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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시사매거진] 조홍식의 부국굴기(富國屈起) – 자유시장경제의 원류를 찾아서(23) ‘포스트 석유 시대’ 설계하는 UAE의 명암(20.10.17)

    • 등록일
      2020-11-10
    • 조회수
      429

사막에 쌓아 올린 최첨단 富의 마천루

 

오일머니 쏟아 아부다비·두바이 등 글로벌 시티 조성
일할 의욕 없는 국민, 이민 노동자 차별 갈등… 코로나19 충격에 휘청


▎두바이 번영을 상징하는 부르즈 칼리파 전경. / 사진:위키피디아

서남아시아의 고대문명 바빌로니아는 인류 최초로 도시에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기초적인 시장 시스템을 운영했던 제국이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비옥한 땅에서 부상한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은 중세 시대 이슬람 제국이 명맥을 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한 바그다드는 지중해와 홍해, 그리고 인도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이슬람 제국의 수도였다. 유럽과 동아시아, 시베리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의 문물까지 바그다드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6세기부터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면서 서남아시아는 지구촌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다소 멀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이 다시 지구촌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인류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과 생산량이 모두 압도적인 덕분이었다. 일부 국가들이 풍부한 천연자원을 수출해서 번 돈을 항공 산업에 투자한 덕분에 서남아시아는 세계 항공 교통의 허브로 성장했다. 또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 등 이 지역의 주요 도시들은 엄청난 투자를 통해 글로벌 시티로 발전했다. 실제 2020년 만국박람회는 두바이에 배정됐고, 2022년 축구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고대와 중세 문명의 중심지와 현재 발전한 곳은 동일한 지역이 아니다. 과거의 주요 도시가 강이나 구릉 지역의 숲을 끼고 발전한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등이었다면 21세기에는 사막과 해변이 만나는 유전(油田)지대 위에 거대한 인공 도시를 건설했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 바레인, 쿠웨이트 등의 도시에는 대부분의 주민이 건조한 대추야자 나무 잎사귀로 만든 초가집에 살았고 부자와 지배층만이 진흙으로 지은 주택에 거주했다.

 

무엇이 중세적 삶을 영위했던 지역에 세계 최고의 부를 가져다주었을까.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중심으로 경제발전의 경로를 살펴본 뒤, 주변의 유사한 사례들과 비교해 보려고 한다. 21세기 서남아시아에 부를 가져다준 원동력은 당연히 석유와 가스다. 하지만 UAE는 가장 늦게 자원을 발견해 수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벌어들인 자본을 매우 적극적으로 항공·관광·금융·핵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해 산업을 성공적으로 다변화했다.

 

“석유 대신 물을 달라”


▎해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펼쳐지는 UAE의 사막. / 사진:위키피디아

아랍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등 부국들은 모두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있는 소국들이다. 한국과 일본이 같은 바다를 동해와 일본해로 각각 주장하듯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같은 바다를 둘러싼 만(灣)을 각각 페르시아 만과 아라비아만이라고 우긴다. 영어로 만은 걸프라고 하는데 어느 편도 들기 곤란한 제3국은 그래서 이곳을 그냥 걸프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이를 ‘걸프 만’이라 하니 ‘역전 앞’처럼 ‘만만(灣灣)’이 되는 셈이다.

 

UAE는 걸프 지역의 출입을 통제하는 관문인 호르무즈해협의 남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는 세력이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의 인도양 무역을 좌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 유럽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16세기부터는 포르투갈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배했고, 뒤이어 영국이 UAE가 독립하던 1971년까지 이곳을 통제했다.

 

UAE를 포함한 걸프의 소국들은 아랍 세계에서 전통적으로 가난한 변방에 속했다. 강변 농업으로 부를 이룬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비교했을 때 인구만 해도 터무니없이 적었다. 심지어 사막이 대부분인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메카나 메디나 등의 도시가 발달한 서쪽에 비해 동쪽의 걸프 지역은 그냥 텅 빈 해변이었다. 군사 전략적 가치를 떠나 이 지역의 의미 있는 경제적 활동은 바다에서 진주를 캐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1930년대 일본이 양식 진주를 개발해 수출함으로써 곤경에 처했다.

