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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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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세계속으로] 통독 30년이 던지는 질문(20.10.06.)

    • 등록일
      2020-10-22
    • 조회수
      206

서독, 공식적으로 동독 집어삼켜서 통일
동독 시민들 곳곳서 심각한 불평등 당해

1990년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이 합쳐 ‘민족 통일’을 이뤘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세월이다. 당시 30대의 앙겔라 메르켈은 이제 은퇴를 앞둔 60대 중반이다. 코로나 위기로 사람들이 북적대는 통일 30주년의 화려한 잔치를 벌이지는 못하지만 역사적 의미에 대한 논의는 한창이다.



30년 전 일어난 사건을 ‘민족 통일’이라는 낭만적 의미로 얼버무리는 태도 자체가 폭력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해 10월 3일에 일어난 일은 정확히 말해 서독이 동독을 공식적으로 집어삼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서독은 파산한 회사를 인수하듯 몰락한 동독을 최소한의 법적 형식을 갖춰 인수했다. 일코 사샤 코발추크라는 역사학자는 이 과정을 ‘위버나머(Ubernahme)’ 즉 취득, 획득, 인수 등의 뜻을 갖는 개념으로 요약한다.

 

사실 1871년 독일이 처음 통일을 이룩할 때도 프러시아가 나머지를 흡수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독일 제국이라는 새 나라를 만들었다. 반면 서독이 동독을 인수하는 일방적 통일은 단지 헌법이나 형식의 문제를 넘어 시민의 삶을 지배하는 양식이 되었다. 서독인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동독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변해 버린 세상이 30년간 지속된 셈이다. 일례로 공산 동독은 모든 삶이 직장과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였다. 이들에게 통일이란 국가가 해체되고 기업이 폐쇄되면서 기존 삶의 환경이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경험이었다.

 

현재 구동독 지역의 생산이나 소득 등 경제 수준은 서독의 75%에 달한다. 차이는 존재하지만 상당한 수렴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포괄적 통계가 보여주는 한계는 명백하다. 독일 증권시장의 주요 대기업 간부 가운데 2%만이 동독 출신이다. 17%에 달하는 동독지역 인구 비중을 감안하면 심각한 불평등을 노출하는 것이다. 100개가 넘는 독일의 대학 가운데 동독 출신 총장은 단 한 명이라고 한다. 미디어 부문에서도 서독의 천편일률적 지배는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구동독 지역의 언론 간부도 서독 출신들이 꿰차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구동독 시민의 절대적인 삶의 질이 공산주의 시절에 비해 향상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서독과 비교하면 여전히 뒤처지지만 그래도 소련 지배 시기에 비해 살기가 편하고 좋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동독 시민들은 극심한 인간적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2020년의 여전히 불평등한 독일 사회를 보면 누구를 위한 통일이었는지 구동독 지역에서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처럼 민족 간 경쟁과 전쟁이 생존을 위협하는 유럽이었다면 강대국의 일원이 되는 장점이 나름 있었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평화가 자리 잡은 21세기 유럽에서 이런 장점은 사라진 셈이다. 일례로 오스트리아는 같은 독일 민족이지만 절대 통합을 원하지 않는다. 또 유럽연합이라는 탄탄한 공존의 집을 만든 지금은 동독보다 체코나 헝가리, 슬로베니아처럼 작더라도 자신의 나라를 갖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국제적으로 유럽무대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것은 물론, 적어도 국내 사회의 모든 요직을 타지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http://www.segye.com/newsView/20201005519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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