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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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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내일신문] 이상한 도시 파리의 코로나 일상 (20.10.09.)

    • 등록일
      2020-10-22
    • 조회수
      216

코로나 바이러스에 똑같이 노출된 세상이지만 사회마다 대응은 천양지차다. 한국은 확진자 100명이라는 ‘마(魔)의 기준’을 두고 방역정책이 좌우되지만 프랑스는 10월 들어 하루 확진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의 철저한 추적 시스템과 프랑스의 느슨한 방역 체계를 감안하면 한국 1년의 확진자가 프랑스 하루 규모와 비교 가능할 정도다. 프랑스가 코로나의 온상이라면 한국은 청정지역이라 불릴만한 상황이다.

 

정부의 대응도 크게 다르다. 한국에서는 바이러스의 섬멸을 목표로 한다면 프랑스는 질병과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모든 학교는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다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수의 눈에 가장 쉽게 드러나는 차이는 비대면 수업의 텅 빈 한국 대학과 평상을 되찾은 프랑스 대학의 대조적인 모습이다. 청소년에게는 코로나로 인한 건강의 위험보다 교육이나 공동생활의 중단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프랑스의 판단인 셈이다.

 

지난 수요일 프랑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야간 통행금지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대부분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강력한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일단 4-6주간 통행금지를 시행하여 수만 명 단위의 확진자 수를 수천 명 단위로 줄이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목표다. 그래야 입원이 필요한 중환자들을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코로나로 인한 중환자나 사망자의 수를 절대적으로 최소화하기보다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최대한 잘 관리해 보겠다는 의미다.

 

지난 8월부터 파리에서 본 이 사회와 사람들의 반응은 더 놀랍다. 거리나 지하철에는 단속만 피할 정도로 마스크를 대충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식당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임을 즐기곤 한다. 여름에 하루 수백 명 수준이었던 확진자 수가 최근 수만 명 규모로 늘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통행금지 시행을 앞두고 마지막 레스토랑 외출을 즐기는 사람들로 파리의 밤은 화려한 모습조차 보였다.

 

이 사회를 살펴보면 왜 프랑스 정부가 통행금지란 강력한 시민 통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일단 보건당국이 스마트폰이나 신용카드 등을 통해 사람들을 추적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생활 침범이고 국가의 개인 감시라고 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 방문명단을 작성하라고 해도 형식적으로 시늉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등학교에서 철학이 필수과목이고 비판적 정신을 갖는 것이 시민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정부의 모든 조치를 따지고 든다. 이번에 통행금지를 발표하자 “바이러스가 9시 5분이 된다고 활성화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짓이냐”고 논리적으로 캐 묻는다. 한마디로 “국민을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비판을 염두에 둔 마크롱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태도를 취했다. 특히 한창 활동할 나이의 청소년을 향해 “2020년에 젊은이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한다”며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하소연했다. 프랑스처럼 개인의 권리에 대한 애착이 특별히 강한 나라에서 정책을 펴는 일은 이렇게 고난의 길이다. 순순히 말을 잘 듣는 나라에 비해 설득이 훨씬 어렵고 역설적으로 결국은 더욱 강제적이고 극단적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체험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한국과 프랑스만 봐도 이렇게 다른데 세계 각 국의 상황은 얼마나 다양할까. 코로나는 이런 점에서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비교하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 세계를 똑같은 충격에 노출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성급하게 판단의 도끼를 꺼내 들고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보다는 인류의 다양한 응답을 이해하려는 따듯한 시선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모두가 같은 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대응은 서로 다른 문화적 가치를 반영하며 사회를 코로나 하나의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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