 

인류의 경제발전에서 화석 에너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사람이나 동물의 힘에 의존하던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18세기부터 석탄이나 석유를 활용한 증기기관과 내연엔진으로 에너지 동원 능력을 대폭 증가했다. 특히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석유의 시대’는 1930년대 양질의 석유가 서남아시아에서 대량 발견되면서 걸프 지역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특히 사막의 모래에 파이프만 꼽으면 용솟음치는 이 지역의 석유는 품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쿠웨이트·카타르 등지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은 1930년대다. UAE 지역에서는 석유가 비교적 늦은 시기에 발굴됐다. 아부다비가 1958년, 그리고 두바이가 1966년이다. 하지만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UAE는 1973년과 1980년 각각 제1차와 제2차 세계적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유가가 놀라울 정도로 상승한 덕분에 석유 수출을 통해 소득이 폭증했다. 석유는 풍부했던 반면 오히려 도시 발전에 필요한 식수가 부족하다 보니 “석유 대신 물을 달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2017년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발표한 확인된 석유 매장량 통계에 따르면 UAE는 베네수엘라·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쿠웨이트 등에 이어 978억 배럴을 기록하고 있다. 1위 베네수엘라가 3028억 배럴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구 1000만 명도 되지 않는 UAE의 매장량이 대단한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개발 독재 시대 한국 국민이 이를 악물고 경제 발전에 전념하도록 부추긴 명제다. 앞서 지적했듯이 20세기 경제발전의 에너지는 석유가 가져다주는 것이었는데, 한반도에서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니 무엇인가를 만들어 수출해야만 석유를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천연자원, 특히 석유와 같이 소중한 자원을 많이 가진 나라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자원을 많이 가진 나라들이 경제 발전에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선진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럽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는 영국이나 노르웨이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본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석유 한 방울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다. 미국만이 예외적으로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석유를 처음부터 생산했던 국가다.

 

석유를 비롯해 자원을 많이 가진 나라 국민은 열심히 생산 활동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기보다는 자원을 차지하려는 정치적 투쟁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정치권력을 차지하면 자원을 국제시장에 내다 팔아 손쉽게 수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상당 국가가 내전의 악몽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 또한 이와 같은 자원의 저주 때문이다. 1990년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고 규모도 큰 나라인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유전을 차지하려 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면이다. 부잣집 아이들이 자신의 노력은 등한시하고 부모의 유산에만 관심을 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자원 부국은 대개 한두 종류의 자원에 의존적인 경우가 많다. 칠레는 구리,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걸프 지역의 석유와 가스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자원 시장의 가격이 급격하게 등락을 거듭하기 때문에 수출국 경제도 덩달아 춤을 출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970년대 폭등한 석유 가격은 1980년대 급속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대부분의 수출과 국가 예산을 한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원의 저주

 

UAE가 본격적으로 경제 다변화에 나서게 된 이유가 바로 1980년대의 충격이다. 특히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걸프 지역 모든 소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석유 생산에만 의존하는 취약한 경제로는 국가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안보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물론 국방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강조됐다. 또 세계 경제와의 연결 고리를 늘리는 것이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핵심이다. UAE의 경우 2004년 아부다비의 56세 칼리파(Khalifa)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2006년에도 역시 56세의 쉐크 모하메드가 두바이에 등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젊고 능동적인 두 명의 리더십이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실제 쉐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은 1980년대부터 막후에서 두바이의 변화를 이끌어 온 인물이며, 공식 리더십을 맡은 다음에는 ‘두바이 주식회사 CEO’의 이미지를 지니고 경제 발전을 총지휘하고 있다.

