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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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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공지사항

제목 - 설명

[시론] ‘열린 사회’였던 파리는 이제 닫힐 것이다
 
 
경향신문 | 2015-11-15
 
이슬람국가(IS)의 테러세력이 유럽의 심장 파리를 강타했다. 이번주 파리의 날씨는 가을치고는 무척 따듯한 편이었다고 한다. 친구나 가족과 레스토랑, 콘서트홀, 축구장에서 ‘불금’의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던 수백 명의 파리지앵들이 중무장한 테러집단의 무차별 공격으로 죽거나 다쳤다.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파리의 행복한 주말이 삽시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충격적 파리 테러는 올 들어 벌써 두 번째다. 지난 1월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들은 언론사 샤를리 에브도와 유태인 슈퍼를 공격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바 있다. 당시 공격의 표적은 서구 사회의 표현·언론·종교의 자유와 그 상징이었다. 이번 습격은 어떤 일말의 책임도 뒤집어씌울 수 없는 무고한 일반 시민을 마구잡이로 죽여 버린 야만적 행동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IS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21세기 미국의 9·11테러, 런던의 지하철 테러, 스페인의 기차 테러 등 서구 사회 시민을 강타한 테러는 매번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시민 대상 테러는 불행히도 오래전부터 일상에 속한다. 탈레반, 이슬람국가, 알카에다와 보코하람 등 주요 테러 세력은 서구까지 오기 전에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자국 정부와 국민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학살해 왔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아온 것뿐이다. 파리 테러는 평화와 번영의 선진국과 빈곤과 내전의 후진국 사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져 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류의 역사는 폭력이 폭력적 복수를 낳는 경험의 반복이다. 이번 파리 테러의 ‘전사’들은 콘서트홀에서 관중을 학살하면서 프랑스의 시리아 폭격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슬람국가의 논리에 따르면 테러가 폭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이제 테러 공격을 당한 프랑스가 어떤 방식으로든 시리아와 이라크에 대한 군사개입을 강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슬람국가는 더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그 결과 미래의 전선은 이라크나 시리아를 넘어 서구 지역으로 본격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폭격이나 테러와 같은 직접적 무력충돌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국가 및 집단 간의 적대감 또한 강화될 예정이다. 극단적 이슬람 세력의 테러는 유럽에 체류하는 무슬림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고조시키고 난민에 대한 거부감을 초래한다. 2015년 유례가 없는 대대적 난민 행렬로 인해 자유롭게 통행하던 솅겐 지역에 철조망이 들어서고 국경 검색이 강화되었다. 이번 프랑스 정부의 국경 봉쇄조치는 사라졌던 국경이 다시 등장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난민 수용에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던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벌써부터 ‘난민=테러’라는 등식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유럽 국경 재건의 ‘불장난’은 유럽연합 내 회원국 사이에도 적용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폴란드 국민이 시리아 난민을 싫어하듯 독일의 부자국민은 가난한 폴란드 이민자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테러 후 파리는 변화할 것이다. 이미 1월의 테러 공격 이후 파리는 기관총을 든 군인들을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준전시 상황으로 변한 바 있다. 이제 어디서나 신분증과 소지품 검사 등 안전 체크가 일상화될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처럼 시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시킬 것이 뻔하다. 9·11이 비행기 여행의 조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듯이 말이다. 지금까지 유럽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부턴 안전과 자유의 상호관계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파리 테러는 21세기 지구적 삶의 조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다. 열린사회는 무척이나 취약하고 여린 사회다. 죽음을 각오하고 살인과 파괴를 행하려는 세력이나 개인을 절대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열린사회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최소한의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특히 21세기에는 그것을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차원에서 실현해야 열린사회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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