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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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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최근 러시아가 크림반도 부근에서 우크라이나 함정을 무력 나포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도발에 당연한 대응이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우크라이나는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극한 대립으로 치닫기 시작한 양국 관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반군을 지원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원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발전한 형제와 같은 사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삼국은 모두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던 키예프 공국을 기원으로 삼는다. 키예프 공국의 이름은 ‘키예프 루스’, 즉 러시아라는 이름의 기원이며 키예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다. 이 중세 유럽의 강대국은 13세기 몽골 제국의 확장으로 붕괴했는데, 15세기 이후 우크라이나의 영토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북쪽의 러시아와 서쪽의 폴란드 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갔다.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서 지정학 및 문화적 접점이 되는 이유다.

언어만 보더라도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는 두 개의 다른 언어지만 무척 유사하다. 몇 달만 배우면 금방 알아듣고 따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들은 우크라이나어가 러시아어와 폴란드어 중간에 있기 때문에 러시아·폴란드어는 상대적으로 상통하기 어려운 반면, 우크라이나어 사용자는 양쪽을 모두 쉽게 터득한다고 설명한다. 민족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같은 그리스 정교다. 폴란드는 언어가 슬라브계지만 정교가 아닌 가톨릭이 지배한다는 점에서 종교 정체성이 다르다.

이처럼 가까운 언어와 종교를 가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사이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크라이나는 1991년 처음으로 하나의 독립 국가가 됐다. 키예프 공국 이후 역사적으로 몇 차례 우크라이나 건국의 시도는 있었지만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는 꽤 우호적이었다. 적대적 대립의 출발점은 2013년 유로마이단 민주화 운동이다. 푸틴의 권위주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동생처럼 여기며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했는데, 우크라이나의 민주세력은 러시아보다는 서방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러시아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정교 교회가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리스 정교 본부인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우크라이나의 독립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교회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또 러시아어는 소련 시대의 유산으로 우크라이나에서 공용어지만 이제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 정치의 대립이 문화의 단절을 촉진하는 비극이 진행 중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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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주소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22&aid=000332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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