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세계 축구의 거버넌스
경향신문 2011-06-05
축구계가 안팎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조직적인 승부 조작에 프로 선수들이 가담한 사건이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고, 해외에서도 국제축구연맹(FIFA)을 둘러싼 부정부패의 의혹이 커가고 있다. 회장 선거를 앞두고 제프 블라터 현 회장의 유일한 경쟁 후보였던 카타르의 모하메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 지지를 얻으려고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고 갑자기 사퇴하였다. 덕분에 1998년부터 회장을 역임해 온 블라터는 지난 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경쟁 없이 4선에 가볍게 성공하면서 1인 장기집권 체제를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축구의 거버넌스에 대한 비판적인 국제여론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FIFA의 정책 결정 과정의 폐쇄성과 부정부패다. 특히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유치에 성공한 러시아와 카타르가 집행위원들에게 금전을 살포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 카메룬의 아야투 FIFA부회장과 코트디부아르의 축구협회장 아누마는 지난 해 부패 스캔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설상가상으로 FIFA는 회장 선거를 며칠 앞 둔 지난 달 25일, 빈 함맘 부회장과 잭 워너 집행위원에 대한 부패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들의 직무도 정지했다. 블라터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세를 키워 온 빈 함맘이 돌연 사퇴를 선언한 모습은 석연치 않다. 이제 FIFA 집행위원 24명 중 4명이 부정부패 조사의 대상이니, 악취가 코를 찌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축구의 정부에 해당하는 FIFA는 이제 각료 6분의 1이 부패에 연루된 제3세계 후진 정권의 그림자를 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중 스포츠의 이미지와 권위가 집행부의 부패 스캔들로 실추되기 시작하자 뒷돈을 대는 스폰서 회사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코카콜라, 아디다스, 에미레이츠, 비자 등의 스폰서 회사는 지금의 부패 스캔들이 축구의 이미지와 미래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FIFA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돈 주머니를 쥐고 있는 거대 스폰서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만큼 FIFA는 썩은 가지를 쳐내면서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실제 블라터는 앞으로 개최국을 결정할 때는 소수의 집행위원이 아니라 208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1국1표의 방식이 반드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축구에서 공룡인 브라질과 영국이 소국 바하마나 홍콩과 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현실은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2006~10년간 40억달러란 엄청난 예산을 주무른 FIFA는 손쉽게 수많은 극빈국의 표를 ‘합법적’으로 매수할 수 있어 위험하다.
축구는 영국에서 소속된 학교나 직장, 고향의 명예를 걸고 겨루는 게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지구촌의 문명적 축제가 됐다. 축구를 가장 많은 세계인이 인식하고 공유하는 게임이라고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축구의 세계화와 보편화로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고 수입이 창출되는 것은 물론 축구는 이제 세계인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만큼 축구의 거버넌스도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절친한 유럽의 귀족적 엘리트가 모여서 봉사와 헌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던 19세기형 스포츠 거버넌스는 21세기 민주주의에 맞게 변신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21세기 거버넌스는 첫째, 유럽 또는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제금융에서 미국이 세계은행 총재직을 독점하고 유럽이 국제통화기금 수뇌부를 자동적으로 차지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하듯이 FIFA나 IOC에서도 변화를 이룩해야 한다. 둘째, 부패와 오류에 쉽게 젖어드는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민주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글로벌 수준에서, 그리고 각국 수준에서 공급자와 전문가 위주의 운영에서 소비자, 즉 동호인과 일반인의 참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셋째,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축구계가 민주성과 투명성 높은 조직으로 재탄생하려면 지속적인 언론의 감시와 여론의 비판적 인식이 필수적이다.
조홍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