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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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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내일신문] 집권 4년차 맞는 마크롱의 ‘혁명’ (20.09.09.)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228

지난 2017년 봄 프랑스 정치에 혜성처럼 등장한 30대 신인 엠마뉘엘 마크롱은 놀라운 선거 혁명을 이룩했다. 단숨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 이어진 총선에서도 급조한 정당 ‘전진하는 공화국’(LRM)이 절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로부터 만 3년이 지났고 이제 임기 5년의 말기인 집권 4년차에 돌입하고 있다. 마크롱은 선거 혁명에 이어 정치와 정책의 혁명에도 성공했는가. 선거에서의 기적 같은 승리는 그와 지지자들에게는 축복일지 모르지만 프랑스가 필요한 것은 정책의 변화와 새로운 도약이기 때문이다.

 

최근 마크롱은 여전히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리더십을 보여준다. 올 여름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여 마크롱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설득하여 유럽 차원의 경제 회복 대책을 수립하는데 성공했다. 레바논에서 대규모 폭발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현장을 두 차례나 방문하며 국제적 지원을 규합하려는 외교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번 달에는 또 1천억 유로 규모의 국내 경제 활성화 대책을 밝혔다. 특히 2030년을 겨냥하는 장기 발전 계획을 세워 목표를 차근차근 달성해 나가겠다는 계산이다.

 

마크롱은 지난 3년간 다사다난(多事多難)의 시기를 보내면서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부한다. 마크롱 정부는 초기부터 노란 조끼 운동을 맞아 위기에 처했지만 시민과의 대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소통으로 반대를 극복하는데 상당 부분 성공했다. 노동법이나 철도, 연금의 개혁은 지난 30여 년간 과거 정권들이 모두 실패했던 일들이다. 전 세계가 동시에 경험한 2020년 코로나 사태는 노란 조끼에 이어 다시 마크롱 정부에 비상의 충격을 가했다.

 

올 봄부터 코로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마크롱은 기존의 시장 중심 개혁 노선에서 정부가 적극 경제에 개입하는 케인즈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럽차원의 코로나 대책이나 프랑스 국내의 대규모 경제 활성화 대책 등이 모두 정책 방향 선회를 보여준다. 워낙 코로나 위기의 경제 충격이 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집권 3년이 지난 뒤 재선을 위한 전통적인 집권세력의 행보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물론 이 두 종류의 설명이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위기가 정책 선회의 적절한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혁명’은 원래 마크롱이 대선을 앞두고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구태의연하고 무능력한 프랑스 정치를 혁명적으로 바꿔놓겠다는 출사표였다. 그는 자신이 우파도 좌파도 아니라면서 또 우파이기도 하고 좌파이기도 하다는 애매한 주장을 폈다. 프랑스 ‘공화국의 전진’을 위해서라면 좌우의 세력과 정책을 가리지 않고 골라잡아 앞장서 가겠다는 그럴싸한 슬로건을 구사했다.

 

이에 대한 비판을 주로 좌파에서 제기되었다. 2017년 ‘마크롱의 모멘텀’이라는 책을 펴낸 유명 역사학자 장노엘 잔네는 마크롱이 사회적 자유주의를 내걸고 진보의 담론을 펴지만 사실 그가 지난 3년간 보여준 모습은 계속 된 우경화라는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총리는 중도 우파 성향이었으며 현재 정부를 이끄는 두 번째 총리 장 카스텍스는 전통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사람으로 알려졌다.

 

이번 달 ‘혼란의 시대’라는 책을 출간한 사회당의 원로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도 마크롱 실험에 대해 부정적이다. 마크롱 정권은 과거의 실패가 누적되어 낳은 비정상의 결과일 뿐이라며, 마크롱은 프랑스 정치의 권위주의만 강화한데다 부자(富者)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일부 학자들은 마크롱의 선거 전략을 포퓰리즘으로 분석하고 나섰다. 전통적으로 포퓰리즘은 극우나 극좌의 정치 공간에서 활동했는데, 마크롱은 중도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설명이다.

 

종합해 보자면 마크롱 세력은 포퓰리즘으로 선거 혁명을 성공한 뒤 이념이나 원칙의 틀보다는 지도자 개인의 상황 판단에 의존하면서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왔다는 의미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배를 모는 선장처럼 단기적으로 순간순간을 모면하면서도 장기적 2030 계획의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마크롱의 능력이자 한계일지도 모른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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