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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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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콜럼버스와 기억의 정치 (20.06.15.)

    • 등록일
      2020-09-17
    • 조회수
      209

노예제 관련된 인물 동상 곳곳서 파괴 / 부정의 상징은 광장 아닌 박물관 가야

미국 전역에서 뿌리 깊은 인종 차별에 대한 반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초기 일부의 폭력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요즘은 평화적이고 정치적인 시민운동의 성숙한 모습이 대세다. 최근에는 광장이나 거리 등 공공장소에 세운 조각상을 불 지르거나 밧줄로 끌어내리고, 붉은 페인트로 칠해버리는 파격적 정치 행위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시위대 공격의 대상이 되는 조각상은 대개 노예제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이다. 미국 남북전쟁시기의 남부 지도자들을 영웅으로 기념한다는 것은 노예제와 구조적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일과 다름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도 예외는 아니다. 인디언 원주민의 입장에서 콜럼버스는 ‘최초의 침략자’일 뿐이며 질병의 전파와 전쟁을 통해 현지인을 거의 말살시킨 대량 학살의 첨병일 뿐이다.


노예제나 인종차별과 관련된 기억의 정치는 미국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는 중이다. 영국 브리스틀시에서는 17세기 노예 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의 조각상을 시위대가 파괴하였다. 벨기에도 아프리카 콩고 지역에서 잔혹한 식민정책을 주도했던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조각상이 방화나 페인트로 파손되었다. 프랑스는 17세기 식민지의 노예제도를 법제화한 재상 콜베르를 기념하는 명칭들을 없애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2020년 세계 각지에서 조각상을 끌어내려 때려 부수거나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다음, 1990년대 구소련과 공산권에서 진행된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같은 ‘공산주의 영웅’들의 조각상을 무너뜨리고 제거하는 장면이다. 수십 년 동안 기본권을 빼앗기고 억눌렸던 시민들의 공통된 분노가 공산 독재의 상징에 집중되어 폭발했던 것이다.


‘조각상을 넘어뜨리며 환호하는 군중’이라는 이미지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의 상황은 1990년대와 크게 다르다. 오늘의 미국이나 유럽은 과거 공산권과 같은 전체주의 독재체제가 아니다. 인종차별이 제도와 문화에 뿌리 깊이 박혀 있지만 그럼에도 기본권이 상당히 보장되고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가 가능한 사회다. 무엇보다 시위대의 폭력적이거나 불법적인 행동은 여론을 자극하여 평등을 향한 바람직한 변화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과거를 직시하고 공과(功過)를 나누는 일은 무척 어렵다. 시위대나 극단적 세력의 순간적 판단에 역사의 정리를 맡긴다면 오히려 더 많은 혼란을 낳을 수도 있다. 광장이라는 공공의 장소에 어떤 상징을 세울 것인가. 이야말로 지역과 국가 공동체, 더 나아가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결정하고 드러내는 중요한 사안이다. 민주적 토론과 합의 도출의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동체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부정하는 상징이라면 광장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제격이다. 역사는 외면하고 부정하기보단 반성하고 돌이켜봐야 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근교에는 1993년 개방한 메멘토 조각 공원이 역사에서 퇴출된 공산 독재의 조각들을 모아놓았다. 간혹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의 무리가 이 공원을 배회한다는 소식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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