 

UAE는 국가 명칭 말해주듯이 아랍 세계의 여러 에미리트가 뭉친 연합국가다. 에미르(Emir)는 이슬람 국가의 왕을 지칭한다. 따라서 에미리트(Emirate)란 왕국이라는 뜻이다. 영어에서 킹(King)과 킹덤(Kingdom)의 관계로 보면 된다. 1970년대 초 원래 걸프 지역의 작은 왕국들을 합쳐 출범할 예정이었는데 지리적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바레인과 카타르는 독자적으로 독립 국가를 만들었다.

 

1971년 독립한 UAE는 7개의 에미리트가 연합한 형식이다.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아부다비가 제일 큰 에미리트지만 두바이나 샤르자는 아부다비와 경쟁할 수 있는 세력들이다. 일반적으로 아부다비의 왕이 연합의 대통령을 담당하고, 두바이의 왕이 총리를 맡는다. 한 왕가가 절대적 권력을 독점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요르단, 그리고 걸프 지역의 다른 소국들과 비교했을 때 UAE의 균형적 연방구조는 매우 독특한 셈이다.

 

싱가포르 본뜬 국가 자본주의


▎코로나19 위기 전, 국제 여객 수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한 두바이 공항. / 사진:위키피디아

물론 UAE에서도 균형과 견제의 형태는 대표적으로 아부다비와 두바이 왕가의 상호 관계에서 찾을 수 있지만, 각각의 에미리트 안에서는 해당 왕조가 절대적인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아부다비의 나하얀(Nahayan) 왕가나 두바이의 알 막툼(Al Maktum) 왕가가 UAE의 권력을 나눠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석유와 가스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자원을 두 왕가는 국가의 이름으로 관리하면서 국민에게 관대하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다. UAE는 인구가 980만 명 규모로 이란(8300만 명)이나 이라크(3800만), 사우디아라비아(3400만) 등 인구가 많은 국가에 비해 자원의 배분이 비교적 쉽다는 장점을 가졌다.

 

UAE는 작은 나라면서도 세계 자본주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성공 사례로 일찍이 싱가포르를 눈여겨 봐왔다. 여러모로 싱가포르는 걸프 지역 산유국들의 모델이 됐다. 소국으로서 우호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해야 하는 데다 이런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한 국가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싱가포르의 국가 자본주의 모델은 자연스럽게 걸프 지역으로 이식됐다.

 

국제 금융 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UAE는 아부다비와 두바이 두 곳에 금융 시장을 마련했다. 아부다비의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은 1976년 설립된 이래 투자를 누적해 세계에서 가장 큰 8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세계 국부펀드 랭킹 40위 안에 UAE는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중심으로 6개의 펀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국식 법 체제를 구비한 국제 금융 시장을 육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주요 산업에 투자하는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모습이 싱가포르를 빼닮은 셈이다. 이들 국부펀드의 CEO는 물론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왕족들이 겸임하고 있다.

UAE는 해외에 돈만 투자해서 이윤과 이자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아랍에미리트라는 국가 브랜드를 홍보하고 두바이와 아부다비라는 글로벌 시티를 널리 알리려는 전략을 꾸준히 추구해 왔다. 예를 들어 2020년 만국박람회는 원래 올 10월 두바이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2021년 10월로 연기되기는 했지만, 명칭은 여전히 ‘두바이 2020 월드 엑스포’다.

 

해외와 미래를 향해 경제력을 투영한 대표적인 사례는 항공 운송 사업이다. 두바이는 1985년에 에미리트를, 그리고 아부다비는 2003년 에티하드라는 항공사를 각각 설립하여 세계 항공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서남아시아 지역은 세계 항공 루트의 지리적 중심이 되기에 적절한 위치다. 특히 동쪽의 아시아와 대양주, 그리고 서쪽의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비행거리가 늘어나면서 UAE는 ‘슈퍼 커넥터’로 세계 어느 곳이라도 두바이나 아부다비에서 한 번만 환승하면 도달할 수 있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산유국으로 저렴한 가격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으며 평평한 사막에 얼마든지 공항을 넓힐 수 있었다. 석유와 가스로 번 돈을 최첨단 비행기를 사는 데 퍼부어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항공기를 보유한 항공사들로 떠올랐다. 결국 2015년이 되면서 두바이 공항이 런던·홍콩·파리·암스테르담을 모두 제치고 세계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국제공항으로 올라섰다. 적어도 항공 수송 분야에서 UAE는 이제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이다.

