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유럽, 문제는 성장동력
경향신문 2012-01-29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에 대한 세계은행 보고서의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인더밋 길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가난한 이민자를 받아들여 고소득자로 만들어 온 데 반해, 유럽연합은 가난한 나라를 받아들여 고소득 국가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이 전 세계 군비 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군사 초강대국’이라면 유럽연합은 전 세계 복지 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라이프스타일 슈퍼파워’라고 보았다. 세계 양대 선진 세력은 두 개의 초강대국 모델을 제시하는 셈이다. 문제는 유럽이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생산성을 따라잡은 뒤 다시 두 세력 사이에 조금씩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특히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 경제의 생산성이 정체하면서 격차를 벌리고 있다.
삶의 질로 세계를 주도하는 강대 세력이 과연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유럽의 재정위기가 3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정의 기미를 보인다. 유로권 제3위의 경제 규모 때문에 위기의 핵심적인 고리로 인식됐던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이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5%대로 떨어졌다. 위기의 고점이었던 2011년 말 7%대에서 크게 하락한 모습이다. 스페인의 이자율도 두 달 만에 1.7%포인트 떨어져 5% 이하로 하락했다.
지난 13일에는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프랑스를 포함한 유로권 9개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지만 시장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작년 8월 미국이 트리플 A의 신용등급을 상실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은 신용평가사의 성적표를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장이 신용평가를 따르기보다는 평가사가 시장의 현실을 반영할 뿐이라는 신용평가기관 무용론이 더 설득력을 획득하게 된 셈이다.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일등공신은 유럽중앙은행(ECB)이다. 신임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독일의 반대를 감안하여 ECB가 유럽경제의 최종적 대부자 역할을 할 수는 없다고 명백하게 밝혔다. 하지만 작년 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 이자율이 치솟자 유럽 금융권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긴장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폈다. 드라기 총재는 27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다섯 달 전의 상황을 현재에 비교하면 유로권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며 유럽에 대한 신뢰를 당부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유럽 재정통합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 조약’을 통해 회원국 정부가 무책임하고 무리한 재정 지출을 사전에 방지하기로 합의할 예정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이제 유럽에서 케인스 경제학에 기초한 정책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조약은 원칙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0.5%를 초과하는 재정적자가 불가능하도록 규정할 예정이며, 이를 위반할 경우 GDP의 0.1%에 버금가는 벌금을 부과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럽정상들의 고민은 경제 성장의 동력을 찾는 데 집중된다. 시장 세력을 안심시키기 위한 재정 긴축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로 유럽 경제가 빠른 속도로 냉각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페인의 실업률은 선진국 중 가장 높은 25%에 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성장 동력에 대한 회원국의 입장이 서로 달라 조율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은 재정 규율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한편, 프랑스는 아일랜드와 같은 일부 국가가 낮은 세제로 기업을 유인하는 불공정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영국은 유럽단일시장 내에서 경쟁을 강화하고 외부와 자유무역을 더욱 촉진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동유럽의 신입 회원국들은 부국에서 빈국으로의 재정 지원이 성장 강화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27개국의 서로 다른 시각을 하나로 묶어내는 다양성의 정치가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