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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식 교수] 국민투표와 대의 민주주의 _ 경향신문 국제칼럼

    • 등록일
      2016-08-17
    • 조회수
      2806

[국제칼럼]국민투표와 대의 민주주의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입력 : 2016.08.14 20:44:00 수정 : 2016.08.14 20:52:34

지난 6월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는 충격이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과 장기적 역사와 제도를 함께해 온 영국이 지정학적 안정이나 경제적 풍요를 누리기 위해 EU가 핵심적이고 불가결한 틀이라고 설명했지만 다수의 영국 국민은 EU 탈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라 불리는 영국의 EU 탈퇴는 반세기 이상 지속된 성공적 유럽통합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퇴보를 의미한다. 광복절 아침 브렉시트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국익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언제나 장기적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국민은 옳은 선택을 하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국민의 현명한 선택은 그냥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많은 노력으로 만들고 다듬어야 가능한 작품이다. 그 첫 번째 책임은 

당연히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당의 EU 관련 내분을 국민투표라는 ‘도박’으로 해결하려다 국익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은 보수당 내 캐머런과의 경쟁의식에 무책임한 탈퇴 캠페인을 맹목적으로 벌였다. 또한 언론과 학계가 정치권과 긴밀히 연결되어 다양한 신화와 환상의 생산에 동참할수록 민주주의가 국익에 적합한 선택으로 귀결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탈퇴 측의 많은 정치인, 장관, 시장, 언론인, 학자, 전문가들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해도 지금까지 누리던 모든 혜택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원치 않는 이민자들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일방적 결정에 EU 나머지 27개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정치적 선택으로 포장한 셈이다.

장기적 국익에 적합한 선택을 민주적으로 일궈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국민이 선택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그리스의 유로 관련 국민투표처럼 일주일 만에 후다닥 해치워버리는 정치행위는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장기 국익에 부합하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어렵다. 국민에게 선택지의 득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명과 토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장기간 지속된 찬반 캠페인으로 이 조건은 충족하였다.

다음은 복합적 선택을 단순한 찬반으로 축소시키는 국민투표라는 형식은 위험하다. 그것은 어린이에게 엄마와 아빠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경우 무리다. 브렉시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영국은 EU 잔류·탈퇴 여부와 상관없이 EU와 구조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영국과 EU의 상호관계는 영국 국민뿐 아니라 EU의 수십 개 회원국 정부와 국민이 동참하여 결정하는 복합방정식이다. 이를 O·X로 선택하라는 국민투표 자체가 무지이자 폭력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수백 명의 의원들에게 고액의 보수와 특권을 제공하는 이유는 위에서 지적한 정책의 복합방정식을 현명하게 해결하라는 명령이다. 정치인과 정당은 많은 변수와 다양한 이익을 고려하여 타협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툭하면 여론조사에 기대 정책을 결정하자는 주장은 자신의 역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이 때문에 책임정치를 실현하려면 국민투표를 국회의 해산과 제도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민주적 선택을 만들어 낸다는 일은 간단치 않다. 영국처럼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가장 긴 나라에서도 국민투표라는 형식적 직접 민주주의는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제 영국에는 순간적 선택의 후과를 아주 오랫동안 감당하는 일만이 남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42044005&code=990100#csidxbd633b6b99ac7a89f243de8c3cb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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