복했다.

 

만일 인간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동물이라면 세계화 시대에는 모두 같은 음식을 비슷하게 요리해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양성이 지배한다. 예를 들어 밥이라고 다 같은 밥이 아니다. 크게 보면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짧고 둥근 쌀로 지은 찰진 밥을 선호한다. 반면 중국이나 동남아, 인도 등지에서는 길고 향기 나는 쌀을 좋아한다. 일본인들은 동북지역 니가타(新潟)에서 생산한 고시히카리를 최고로 치며, 쌀로만 만든 준마이(純米) 술을 으뜸으로 여긴다. 반면 난킨마이(南京米)라 부르는 중국산 긴 쌀밥은 광부들이나 먹는 싸구려로 폄하하며 캘리포니아 쌀은 화학 비료를 써 오염됐다고 여긴다. 취향이야 각자의 자유지만 중국요리에는 긴 쌀의 향미(香米)가 제격이고 인도 카레는 역시 붙지 않는 라이스가 적합하지 않겠는가. 물론 스시나 오니기리를 안남미(安南米)로 만들면 부서지겠지만 말이다.

 

 

밀가루가 불러온 자연 에너지 기술 개발


▎대니얼 맥도널드 작품, 병충해 피해를 발견한 아일랜드 농민 가족(An Irish Peasant Family Discovering the Blight) 1847년. / 사진:위키피디아

 

빵의 세계도 다양하기는 밥 못지않다. 유럽은 나라마다 빵이 다르다. 아마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프랑스의 바게트, 이탈리아의 치아바타나 유대인들의 베이글일 것이다. 사실 부드러운 치아바타를 먹던 사람이 바게트로 바꾸면 입천장이 전쟁터처럼 까진다. 바게트란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의 조화가 매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고급스러운 크루아상을 먹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저렴한 식빵에 채소나 햄을 넣어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인도나 서아시아에서는 난(Nan)이라는 둥근 모양의 빵이 주식이고 여기다 반찬을 얹으면 이탈리아의 피자가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이 막 지은 따뜻한 밥을 맛있게 여기듯 유럽인들에게 막 구운 빵은 식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2020년에도 프랑스 사람들은 여전히 빵집에 줄을 서서 갓 구워낸 바게트를 사다 먹곤 한다. 동전이나 카드를 수없이 주고받는 과정에서 코로나 전염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예전부터 프랑스의 비위생적인 빵집 문화를 비판해 왔던 미국인들은 공장에서 잘 포장돼 나온 슈퍼마켓의 식빵을 주로 먹을 것이다. 이렇듯 주식(主食)의 지도에서도 대서양은 유럽과 미국을 나누는 문화적 경계를 이루는 셈이다.

 

현대 도시인에게 밥이나 빵과 같은 먹거리는 단지 기호와 선택의 문제다. 아침에는 온갖 잡곡이 들어간 시리얼을 먹고, 점심은 식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로 때운 다음, 저녁 식사는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밥과 빵의 문화는 실제 쌀과 밀의 시스템으로 각각 나누어져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틀이 됐다. 논과 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땅을 일구고 개척하는 인간의 노력이 다년간 지속해야 한다. 곡식의 농사에 필요한 관개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도 집단적 협력을 통해 에너지를 투입해야만 한다. 특히 논농사는 관개시설을 건설하고 관리해야 할 뿐 아니라 일일이 모내기 작업도 거쳐야 하는 노동 집약적 활동이다. 자연 협력을 위해 마을 공동체는 물론 정치권력의 조정 능력이 강력하게 요구됐다.

 

쌀의 시스템이 지배하는 인도부터 동아시아까지 시골 풍경이란 끝없이 펼쳐지는 논의 파노라마다. 산비탈에 만들어진 테라스형 논은 쌀농사의 입체적 풍경이다. 가을이 되면 쌀알이 익어가는 논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면은 쌀 문화를 가진 나라가 공유하는 아름다움이다. 쌀의 영토에서는 짚으로 초가집 지붕도 만들고 짚신을 엮으며 모자와 우비까지 준비한다. 한국의 돗자리나 일본의 다다미는 모두 쌀 시스템의 부산물이다.

 

쌀을 민족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은 경우는 일본이 으뜸이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에미코 오누키 티어니 교수는 [자아(自我)로서의 쌀](Rice as Self)이라는 저서에서 일본의 쌀과 정체성의 등식을 세밀하게 분석한 바 있다. 쌀알 한 톨마다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일본인들은 일본 땅에서 생산한 백미가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 민족의 에너지를 심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에 일본산 쌀을 보내기 위해 국내 시민들은 수입쌀을 먹었다. 당시는 흰 쌀밥에 붉은 매실 장아찌(우메보시)를 꽂은 일장기 도시락(히노마루 벤토)이 유행할 정도였다.

