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권의
위기, 근본 해법은 ‘단일 예산’
2010년, 21세기를 앞둔 1999년에 유럽통합의 상징으로 태어난 유로화가 심각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가 국제 자본의 공격을 받으면서 유로권의 위기가 재연됐고,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으로 위기 확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국제 여론은 유로권의 위기가 스페인을 거쳐 이탈리아나 프랑스로 확산될 것이고 결국은 유로권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거론한다. 과연 유로는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역사의 무덤으로 사라질 것인가. 죽지 않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것인가.
개별 국가 부채가 위기 원인
많은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한 국가들이 유로권에서 탈퇴할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이 유로권에서 탈퇴하여 자국 화폐로 회귀하고, 가치가 낮은 화폐로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여 성장 동력을 되찾는다는
논리다. 하지만 유로권에서 탈퇴하려면 해당 국가는 적어도 몇 개월 동안 유럽과 협상을 벌여야 하고 그 사이에 모든 돈은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는 경제적 자살 행위에 해당한다. 유로 위기의 본질은 그리스나 아일랜드 같은 국가의 부채 위기다. 국제 자본이 이들을 신뢰하지
않아 점점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기에 더 이상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기 어려워지는 게 문제다. 이럴 경우 부채를 재조정하는 해결 방법이 있다.
무책임하게 돈을 빌린 사람도 문제지만 빌려준 쪽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빚을 일부 탕감하거나 삭감해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으며 국제 자본은 이 가능성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는
소문이다.
조금 더 온건하고 현실성이 높은 해결책들도 존재한다. 우선 그리스 위기 때 만들어놓은
금융지원기금을 더 늘리는 방안이 있다. 유럽 차원의 거대한 기금을 조성하여 유로존의 특정 국가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강화하는
방식인데, 국제 자본을 안심시켜 시장의 과도한 반응을 막는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국제 자본은 자신이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위해 항상 더 많은
이자와 담보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공적 기금을 늘리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다른 수월한 해결책은 유럽중앙은행이 유로권 국가의 부채를 보증해 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로권 국가 정부가 무책임하게 부채를 증가시킬 유혹을 느낄 것이고, 그 결과 유럽 전체가 부실화되면서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당사자인 유럽중앙은행은 물론 유럽의 ‘돈줄’인 독일은 이런 정책에 극구 반대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 다른 방식은 회원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차원의 ‘유로 본드’라는 공동의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에 대해서도 독일과 프랑스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화폐 넘어 재정통합이 이상적
보다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길은 유럽이 하나의 경제 정부를 형성하는 것이다. 화폐가
통합되어 있는 만큼 재정도 통합한다는 매우 원칙적인 접근법이다. 적어도 16개국 예산의 입안과 운영, 계획과 집행을 함께 만들고 조정해 가는
제도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과거 단일 화폐를 만드는 일이 1960년대 시작해서 40여년이 소요되었듯이 단일 예산으로 간다면 그 길은 길고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속단할 일만도 아니다.
지난 10일 프랑스와 독일은 제13차 불·독 공동 국무회의를 통해 유로 위기 관리에 있어
양국 정부가 공동 전선을 구축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프랑스가 G20 의장국으로서 적극 추진하는 국제통화질서 개혁에서도 독일이 프랑스를 도와
중국을 개혁 지지 방향으로 설득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었던 자크 들로르 역시 “정치가 최종적 결정권을
보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입력 : 2010-12-12 19:43:05ㅣ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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