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해외 순방, 두 가지 아쉬움
경향신문 | 2014-03-30
지난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유럽은 세계 외교무대의 중심이 되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네덜란드에 이어 이탈리아·바티칸·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방문했고,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도 프랑스·독일·벨기에·유럽연합 등을 대상으로 활발한 외교에 나섰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크림반도 합병으로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박근혜 대통령도 중국·미국·일본 등과 적극 정상외교에 나서고, 독일 방문에서는 드레스덴 연설을 통해 통일의 구체적 방향과 과정을 제시했다. 통일대박이라는 총론에 실천 각론을 제시한 셈이다. 많은 사람들-font-width: 100%; mso-text-raise: 0pt”>3국을 동반한 북한 개발 등의 방식 등은 참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드레스덴 제안은 내용은 온당하되 형식은 낙제점이다. 그것은 무덤을 파놓고 북한을 향해 천천히 편안하게 안락사를 시켜줄 테니 오라고 손짓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독일은 전형적인 흡수 통일의 대명사다. 장기간의 양국 간 상호 교류와 협력이 동독 붕괴 및 흡수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런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호응하도록 만들려면 막대한 당근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찾기가 힘들다. 사실 독일 통일의 역사적 교훈은 너무나 단순해서 굳이 현장에 가서 배울 필요는 없다. 서독은 동독과 장기적인 교류와 협력 정책으로 국민 사이 접촉을 확대했고, 체제 비교를 가능하게 해 궁극적으로 동독의 붕괴를 가져왔다. 서독이 한국에 줄 수 있는 통일 교훈은 “흡수 통일을 지향하되 절대 이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진심으로 남한 여론이 아니라 북한을 현혹하려 했다면 중국 속에서 특수성을 유지하는 홍콩에 갔어야 했다.
이번 해외 순방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이미지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의 냉랭한 만남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에서 보여준 화사한 미소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아베의 “반갑스무니다”라는 인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미동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무시’로 일관했다. 특히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두 나라 정상에 대한 대조적 태도는 눈에 띄게 드러났다. 이런 결과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망언이 중단되고 진정한 반성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가치로 뭉친 탄탄한 3국 동맹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 정부 역시 원칙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미국을 설득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도 결정적이다. 정부가 나서면 프로파간다라는 의심을 받지만 시민사회의 자발적 활동과 국제적 연대는 세계 민주 세력과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와 예술을 통해 반(反)인륜적 과거를 되새기고 기억하는 일은 인류사에 기여하는 길이다. 사료 작업과 증거의 추적, 통계적 논의 등은 모두 중요하지만 사실 가녀린 소녀상이 주는 강렬한 감동과 비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