 

‘무디르 신드롬’


▎아부다비의 루브르 분관 개관식. / 사진:위키피디아

국가 브랜드를 홍보하는데 축구만 한 분야도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인기를 끄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UAE는 유럽 축구에 투자를 통해 대중의 뇌리에 깊이 남을 수 있는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런던 아스널의 홈구장은 에미리트 스타디움이며 EPL의 신흥 강팀 맨체스터 시티도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사용한다. 축구뿐 아니라 자동차 경주 F1이나 승마·테니스·럭비·크리켓 등 다양한 스포츠에 UAE는 투자를 통한 국가 브랜드 홍보에 열심이다.

 

국제 항공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UAE는 또한 관광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아마 두바이는 세계인의 뇌리에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버즈) 칼리파의 도시로 통할 것이다. 실제 부르즈 칼리파는 인간이 만든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두바이에는 이뿐 아니라 거대한 규모의 쇼핑몰이 넘쳐나고 국제적 고급 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UAE의 항공사를 이용하면 두바이나 아부다비에서 비행기만 갈아타는 것이 아니라 휴양과 쇼핑도 즐길 수 있다는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실제 두바이는 과거 네덜란드가 발전하던 때 바다를 메워 땅을 일궜듯이 바다에 인공 섬을 만들어 휴양지와 주거지, 신도시를 모두 개발하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두바이의 인공 도시는 푸른 바다에 야자나무와 같은 모양으로 지어져 지구가 아닌 먼 혹성의 한 광경이라도 보는 것 같다. 두바이는 글로벌 빌리지(레저와 쇼핑), 스포츠 시티, 미디어 시티, 헬스케어 시티, 스튜디오 시티(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화된 지역을 개발함으로써 전 세계인의 사업 도시로 관심을 모으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갖은 기능이 종합적으로 어울려 있는 뉴욕이나 런던 같은 도시가 아니라 기능별로 분화된 21세기 글로벌 시티를 꿈꾸는 것이다.

 

걸프 지역 국가의 인구를 비교하면서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비해 UAE 거주민이 얼마나 작은지 살펴봤다. 사실 UAE의 980만 가운데 원래 국민은 140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840만 명은 모두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다. UAE 영토에 사는 사람을 따지면 인도나 파키스탄 국적의 이민자가 모두 UAE 국민보다 많다는 의미다.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발생하는 자원의 저주는 정치적 투쟁의 심화와 혼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자원의 저주는 UAE에서 볼 수 있듯 관대한 분배 정책 때문에 국민이 적극적인 경제활동에 나서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UAE 국민은 공무원이나 공기업에서 자리를 얻어 상징적인 노동만 제공하거나 아예 일하지 않고 국가에서 주는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기도 한다. 이를 현지에서는 ‘무디르 신드롬’이라 부르는데 무디르는 매니저라는 뜻이다. 시민권자라면 권위와 지위를 누리며 존중받는 일만 찾는 것이다.

 

실제 노동을 하면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외국인 이민자다. 금융·항공·서비스 산업 등의 전문직은 유럽이나 북미 선진국 출신들이 차지하고 단순 노동은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나 동남아의 필리핀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담당한다. 따라서 부국 UAE에서 국민이 부자임은 틀림없지만, 이 부국을 돌아가게 만드는 힘, 즉 부를 생산하는 주체는 외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원래 독립 초기 걸프 지역에 이민 와서 일했던 사람들은 나라를 잃은 팔레스타인 출신이 많았다. 같은 아랍이라 언어도 통하고 상대적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었고 내정에 간섭하거나 반항세력을 키울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걸프에서는 남아시아 이민자를 선호하게 됐다. 예를 들어 인도 남서부의 케랄라 사람들은 UAE에 다수 이민해서 살고 있다.

