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베네룩스 성공모델과 한반도
경향신문 | 2014-11-02
베네룩스를 방문할 때마다 한반도를 떠올린다. 지정학적 운명이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중국·러시아와 같은 대륙의 세력과 미국·일본 등 해양 세력이 만나는 지점이다. 몽골의 일본 원정부터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등 강대국의 싸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지대(low countries)라 불리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3국도 별칭이 ‘유럽의 전쟁터’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근대 세계를 호령하던 최강대국들 사이에서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기구한 지리의 저주를 받은 셈이다.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하기 위해 판판한 평야의 벨기에를 먼저 공격했다. 그리고 ‘벨기에의 강 간’ 이라 불리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또 베네룩스 3국을 모두 점령해버렸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베네룩스는 지정학의 저주를 축복으로 전환하는 데 적극 나섰다. 그 첫걸음으로 작은 세 나라가 힘을 모았다. 1948년 관세동맹을 형성했으며, 1960년에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하나의 시장을 만들었다. 3국은 공동 장관위원회와 의회를 설립하였다. 인구는 네덜란드가 1600만명, 벨기에가 1100만명, 룩셈부르크가 50만명이지만 의원 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동수로 21석, 룩셈부르크가 7석이다. 큰 나라의 양보와 작은 나라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모델이다.
두 번째 걸음은 베네룩스의 모델을 유럽 차원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유럽통합은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가 근본이었지만 베네룩스가 제시하는 모델은 좋은 선례가 되었다. 덕분에 벨기에의 브뤼셀은 거대한 유럽연합의 수도가 되었다. 유럽의 정부 역할을 하는 이사회와 집행위원회가 브뤼셀에 있고, .
셋째, 베네룩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시당하는 중립 선언보다는 확실한 안보동맹을 선택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것은 물론 아예 그 본부를 브뤼셀에 유치하였다. 브뤼셀은 그래서 유럽연합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럽 집단안보체제의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유럽의 경찰 유로폴 역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다. 유럽의 군사와 경찰 기능이 모두 베네룩스에 집중된 셈이다.
지난 1일에는 유럽연합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집행위의 위원장인 장클로드 융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인구 50만명 정도의 룩셈부르크 총리 출신이 인구 5억명 이상의 거대한 유럽연합을 이끌게 된 것이다. 유럽통합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1990년대 상테르 전 집행위원장도 룩셈부르크인이고, 유럽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판 롬파위 의장도 벨기에 정치인이다. 베네룩스는 이제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불운의 한반도를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21세기 우리의 커다란 과제다. 물론 베네룩스와 한반도는 다르고, 유럽과 동아시아도 같지 않다. 그러나 베네룩스의 성공은 현명한 전략적 선택을 통해 지리적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경로를 보여준다. 미래 세계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의 접점에 위치한 한반도는 안보경쟁에서 오는 긴장과 양대 시장을 연결하는 번영의 가능성을 적절하게 관리해야만 할 것이다. 냉철한 현실분석과 함께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