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크’ 첫돌 기념 시위 시민 참여 인상적 / 변화 장벽은 지배자들의 ‘특권 철옹성’
지난 22일 ‘하라크’라 불리는 알제리의 시민봉기가 첫돌을 맞았다. 2011년 ‘아랍의 봄’이 한창일 때도 철통같은 독재 치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알제리였다. 하지만 2019년 압델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20년 독재를 다시 연장하려 5선에 도전하겠다고 나서자 시민들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들고 일어섰다. 시민들이 수도 알제의 상징인 우체국 건물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던 부테플리카의 포스터를 끌어내림으로써 하라크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경험한 1주년 기념 시위는 인상적이었다. 제일 놀라운 점은 남녀노소 구분 없는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다. 외국에서 볼 때는 엘리트 대학생이 주도하는 청소년들의 저항 운동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은 백발의 노인부터 초등학생 소녀까지 알제리 국기를 몸에 두르고 평화롭게 자유와 정의를 외치는 보통 시민으로 가득했다. 하라크를 왜 ‘미소의 혁명’이라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랍어로 운동을 뜻하는 ‘히라크’(알제리식 발음은 하라크)는 지난 일 년 내내 계속되었다. 시민들이 우체국 앞 광장에 매주 모여 변화를 촉구했고, 실제 중요한 성과를 이뤘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5선 도전을 포기했고 거리와 군부의 압력으로 결국은 권좌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대선을 통해 압델마지드 테분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다만 야당이 불참했던 선거였기에 신임 대통령의 정통성은 취약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과거 독재 정치세력과 군부, 그리고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형성한 기존 체제를 대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라크 시민운동을 섣불리 부정하거나 탄압했다가는 더 커다란 저항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치범을 일부 사면하고 더 큰 언론의 자유를 허용했다. 다만 시민들이 요구하는 만큼의 과감한 개혁과 변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하라크가 여전히 지속되는 이유다.
알제리의 역사는 반복되는 타 민족의 지배와 이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지중해 건너 페니키아나 로마제국이 지배했고, 중세에는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아랍인들이 침략해 들어와 이슬람과 아랍어를 강요했다. 16세기에는 오토만제국으로 편입되어 300년 동안 터키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는 1830년대부터 130여 년간 알제리를 지배했지만 식민지 확보나 퇴각 과정에서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지속된 알제리 독립전쟁은 프랑스에게 치욕적 패배를 안겼다.
이처럼 강한 외세에 저항해 온 혁명의 알제리 민족이지만 가장 어려운 변화의 장벽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부의 지배자들이 쌓아놓은 특권의 철옹성이다. 선명한 민족주의 정통성으로 무장한 혁명정부가 들어서 이번엔 자신이 독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유와 가스라는 천혜의 자원은 오히려 경제발전을 위한 노력에 제동을 걸었다. 프랑스를 물리친 혁명정부가 부를 독점하면서 국민에게는 찔끔찔끔 복종을 사기 위한 떡이나 던져주었던 것이다.
‘길 잃은 외국인’을 호텔에 데려다 준 것은 아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던 택시기사다. 부자(父子)가 손잡고 시위에 나선 절박함을 느끼며, 하라크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바란다.
조홍식 숭실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