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강대국 탐욕에 시달린 비운의 땅
6월 韓·阿 정상회의… 외교지평 넓힐 기회
다음달 4∼5일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평소 한국 외교의 지평에서 그다지 커다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검은 대륙을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주지하다시피 아프리카는 유럽 세력이 각축을 벌이며 노예무역을 벌이고 자원을 착취하여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한 비운의 공간이다. 소위 아프리카 쟁탈전(Scramble for Africa)이다.
15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부터 시작하여 17세기 네덜란드를 거쳐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이나 벨기에까지 유럽의 다양한 세력은 아프리카에 크고 작은 식민지를 만들어 지배하고 약탈했다. 강대국부터 약소국까지 유럽은 수백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어깨를 겨누고 머리를 들이밀며 땅따먹기 다툼에 나섰다.
20세기 냉전 시기에는 유럽을 누르고 새로운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이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싸웠다. 오랜 기간 아프리카 지배의 전통을 가진 유럽에 미국과 소련이 더해지면서 상황은 한층 복잡해졌다. 심지어 한국과 북한도 아프리카 무대에서 외교 경쟁을 벌이곤 했다.
냉전이 끝나고 21세기에 돌입하면서 이번에는 동양 세력인 중국이 나서 아프리카를 탐욕스럽게 공략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반(反)서구 정서를 치밀하게 파고들면서 아프리카 엘리트와 대중의 환심을 얻는 데 성공했고 인프라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가시적 아프리카 세력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공공기관 건물이나 공항과 항만, 철도, 도로 등 중국이 세운 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중국이 경제적 물량공세로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보했다면 러시아는 바그너 용병부대로 대표되는 군사적 지원으로 아프리카의 정권 다툼에 직접 개입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다시 태어났다. 러시아 또한 중국처럼 반(反)서구 정서에 편승하여 반군이나 쿠데타 세력을 도우면서 힘을 키웠다.
다만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싸늘하게 식은 듯하다. 2022년 중국의 아프리카 융자는 2016년 최고 수준의 10분의 1로 떨어졌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바그너 부대가 해산되면서 예전만큼 아프리카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정이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 쟁탈전에 뛰어든 세력은 서남아시아의 풍부한 재원을 가진 이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과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꿈을 키우는 인도와 터키다. 사실 아프리카와 서남아·남아 지역의 관계는 유럽보다도 오래되었고 깊다. 인도양을 중심으로 인도와 아랍인들은 동부 아프리카에 오래전부터 진출했었고 유럽보다 먼저 노예무역을 운영했다. 19∼20세기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할 때도 검은 대륙의 상업 네트워크를 지배한 것은 레바논이나 시리아 출신 디아스포라였다.
과거 식민세력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서방 강대국 미국의 영향력은 현저하게 주는 한편, 러시아와 중국이 한동안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으나, 이제는 지중해나 인도양을 통해 터키, 아랍과 인도 세력이 아프리카의 각축전에 몰입하는 모양새다. 더 많은 세력이 아프리카에 관여함으로써 민주화나 경제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으나 현실은 불행히도 더 큰 부패와 갈등, 안보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