 

밀의 세계에서도 토지와 농민과 민족을 연결하는 장치는 빈번하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종]을 비롯해 농부들의 삶을 표현하는 다수의 작품으로 유럽 농업 강국의 문화적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줬다. 이제는 농민보다는 경운기가 더 많은 일을 담당하는 시대이지만, 밀 농사의 정신적 유산은 미술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어 전달되는 셈이다.

 

쌀과 밀의 차이는 문화적 정서뿐 아니라 기술 발전에 있어서도 동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쌀은 도정 과정만 거치면 바로 밥을 지어 먹는다. 반면 밀은 가루를 만들어야 빵을 구울 수 있다. 북아프리카의 쿠스쿠스는 밀을 적당히 빻아 익혀서 먹는 방식이다. 빵을 구울 정도의 밀가루를 내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유럽의 수많은 풍차와 수차는 자연의 힘을 빌려 밀가루 만드는 작업을 담당했다. 단순한 수평 또는 수직 에너지를 찧고 빻는 힘으로 전환하는 노력 속에서 많은 기계공학적 발전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는 기술적 능력은 향후 방직이나 광산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감자튀김은 약방의 감초다. 감자와 팝콘을 만드는 옥수수는 둘 다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며 16세기 이전 구대륙에는 없었던 먹거리다. 지금은 쌀이나 밀과 함께 중요한 주식 가운데 하나가 됐지만 오랜 기간 감자와 옥수수는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었다. 특히 덩이줄기에 속하는 감자는 땅속에서 자라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천하게 여겼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감자는 영양이나 보관에 있어서 곡식에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곡식이 부족할 경우 감자는 보완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 17세기 초 유럽의 학자들은 이미 감자의 영양적 가치를 밝혀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축의 사료로 사용할 뿐 감자를 먹으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과 짐승이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는가.

 

 

감자의 ‘신분상승’


▎1918년 미국 정부의 옥수수 진흥 포스터. / 사진:위키피디아

 

18세기 프랑스는 곡물 가격 인상으로 빈번한 기아 현상이 발생했다. 1770년대 프랑스 정부는 고심 끝에 파리 주변 지역에 감자를 심어놓고 낮 동안만 군대를 파견해 지키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군이 지킬 만큼 소중한 음식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제야 밤에 몰래 감자를 훔쳐 먹기 시작했고 서서히 감자 먹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감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유럽에서 중요한 주식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세기가 되면 감자가 당당한 민족 식단의 멤버로 등장한다. 1813년경 당대 최고의 요리사로 활약하던 마리 앙투안 카렘은 감자튀김을 유행시켰고 이를 계기로 고급 요리에 감자가 등장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감자튀김은 미국에서 프렌치프라이로 불리기 시작했고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분쟁만 생기면 메뉴에서 사라지거나 이름을 바꿔야 하는 프랑스 민족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막상 유럽에서는 ‘물-프리트’(Moules-Frites)라 불리는 홍합-감자튀김의 조합이 벨기에를 상징하는 음식이지만 말이다.

 

1845~1849년의 아일랜드 기아는 이 나라의 감자에 대한 의존도를 잘 보여준다. 이 시기 감자를 공격하는 병충해로 농사가 망하자 아일랜드는 100만여 명이 굶어 죽고 200만 명이 이민을 가는 심각한 충격을 겪어야 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새 대통령도 1850년 아일랜드를 떠나 신대륙으로 이민한 조상을 두고 있다.

 

일부 학자는 감자가 인간에게 적절한 식품이 아니라고 여전히 주장했다. 예를 들어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인간은 그가 먹는 것: 희생의 신비]라는 저서에서 음식이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결정한다고 봤다. 그는 감자의 대량 소비로 시민들이 정신적으로 약해졌고, 그 결과 1848년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포이어바흐는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헤겔과 함께 분석한 당대 최고의 철학가였다.

 

옥수수 또한 구대륙에서 그리 훌륭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옥수수는 서유럽보다는 동유럽에서 더 많이 식용으로 채택했고, 대서양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활발하게 오가는 노예의 음식으로 활용됐다. 아직까지도 옥수수는 곡식 가운데 가장 많이 가축의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감자와 옥수수의 사례는 새로운 음식이 전파되고 수용되는 과정이 얼마나 복합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고 영양을 섭취하는 수단이 아니다. 음식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습관이나 생각의 지배를 받는 문화적 상징이다.

