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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종족 민족주의가 부른 테러 (3/25)

    • 등록일
      2019-03-27
    • 조회수
      636

[조홍식의 세계속으로] 종족 민족주의가 부른 테러

다문화 공존·융합 거부… 증오로 변해 / 사회에 불만 품은 사람들 ‘극악무도’ 범죄

수십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반(反)이슬람 테러가 주는 충격은 소름을 끼치게 한다. 무엇이 스물여덟 살의 젊은 청년으로 하여금 이처럼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실행에 옮기게 했을까. 호주 국적의 브렌턴 태런트는 20대에 7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면서 극단적 사상에 심취했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극단적 이념을 나름 소화해 ‘거대한 대체(代替)’라는 제목의 74쪽짜리 선언문을 작성해 인터넷에 게재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치 계획의 일환으로 구상했던 것이다.

‘거대한 대체’는 프랑스의 사상가 르노 카뮈가 2012년 출간한 책의 제목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의 이민으로 인해 유럽의 백인이 유럽에서 소수로 몰락한 뒤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런 주장은 사실 1940년대 말 이미 신나치 세력에서 제기된 바 있다. 나치특수부대 SS 출신의 프랑스인 르네 비네와 스위스의 인종주의자 가스통아르망 아모드뤼즈가 제기한 담론이다. 최근 유럽의 반이민, 반이슬람 포퓰리즘 세력이 즐겨 사용하는 논지다.

뉴질랜드 테러범이 자주 인용하는 또 다른 사상의 조류는 일명 ‘에코파시즘’이다. 인간 집단도 동물이나 식물처럼 지역별로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다른 종이 침범하면 생태계가 혼란을 겪으며 위험에 처한다는 관점이다. 이런 시각에 따라 각각의 종족이나 문화집단이 자신의 문명 안에 생활권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다문화적인 공존이나 융합을 거부하면서 인종이나 종족마다 자신만의 고유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 같은 입장의 출발점은 혈통과 유전자를 중시하는 종족 민족주의이며, 20세기 초 독일의 푈키슈 민중 민족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30, 40년대 수백만 유대인 대량학살로 야만의 극치를 달렸던 나치 세력은 푈키슈 사상의 전형적이면서 확대된 계승자다. 21세기에도 남아공 출신 종족 민족주의의 이론가 아서 켐프는 영국민족당에서 활동하면서 백인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뉴질랜드 테러범의 선언문은 이런 위험한 사상과 무척 유사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번 테러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비극은 뿌리 깊은 증오의 담론이 인터넷을 통해 너무도 쉽게 전 세계에 확산된다는 사실이다. 세상과 사회에 대해 막연한 불만을 품은 고립된 청년들은 온라인에서 증오와 폭력의 담론이 제공하는 단순한 세계관에 빠진다. 오랜 담금질로 탄탄한 내부 논리를 갖춘 사상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방사회가 제공하는 자유를 만끽하고 악용해 수월하게 무기를 손에 넣고 극악무도의 행동을 실천한다. 마치 문명 구원을 위한 전사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단독으로 집단학살 테러를 자행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역시 비슷한 논리로 현실을 단순하게 왜곡하는 증오의 사상으로 무장한 사례였다. 지난 2015년 미국 찰스턴 흑인 교회 학살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인종 우월주의나 에코파시즘의 테러는 불행히도 일상이 된 듯하다. 사상의 자유와 다양성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사상이 테러 폭력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묘안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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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주소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22&aid=0003349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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