 

2012년이 되면 외국인 노동자가 본국으로 송금하는 액수 규모에서 걸프 지역이 750억 달러로 미국을 앞서 세계 1위로 부상했다.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인데 미국 같은 전통적 선진국보다 자국 노동력이 부족한 걸프 지역의 신흥 부국들이 지구 차원의 부의 분배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걸프 지역 석유와 가스에서 번 돈은 해당 지역 국민에게도 돌아가지만 많은 부분 남아시아와 동남아로 전파되고 있다.

 

물론 걸프 지역 외국인 노동은 심각한 문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인신매매가 가장 심각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도 꼽히기 때문이다. 전문직이 아니라면 UAE에 입국한 뒤 여권을 고용주에게 맡겨야 한다. 그만큼 고용주에 종속되는 신세로 전락하는 셈이다. 또 UAE에 정착해서 집도 장만하고 아이를 기르며 오랜 기간 살아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사회학자 시에드 알리(Syed Ali)는 이민 2세의 경우 ‘황금 새장’(Gilded Cage)에 갇힌 신세라고 표현했다.

 

지속 가능성의 도전


▎두바이 해변에 설립한 인공 섬. / 사진:위키피디아

UAE는 이처럼 인류 역사에 등장한 부국 가운데 찾아보기 어려운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이나 칠레는 모두 이민자의 나라지만 일단 정착하면 국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다. UAE는 철저하게 국민과 노동 이민자를 구분하는 불평등 구조인 셈이다. 한편에는 다양한 분야의 첨단의 글로벌 시티가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원초적인 불평등 구조가 공존한다는 뜻이다. 이런 새로운 실험에서 제일 눈여겨보아야 하는 부분은 지속 가능성일 것이다. 과연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30여 년의 UAE 발전이 앞으로도 궤도를 타고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한계에 부딪혀 중단되고 말 것인가.

 

UAE를 중점적으로 분석했지만, 사실 걸프 지역에는 비슷한 국가들이 유사한 구조와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카타르는 UAE와 매우 유사한 국가 브랜드를 통한 세계화 전략을 펴 왔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는 이런 전략을 상징적으로 잘 반영한다. 두바이가 런던 아스널 축구 클럽에 투자했다면 카타르는 파리 생제르맹 팀을 인수하여 2020년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려놓았다. 카타르 항공은 도하를 국제 허브로 개발하면서 에미리트나 에티하드와 경쟁에 나섰다.

 

닮은꼴 걸프 지역 산유국들

쿠웨이트와 바레인도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걸프의 소국이다. 카타르나 UAE처럼 적극적인 세계화 전략을 펴지는 않지만,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기본적인 경제 구조는 무척 유사하다. 오만은 인구가 400만 명이 넘지만 자원은 적은 편이라 빈곤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규모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다. UAE를 포함한 걸프의 소국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라크 등이 벌이는 서남아시아 지정학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17년 사우디가 UAE와 연합해 카타르를 소외시키는 전략이나 2020년 UAE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에 성공한 외교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유동성을 잘 드러낸다.

 

무엇보다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걸프 지역은 국제 시장의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201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셰일 석유와 가스 생산이 많이 늘어나면서 에너지 가격은 하향 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UAE의 경우 경제의 석유 및 가스 의존도를 1/4 정도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금융, 레저 등의 서비스 산업 국가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확보하려 하는 한편, 한국 기술을 통해 원자력 발전에 나섬으로써 포스트 석유 시대의 장기적 계획을 차곡차곡 추진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2020년 닥친 코로나 위기는 걸프 지역에 결정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성장을 멈춤으로써 석유와 가스의 수요가 줄어들었고, 가격은 폭락했다. UAE와 카타르가 야심 차게 키운 항공 산업 또한 거의 중단 상태다. 당연히 관광이나 쇼핑 등의 수요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코로나 위기로 인한 단기적 충격을 극복하고 정상화의 길로 향할지, 아니면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로 인한 새로운 부의 이동이 일어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짧은 시간에 중세시대에서 최첨단 부의 전시장으로 부상한 걸프 지역에 불어닥친 코로나 위기는 신흥 부국들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중이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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