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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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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내일신문] 유럽의 연방주의와 ‘짠돌이 4총사’ (20.06.10.)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196

유럽연합(EU)은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지역통합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EU지만 회원국 사이에 사라졌던 국경이 다시 우뚝 솟아올랐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이동 공간’이라는 힘겨운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충격은 경제 역성장이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유로지역은 올해 마이너스 9.1%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 및 사회적 상처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충격은 경제 발전 정도가 낮은 유럽 남부에 집중되었다. 2010년대 유로 금융위기 때 일명 ‘돼지들(PIGS)’로 불리던 나라 가운데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코로나의 유럽 진원지 역할을 했다. 지난 10여 년 금융위기로 사회가 잔뜩 위축된 상황에서 닥친 코로나의 충격은 남유럽을 무겁게 짓눌렀다. 올 이탈리아 경제는 마이너스 15%의 역성장까지 예상되고 있다.

 

금융 위기에서 이미 드러났던 북유럽과 남유럽의 균열은 이번 코로나 사태로 더욱 강화되는 모습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보건 위기가 경제사회위기로 확산되자 재정이 튼튼한 북유럽은 정부가 자금을 쏟아 부어 경기 활성화에 나섰다. 일례로 독일은 국내총생산의 9%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했다. 반면 남유럽은 기존의 과다한 채무가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이 같은 유럽의 남북 대립은 1950년대 이후 70여 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지역 통합의 공든 탑을 무너뜨릴 잠재적 위험으로 부상한 셈이다.

 

하지만 유럽 통합은 거대한 위기를 극복하는 협력의 지혜로 쌓아온 역사적 성과다. 195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와 냉전의 위험을 국가 간 협력으로 풀어보려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로 통합의 열차를 출발시켰다. 마찬가지로 통합의 두 번째 가속기인 1990년대는 독일의 통일과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라는 불안한 지정학적 위기를 EU의 출범과 유로화의 탄생, 동유럽의 성공적 흡수로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유럽은 2020년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뼈아픈 충격과 영국의 탈퇴로 인한 균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달 프랑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공동 채권의 제안은 유럽이 새로운 통합의 역사적 단계로 돌입할 수 있음을 예시하였다. 미국에서 1790년 알렉산더 해밀턴이 연방 차원의 공동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아메리카를 하나의 연방국가로 발전시켰듯이, 유럽도 회원국 공동 재정이라는 연방주의 개혁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독일은 그간 유럽 공동 채권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원칙과 입장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한 대담한 정책 변화를 실행하였다.

 

물론 공동 채권이라는 재정 통합의 길이 열리려면 회원국 27개국의 만장일치 합의가 필요하다. 북유럽의 대표주자 독일이 입장을 바꾸기는 했지만 나머지 북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남유럽과 공동 채권이라는 한 배를 타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특히 ‘짠돌이(frugal) 4총사’라 불리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재정 통합을 반대하는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중점적으로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되는 남유럽은 적극 찬성하고 있다. 동유럽 또한 수혜 가능성이 높은 만큼 찬성하는 편이다.

 

메르켈 내각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는 독일 출신 유럽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또한 7 500억 유로 규모의 구체적인 재정 지원책을 마련하여 독일과 프랑스의 제안을 수용하였다. 따라서 오는 19일로 예정된 유럽이사회를 앞두고 집행위원회와 27개 회원국 사이에서는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역시 최대 쟁점은 공동의 채권과 공동의 책임이라는 원칙에 대해 만장일치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 원칙이 수립된다면 유럽은 이제 화폐 통합에 이어 재정 통합의 궤도에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위기에 공동 대응책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한다면 유럽은 심각한 존재의 위기에 당면할 것이다. 국경을 다시 세우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전략은 유럽 통합의 탑을 위협하는 균열의 틈새를 서서히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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