 

 

음식의 색깔이 곧 신분

 

음식을 통한 차별화는 인류 역사의 상수(常數)라도 봐도 무리가 아니다. 위에서는 밥과 빵, 그리고 쌀과 밀을 통해 세계적인 큰 분류를 살펴봤지만 조금만 세밀하게 들어가 보면 그 내부적 다양성 또한 놀랍다. 같은 문명이나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그리고 계급에 따라 식습관과 정체성이 나뉘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는 쌀의 제국의 핵심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대륙 국가지만 내부는 다시 쌀과 밀의 문화로 나뉜다. 중국에서 북방인들은 면을 선호하고 남방 사람들은 밥을 주로 먹는 습관을 지녔다. 교자(餃子)나 포자(包子)는 물론, 빵이나 다양한 면 요리는 북방의 전통인데 사람들은 밥 대신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 베이징의 짜장면이나 고추 잡채와 함께 나오는 꽃빵(花卷)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남방 사람들은 주야장천(晝夜長川) 밥을 먹는데 볶음밥이 광둥 버전(Cantonese rice)으로 세계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도 역시 전체적으로는 쌀의 영역에 속하지만 동부 벵골 지역이 논농사의 중심을 형성하는 반면 서북부의 건조한 라자스탄은 밀의 세계에 해당한다. 인더스 문명의 영역에 속하는 라자스탄의 음식문화에서는 쌀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중국에서 밥과 면이 음식문화를 양분하듯 인도에서는 라이스와 난이 주식 세계를 양분하는 셈이다.

 

같은 나라나 지역에서도 계급에 따라 음식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밝고 흰색은 고급스러운 상류층의 음식으로 인식되고 어둡고 검은색에 가까우면 하류층의 천한 음식으로 여겼다. 동아시아에서 백미(白米)는 순수성의 상징으로 제사상에 올리는 최고급 밥이었다면 콩밥이나 보리밥은 비천한 계층이 먹는 주식으로 취급받았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빵이 흰색일수록 고급이라고 여겨졌고 잡곡이 섞여 갈색에 가까워질수록 서민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영양을 따진다면 반대로 대중적인 잡곡밥과 빵이 더 건강에 좋지만,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희고 부드러운 밥과 빵일수록 높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고 믿으며 살았다.

 

산업화 과정에서 빵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희고 부드러운 빵을 대중적으로 공급하려고 만든 것이 식빵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서민들이 누구나 흰 빵을 먹기 시작하자 부자들은 건강을 생각해 오히려 갈색 잡곡 빵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밥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 흰 쌀밥은 이제 대중 급식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고급 식당에서는 현미나 잡곡밥을 제공하는 경향이다.

 

 

主食이 ‘공짜’가 된 풍요의 시대

 

요즘은 심지어 주식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다. 적어도 풍요로운 선진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는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잘 먹는 것이 되었다. 탄수화물이 비만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은 고기만 먹는 황제 다이어트를 하면서 밥·빵·면은 기피한다. 레스토랑에서도 판매하는 것은 요리지 밥이나 빵이 아니다. 유럽의 레스토랑에서 요리만 시키면 빵은 기본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설렁탕에 밥을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되듯이. 이는 주식이 공짜로 주어질 만큼 풍요의 시대가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두뇌와 정신을 지배하는 주식의 힘은 여전하다. 한국인은 어떤 횡재를 만났을 때 “이게 웬 떡”이라고 표현하지 버터나 스테이크를 찾지는 않는다. 떡이란 소중한 쌀을 빻아 만든 풍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실 피자와 치킨을 많이 배달시켜 먹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밥벌이’를 한다고 말하고 ‘철밥통’인 직장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끼리는 각별한 관계를 갖는다.

 

주식이 만들어준 특별한 정서의 고리는 유럽이나 미국도 유사하다. 가장(家長)은 영어로 브레드위너(Breadwinner), 즉 빵 벌이하는 사람이라 불리고 ‘밥벌이’를 프랑스에서는 가뉴뺑(Gagne-pain), 즉 ‘빵 벌이’라 부른다.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라고 부르는 것을 영어권에서는 ‘빵과 버터의 문제’(Bread and butter issue)라고 지칭한다. 무엇보다 가톨릭에서 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살과 피를 의미하며, 기독교 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정확히 말해 ‘일용할 빵’(daily bread)의 의역이다. 쌀 문화에선 “우리에게 일용할 밥을 달라”가 더 정확한 번역일 것이다.

 

밥과 빵이 상징하는 주식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일상에 무심코 먹던 토스트 한 점과 밥 한 그릇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의미를 역사에 비춰보면 흥미로운 의미들이 되살아난다. 주식은 세계인의 생활습관이나 언어에 깊은 영향을 남겼지만, 상대적 중요성은 점차 줄어드는 모양새다. 자본주의 풍요의 시대에는 고기나 과일, 채소와 같은 다양한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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